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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Sep 12. 2024

정신건강의학과

아침에 눈을 뜨면 뭐가 달라질까

진통제만을 이용해 통증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일시적인 요법에 불과했다.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해야 했던 몸 상태였지만 어찌 되었든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펜타닐만큼은 끊기 위해 나는 노력을 했었다. (교수님께서는 패취를 언제 붙이고 떼었는지 기록을 하라고 하셨었는데 그때의 기록이 이렇게 다시 쓰일 줄은 몰랐다.)


12 mcg에서 6 mcg으로 감량 후 다시 12 mcg으로 증량한 것을 앞서 말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 나는 또다시 반을 잘라 6 mcg으로 감량을 했고 이후 반을 더 잘라 작은 용량을 붙였고 이후 패취를 떼어냈었다. 하지만 다시 밀려오는 통증 탓에 어찌 되었든 패취를 다시 붙여야 할 상황에 놓였었는데 그 상황에서 나는 펜타닐 대신 노스판 패취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그 패취는 10mg에서 20mg으로 증량을 해도 효과가 없었고 이에 나는 펜타닐 패취 12 mcg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25 mcg으로 늘어난 패취의 용량에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나에게는 불안함이 생겼다.



내가 이 약들에 중독이 된다면, 앞으로 평생 끊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의원 원장님께서는 진통제를 달고 사는 나의 약물의존성을 항상 걱정하셨고 외래를 가도 어찌 되었든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나는 언젠가는 마약성 진통제를 줄여나가 끊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왔었기 때문에 내가 못 끊거나 이 약에 온전히 의존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에 대해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투병에 나는 우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아픈 몸 때문에 중도에 포기를 해야만 했고 그 상황에서 나는 앞서 나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던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뒤쳐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내 존재 자체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몸은 쉬지 않고 아팠지만 더 이상은 뒤쳐지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시험 기간이어서 반나절을 앉아있어야만 했던 날에는 몸이 찢어질 듯이 아파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 몸을 갈아서라도 해내기를 원했다.


-하루에 카페인 수도 없이 쏟아붓기
-진통제 물 없이 녹여먹기
-리도카인 성분 파스 이용해 손목 마취 시키고 공부하기


당장에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만한 컨디션을 만들면 되었으니까 뒤에 벌어질 일들은 그때의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해내기만 하면 끝이니까.


당연한 결과로 나는 번아웃과 마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번아웃조차도 애써 무시하며 살아갔던 것 같다. 매일을 지친 표정으로 내과를 드나드는 나를 바라보시던 의원 원장님께서는 약물 의존성과 우울감을 조절하기를 바라시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는 것을 권해주셨고 신경과와 같은 병원으로 의뢰를 넣어주셨다. 나는 예약 일정이 제일 빠르게 잡히는 교수님보다는 통증과 약물중독 전문 교수님 앞으로 예약을 넣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예약을 기다리는 그 몇 주 동안에도 나는 진통제를 수없이 삼켰다. 너무 아파서, 처방 약 먹을 시간이 되어서, 좀 있으면 아플 것 같아서 등등. 내가 진통제를 삼킬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그렇게 내 외래 날이 다가왔고 나는 이틀에 걸쳐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다행스럽게도 진통제 복용에 대해서는 당장에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신체증상 탓에 불안함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상태였기에 어쩌면 제일 우선시 되어야 했던 건 통증 조절이었다. 통증 조절만 잘 된다면 모든 것이 다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심한 우울 상태예요. 오랜 기간 쌓여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내가 내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탑을 이루더니 그 모든 게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제일 학대한 사람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교수님께서는 내게 진통제의 작용기전과 만성통증 환자들의 약물 중독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또한 원인을 찾으려 할수록 우울감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아프게 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또한 당시 나는 과마다 다 다른 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럴 경우 타 과의 진료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볼 수 없고 연계가 어렵기 때문에 효과적인 통증 조절을 위해서는 병원을 최대한 일원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셨다. 그에 나는 류마티스내과를 제외한 모든 과를 일원화하게 되었다. (류마티스내과는 왜 일원화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앞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하는 통증 조절이란 신경안정제를 추가하거나 통증에 적응증을 가지고 있는 항우울제를 추가로 처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통증질환 환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상당량의 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태였고 약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환자였기 때문에 따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해주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 계속해서 통증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속효성 진통제의 복용량은 늘어만 갔는데 하루에 <타진 5mg 1T, 아이알코돈 5mg 3T 이상>을 복용했다. 이런 상황 앞에 교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진통제만을 늘리는 것은 치료가 될 수 없으니 적용해 볼 수 있는 약을 적용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고 통증에도, 이에 이어지는 불안감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venlafaxine(이팩사)를 처방해 주셨다.


하지만 그 이후 나의 몸은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약의 부작용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구토가 지속되었다. 항구토제인 ondansetron(온단트, 온세란)을 녹여먹어도 쉼 없이 구토를 해댔기에 내 식도는 몸과 함께 타들어가는 것 마냥 따갑고 아팠다. 그렇게나 구토가 이어져도 몸은 몸대로 아팠기 때문에 약은 어떻게든 먹어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구토를 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한참을 심호흡 한 뒤 약을 겨우 삼키곤 했다. 하지만 몸이 약을 거부하는 것인지 자동반사적으로 약을 토해내기 일쑤였다. 이에 대체재로 처방받은 시럽제를 먹거나 가루로 처방이 난 약을 먹게 되었는데 초반에는 그래도 몸이 받아들이는 것 같더니 후에는 그것마저도 토해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아지고 있던 두통 레벨은 상승곡선을 그렸는데 누가 망치로 치는 것 마냥 깨질 듯이 아팠다. 잠이 드는 것조차 어려워 나는 신경안정제의 힘을 빌려 잠을 자야 했으며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다음 날 눈을 뜨면 내가 겪어야 할 모든 증상들이 두려웠다. 당시 내가 많이 듣던 노래가 있었는데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아서 들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뭐가 달라질까
밤잠을 설치다가 문득 생각이 나
이토록 약한 내가 무슨 쓸모일까

-윤하 <답을 찾지 못한 날> 일부


이후 계속해서 호전될 가능성은커녕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데, 내 몸도 몸이었지만 나는 주변에서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지쳐가던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 또한 힘들었던 것 같다.


"맨날 병원 다니면서도 아프다는 소리밖에 안 해. 언제 안 아픈 적이 있었니."

그 말에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아프다는 말 뿐이었으니 어쩌면 그 말에 신물이 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아픈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걸까. 내가 죽어버리면 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만성통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이유

① 통증 자체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살아감에 따라 삶의 질이 떨어져 오는 우울감 완화를 위해

② 만성통증 환자의 경우 세로토닌 대사가 낮아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낮은 세로토닌이 불러오는 여러 증상들을 완화시키기 위해 (통증, 불안, 수면장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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