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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ug 15. 2024

엄청 무서운 마취통증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1)

나는 이후에도 통증이 가라앉는 날이 없었다. 얼마 전에 내가 마음을 다잡은 것과 다르게 내가 굳은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나아질 수 없는 것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외래 진료 때마다 통증척도에 대해 말을 해야 했는데 일주일에 몇 번, *NRS 몇 점 정도의 통증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항상 매일 NRS6~7점이었다.

▲이때즈음 돌발통도 시작되어서 더욱더 괴로웠다.


매일을 통증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로컬 원장님께서는 내게 마취통증의학과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이 전에도 같은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마취통증의학과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 강렬해 보였기에 거절을 했었다. 와악!!!!! 엄청 무서운 마취!!!!!! 통증의학과!!!!!!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이러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통증이 갈수록 심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이번에는 가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원래는 원장님께서 병원에 직접 의뢰를 해주시는데 이번에는 병원 지정을 따로 하지 않겠다고 한 후 의뢰서만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통증 질환에 일가견이 있던 교수님을 서치 하기 시작했다. 그중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에 예약을 하기로 했지만 유명한 교수님이어서 그랬는지 빠른 시일 내에 외래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틀 후 다시 전화를 해보니 정말 운이 좋게도 취소자리가 생겼고 나는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12월 14일 나는 아빠와 함께 분당에 위치한 병원에 갔다.  또다시 규모 있는 병원을 마주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큰 병원들을 오가게 될 줄 몰랐는데 몇 달 사이에 내 일상이 모두 무너지고 뒤바뀌는 상황 앞에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좌절하는 나를 보며 이미 한 번 큰 투병을 거치며 일상이 크게 요동친 경험이 있던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주차장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던 병원은 지하였는데 통증의학과 역시 지하에 위치해서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증의학과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들의 나이대가 있었으며 외관상으로 보았을 때도 아파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외관상으로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왜인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교수님 진료를 보기 전 타 병원 자료를 모두 드리고 그걸 토대로 꼼꼼하게 예진을 했다. 예진을 했음에도 교수님께는 한 번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는데 나는 내가 언제부터 아팠고 지금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을 해야만 하는 그 상황들이 너무 힘들었다.

-운동 중 능형근 손상
-두 달 전만 해도 없던 손의 작열감
-주기적으로 오는 돌발통
-전보다 심해진 통증의 강도

이를 중점으로 진료를 보게 되었는데 타 질환과의 감별진단을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했다. 그중 제일 힘들었던 것은 체열검사였다. 피부의 온도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였기 때문에 문제가 있던 상체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상의를 탈의해야 했는데 아무런 옷도 입지 않고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탈의가 끝나면 판을 건네받고 검사실 안의 탈의실에서 나와 검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실내였지만 차디찼던 검사실의 공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할 이상은 없었다. 사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는 늘 검사 상으로는 이상이 없던 환자였으니까. 교수님께서는 신경통 약을 처방해 주셨고 제일 통증이 심한 부위인 능형근에 전기를 이용한 치료를 진행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전에는 해본 적 없던 마그네슘 주사치료를 해보자며 처방을 내주셨다.


‘진통제도 아니고 마그네슘?’

통증이 올라오기 전이나 후나 항상 진통제로 막기 급급했던 나는 마그네슘이 어떠한 효과를 내게 가져다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전기치료를 모두 마친 후, 아빠와 함께 2층 외래주사실에 올라가 라인을 잡고 기다렸다.  


“빠르게 들어갈 거예요. 아프거나 이상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거의 풀드롭 수준으로 떨어지던 수액은 나에게 울렁거림을 선물해 주었고 그에 나는 마스크 위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내 상태를 확인해 주시고 수액 속도를 조절해 주셨다. 총 2팩을 처방받았는데 그 2팩을 40분 안에 다 투여했다. 수액이 다 들어간 후에도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 잠시 안정을 취한 후에야 주사실을 나갈 수 있었다.


<그날의 기록>


아빠와 집에 가는 길, 나는 마그네슘 주사가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숨을 크게 들여 쉬어보기도 하고 등을 구부려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3분의 1로 줄었다. 평소라면 숨을 크게 들이쉬기만 해도 통증이 극심한 나였기 때문에 신기했다.

“아빠 나 좀 덜 아픈 것 같아! 원래 이렇게 하면 엄청 아프고 그랬는데 그런 게 거의 없어!"

나는 한껏 신이 나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재잘거렸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교수님 밑에서 치료를 계속한다면 정말 전처럼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하루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자고 일어나니 또다시 느껴지는 심한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신경통약과 진통제를 한껏 털어 넣고는 또다시 누워있는 것을 선택했다. 아니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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