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 가야 하는 병들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통증이 줄어들었던 그 몇 시간이 나에게 희망고문이 되어 나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 잠시나마 줄었던 통증 때문인지 그 이후의 통증들이 더 크고 괴롭게 느껴졌다. 작열감으로 설명이 될 수 있는 증상으로 등과 손이 거센 불길에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픈 부위를 도려내버리고 싶다’였다. 통증 수치가 그 정도까지 올라가니 어떠한 진통제도 내게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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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원장님의 답변은 약한 마약성 진통제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진통제가 내 생활을 되찾아 줄 것이라고 믿으며 복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믿었던 진통제는 내 몸에서 진통 작용을 해내지 못했다.
그 후 나는 새해맞이와 동시에 신경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었다.(씬이 훅훅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당시 스케줄이 연속적으로 류마티스내과 외래> 마취통증의학과 외래> 신경과 외래>갑자기 입원 당첨! 이러했다.) 신경과에서는 편두통과는 별개로 내가 통증 때문에 복용하는 진통제가 약물과용성 두통을 일으키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진통제 성분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는 진통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받았던 타코펜캡슐을 확인하시고는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실제로 마약성진통제들의 성분이 편두통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편류의 약물은 편두통 환자에게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Drug washout을 목표로 입원을 했기에 내 모든 약제들은 봉인을 당했다. 진통제를 끊는 것이 목표인 입원인 줄로만 알았으나 입원을 하고 보니 모든 약제를 중단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 복용하고 있던 섬유근육통 약으로는 리리카, 익셀, 심발타가 있었는데 그 모든 약을 중단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찔했다. 모든 통증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니.
당시 먹을 수 있던 진통제는 캐롤에프정이었는데, 사실 그 약도 루틴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PRN으로 넣어주신 약이었기에 하루에 두세 번만 받아서 복용이 가능했다. 평소에는 트라마돌 성분의 진통제를 복용하던 내게 이부프로펜 성분의 진통제는 경미한 진통 효과조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뭐 그 결과로는 고통에 몸부림치기 당첨. 숨만 들이쉬어도 등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고 팔, 다리는 통증에 저리다 못해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병동에서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신경과 입원환자 특성상 정말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개의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계시는 건 보호자가 없이는 거동조차도 불가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수액하나 달고 있지 않았고(심지어 라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동도 당연히 가능했으며 혼자서도 모든 생활이 가능했던 환자였기에 내가 여기서 아프다고 한들 그 고통이 그들에 비해 절반조차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엄살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내가 할 수 있던 건 아프고 서러운 마음에 커튼을 치고 숨죽여 울다 촉촉한 눈가로 간호사선생님께 달려가서 PRN을 달라고 하는 것뿐.
그렇게 나는 입원 후 병실에서 매일을 눈물로 보냈다. 나는 어찌 되었든 어느 정도 증상이 완화되어야만 퇴원이 가능했는데, 내 증상이 언제쯤 나아질지도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컨디션으로 눈을 뜨고 있는 시간들이 너무도 힘들었다.
‘너무 아프고 지친다.’
‘근데 왜 하필 나지?’
솔직히 이러한 생각은 환우라면 누구라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긍정적으로 살아왔던 내게 이러한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나를 더 괴롭게 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긍정 회로를 돌리며 이런 생각 끝에 항상 '그래도 희망을 가지자.'라고 되뇌곤 했다.
두통이 심해서 들어온 병동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원하는 내내 몸 통증은 NRS8 정도를 기록했으나 두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몸 통증이 너무 심해서 두통을 제대로 느낄 수 없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입원 3일 차가 되던 날 교수님께 퇴원 의사를 전달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은 약을 조절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고 지금 당장은 두통이 심해서 시술을 필요로 하진 않으니 차라리 심해지면 추후에 재입원을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최저용량이었지만 섬유근육통 약과 편두통 예방약을 루틴으로 깔아주시기 시작하셨다.
마지막 회진 때 교수님께서 내게 섬유근육통 약을 복용하자마자 눈빛이 좋아졌다며 *"일단 섬유근육통은 확실해요. 근데 편두통이든 섬유근육통이든 완치보다는 증상 완화, 유지를 하는 개념으로 치료를 이어나가는 질병이에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찌 되었든 내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병들과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인데 살아온 날 보다 살 날이 훨씬 많았던 내가 이 병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빨리 나아서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지치지만 말자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니 마음만 조급해질 뿐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왕 치료를 하기로 한 마당에 '지치지만 말자'는 다짐으로 병과 함께 잘 살아가보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던 날들에 살았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모든 희망적인 다짐은 더 큰 절망으로 짓눌러버리기 좋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조그마한 다짐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제 글에 담긴 모든 내용은 제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토대로 작성됩니다. 3~4년 전이기 때문에 치료 방식, 이 병에 대한 가치관 등이 지금과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