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
2021년 4월 2일. 그날도 나는 마취통증의학과 외래가 있어 병원에 갔다. 어김없이 문진을 하고 교수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마주한 교수님께서는 “많이 아파요?”라고 물으셨다. 그렇다는 내 말에 교수님께서는 “몸 전체가 아픈 거예요?”라고 다시 물으셨고 그에 나는 “몸 전체보다는 손과 등만 아파요.”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교수님께서는 내 손을 살짝 치면서 이 정도로 건드려도 아프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손등은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답했다. 당시의 나는 손의 작열감이 굉장히 심했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뜨겁고 아파 차가운 것을 쥐고 있어야만 했으며 증상이 너무 심한 날에는 리도카인 성분의 파스(뉴도탑카타플라스마)로 손의 감각을 줄여야만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내게만 느껴지는 작열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열감 또한 있어서 뜨겁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내 손이 닿았을 때도 그 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이 증상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직까지도 나타나곤 한다.
교수님께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타 과 협진을 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무언가를 작성하시곤 내게 다시 말을 건넸다.
“섬유근육통이 아닌 것 같아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섬유근육통이 아니라고?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섬유근육통을 진단받기 전과 같이 다시 상세불명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신경병증이나 CRPS라고 부르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사실 나는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말로써 세 번째 듣는 병명들이었다. 섬유근육통이 아닌 류마티스적 질환, 신경병증, CRPS, 처음 들어보는 희귀 질환들까지 정말 다양한 병명을 제시하며 로컬에서는 이곳에서 나를 봐줄 수 없다며 케어가 가능한 3차 병원으로 다시 돌려보내곤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온 3차 병원에서 이 병명들을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나는 그날 케타민 치료 대신 신경차단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섬유근육통이 아니라면 당장에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큰 치료를 시행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 와중에 나는 그날 신경차단술 시행 후 올 수 있는 부작용 중에 하나인 눈이 처지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덕분에 더 심란한 마음으로 차가운 침대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누워있어야만 했다.
사실 교수님은 케타민에 한 번 부작용이 있던 내게 두 번째 치료도 감행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셨다. 하지만 내 의견을 반영해 용량을 줄여 한 번 더 시행을 한 케이스였고 또다시 부작용이 나타났었다. 케타민에 부작용이 연달아 두 번이나 있던 내게 다시 케타민 치료를 시도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교수님의 판단이 의무기록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어찌 되었든 포기라는 단어는 지금 보아도 슬프다.
진료과를 나오며 나는 엄마와 통화를 했고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러움이 폭발해 버린 나는 병원 구석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나 너무 아프고 힘들어. 차라리 섬유근육통이 맞는 거였으면 좋겠어. 섬유근육통 할래.” 수화기 너머로 나의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한 것만 같다. 엄마는 다른 병이 아닐 거라며 나를 달래주었지만 엄마 또한 누군가가 본인을 달래주길 바랐을 정도로 속상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이후 나는 류마티스내과 외래 날이 되어 병원에 가게 되었고 교수님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다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섬유근육통이나 CRPS 둘 중 하나는 맞을 거예요. 어쨌든 둘 다 오래 보고 가는 병이니까 계속 관리는 해야지."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날부터 나는 섬유근육통 때문에 복용을 하고 있던 약들을 하나씩 빼가기로 했다. 당분간은 이 약 저 약을 건드려보는 것보다는 용량을 조절해 가며 진통제로 효과를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 서방형 마약성 진통제 + 속효성 마약성 진통제 조합으로 처방을 해주셨는데 효과도 좋고 진통제를 평소보다 덜 먹게 되었다는 기록이 다이어리에 적혀있다.) 그리고 지쳐있는 내 표정을 보고 교수님께서는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조금만 기다려요. 낫게 해 줄게요."
그때의 나는 이리저리 치이기를 반복하며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었는데, 이 말을 듣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젠가는 이 아픈 과정들도 회상할 수 있는 과거가 되는 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짧은 사담을 담아보자면 당시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었지만 친구들보다 교수님을 더 많이 마주하며 의지하던 때였기에 교수님께 얻는 힘이 내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때 교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 생각이 유효하냐고 묻는다면 노코멘트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