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신경과 진료를 보면서 복잡해지게 따로따로 보는 것보다 류마티스내과도 같은 병원에서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부모님 말씀에 나는 신경과를 보게 된 병원에서 류마티스 내과 진료도 보게 되었다.
이미 타 병원에서 섬유근육통을 의심하셨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교수님께서는 '섬유근육통'이라는 병명에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섬유근육통이라면 자신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그 병을 다루는 의사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그 병에 대해 모른다면 몰랐지 그 병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진료를 봐주는 의사가 정말 없었다. 오죽하면 후에 통증의학과에 갔을 때 그 병은 진단받는 게 쉽지 않은데 진단을 받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었다.
“제가 보는 것보다 가까운 병원에서 팔로업 하는 게 더 나아요.”
교수님께서는 멀리까지 오는 것보다는 다니기 편한 병원으로 다니라고 하셨는데 당시의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잘라내 버리는 교수님의 단호함에 적잖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나는 그 병원에서 진료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나는 진단을 받았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 류마티스 내과 *F/U을 하기로 했고, 타 병원에서 신경과 F/U을 하기로 했다. 병원이 달라서 번거롭긴 했지만, 외래 텀이 짧지 않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던 것 같다. 사실 그전에도 꽤 많이 내쳐졌던 나는 항상 류마티스 내과 외래를 갈 때마다 불안함을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 또다시 내쳐지지 않을까, 만약 내가 진전이 없어서 타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처음 복용했던 약부터 부작용을 달고 살았던 나는 타 약제에서도 부작용이 발현되곤 했다. 그리고 통증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과에서 권고한 진통제 복용하지 않고 생활하기를 처참하게 실패했다. 두통만이 있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타이레놀이라도 먹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외래를 다니면서 약을 두 달 정도 복용했을 즈음 그나마 부작용이 덜했던 약으로 용량을 늘려가며 적응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약은 둘록세틴이라는 성분의 심발타캡슐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부작용이 적은 것이었지 효과가 드라마틱하진 않았다. 진통제 복용도 계속 이어갔기에 두통은 디폴트 값인 것 마냥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왜 이렇게 호전이 없는 걸까?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두통 치료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텐데.’
외줄 타기 하듯 불안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던 중 나는 프레가발린에서 발현되었던 구토 증상이 둘록세틴의 성분의 약에서 또다시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을 그렇게 오심과 구토 그리고 두통에 시달리다 보니 나는 내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탓인지 몸의 통증 또한 수직상승했다. 온 세상이 힘을 모아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요즘 말로 억까라고 하는 그 느낌.
아무튼 그 덕에 나는 시험기간임에도 공부는커녕 누워서 강의에 출석만 겨우 하고 있는(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코로나가 확산되던 시기여서 사이버 강의를 진행 중이던 때였다) 나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내 세계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결국 내 분을 내가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렇게 그날은 정말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다.
또다시 한주가 지나고 외래진료 날이 되었다. 그날 역시 나는 극심한 통증과 약 부작용에 강의를 듣다가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울다 진정했다를 반복했기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로 병원에 갔다. 나는 통증 수치와 압통점을 늘 확인해야만 만하는 환자였기에 교수님은 매 진료 때마다 촉진을 하셨는데 그날 따라 너무 아팠던 나는 교수님께서 팔을 잡자마자 교수님의 손을 뿌리쳤다. 교수님께서는 더 심해진 것 같다며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셨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지금은 약을 더 쓰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며 약을 늘려보자고 하셨다. 지난 외래에서는 네 가지의 약을 사용했었다면 이번엔 6가지의 약을 처방해 주셨다. 섬유근육통에 쓸 수 있는 모든 약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익셀, 쎄레브렉스, 심발타, 센시발, 리리카, 울트라셋.
‘약을 먹어도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만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데 이 교수님 또한 나를 내치시지는 않을까...’
나는 늘어난 약보다 내가 나을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또 내쳐지겠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게 더 괴로웠다. 그리고 나는 EMR을 작성하고 계시던 교수님께 말을 건넸다.
“교수님 저 차도 없다고 다른 데로 보내면 안 돼요.”
교수님께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내 말에 답을 해주셨다.
“절대 안 보내요. 꽉 붙잡고 있을 거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지니고 있던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 고작 이 말에 내 불안이 사라지다니, 어쩌면 교수님께 내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치료를 하자는 다짐을 했다. 완치율이 굉장히 낮지만 내가 해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F/U(Follow Up)-질병에 대해 일정기간 단위로 상태 확인을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