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병명의 등장
“평생 이렇게 진통제 먹고살 순 없잖아요. 끊어야지.”
그 말에 결심한 입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 전날 한 케타민 치료 때문에 이미 충분히 괴로운 상태였다. 화장실 문턱에 반쯤 걸터 누워 한 생각은 '그냥 누가 날 기절 시켜줬으면 좋겠다'였다. 오늘 당장 입원인데 나는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갈 것 같은 상태였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을 지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서 대기를 하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엄마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구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되는 헛구역질과 밀려오는 오심에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당시 병실이 부족해서 타 과인 신경외과 병동으로 1시에 입실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다시 원래의 신경과 병동으로 바뀌면서 한 번 더 지연이 되었고 4시에 입실을 하라는 문자가 왔다. 사실 얼마나 더 지연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한정으로 대기를 해야 하는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내가 일찍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병동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내를 받은 대로 무한대기를 할 수밖에. 나는 물 한 모금 마시면 그게 구토의 발단이 될까 물도 마시지 못하고 병원에서 5시간 이상을 대기했다. 3시 즈음 한 번 더 지연 문자가 왔고 4시 30분에 병동에 올라와 수속을 하라는 문자가 왔다. 심지어는 2인실을 신청한 상황이었는데 신경과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2인실이 없다는 이유로 5인실을 배정받았다.
시간에 맞춰 15층 병동으로 올라갔고 기본적인 신체사항을 확인한 후 침상을 배정받았다. 이어서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러 주치의 선생님께서 방문을 하셨다. 이번 입원 치료 목표는 두통 완화. 또다시 drug washout 특히 *opioid washout이 치료 목표로 잡혔고 입원을 한 김에 통증의 원인 찾기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먹고 있던 모든 진통제를 또다시 중단해야만 했는데, 진통제에 의존하다시피 해 살아가던 나에게는 경구 복용 진통제뿐 아니라 패치 또한 중단해야 한다는 그 말이 청전벽력과도 같았다. 하지만 밖에서와는 다르게 내가 해야 할 것들이 거의 0에 수렴했기 때문에 밖에서처럼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생각보다 괜찮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근자감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배정받은 병실은 5인실이었지만 정말 고요했다. 신경과 병동의 특성상 중증의 환자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거동이 가능한 것은 나뿐이었고 정신이 명료한 것 또한 나뿐이었다. 사실 내가 있던 병실뿐만이 아니라 그 층의 병동의 상황을 대충 살펴보았을 때도 나는 정말 경증의 환자에 불과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환자들의 앓는 소리와 간병인들의 수다 소리만이 내 귓등을 때릴 뿐. 하지만 작은 소음조차도 두통이 심했던 내겐 괴로웠다. 그 때문에 나는 두통과 오심을 달고서라도 병실 밖을 나가 병동 무한 돌기를 하거나 병원로비에 나가 앉아있곤 했었다.
느지막하게 입원 수속을 마치고 들어왔기에 첫째 날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첫날에는 따로 주사제 처방이 나지 않아 라인을 잡지 않았기에 계속되는 오심에 알마겔만을 처방받았고 밤이 되니 더 심해진 앓는 소리 사이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셔서 상태를 확인하셨고, 잠시 후 교수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그래도 입원했으니까 패취 떼야지.”라는 말에 나는 자신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완강하셨고 나는 그에 패취를 뗄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을 함께한 패취를 테이퍼링 없이 한 번에 떼어낸다고? 당시의 나는 37.5 mcg을 부착하고 있었는데 작은 용량은 아니었다. 근데 그걸 한 번에 떼어낸다니. 나는 교수님이 가신 후 간호사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작은 용량이라도 붙이고 있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의견이 반영되어서 12 mcg을 붙이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테로이드 요법이 그 시작이었다. *덱사메타손이 슈팅으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들어갔는데 덱사메타손이 들어가고 난 후에는 항상 오심이 더 밀려와서 맥페란을 바로 맞았다. 그 이후에는 맥페란이 루틴약으로 들어갔고 덱사메타손을 맞기 전에 맥페란을 맞았다. 사실 맥페란을 맞는다고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나서 오심이 없어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 맥페란은 예방 조치에 불과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덱사메타손을 맞고 나면 한~두 시간은 잠에 들길 선택했던 것 같다. 깨어있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잠을 자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니까.
덱사메타손을 맞고 한참을 자고 있을 즈음 다른 선생님께서 병실에 찾아오셨고 ‘만성두통환자 설문지’라는 것을 건네받게 되었다. 외래 때 가지고 다니던 두통일기 입원 버전이었다. 입원 내내 기록하는 두통일지로 시간대별로 두통의 강도를 기록해야 했다. 나는 만성두통을 비롯한 만성통증환자였기도 했기에 몸 통증도 함께 기록을 하라고 하셨다. 또 약물과용두통 연구에 사용하기 위한 동의서와 여러 설문지까지 작성했다. 이 보잘것없는 몸 뚱아리도 어디엔가 쓸모가 있다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I/O를 확인하러 오셨는데 오심 때문에 밥을 3분의 1도 먹지 못하고 가져다두는 모습을 보고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입맛이 없냐고 묻곤 하셨다. 들어가는 것도 없는 데다가 독한 약 탓인지 루틴약으로 변비약이 들어가 있음에도 주 1회 화장실을 가면 정말 많이 가는 것이었다. 입원을 한다고 달라지지 않았기에 나는 입원하는 10일 내내 화장실을 못 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복통이 생기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걸 문제 삼지 않았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찾아와서 “화장실 안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다른 약으로 드려볼까요?”라고 묻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하곤 했다.
약 조절을 위해서 들어온 나였기 때문에 약 때문에 터지는 이벤트는 정말 다양했다. 입원한 날부터 둘째 날까지는 가바펜틴이 꽤 높은 용량으로 처방이 나왔는데, 전에도 계속 부작용이 있던 약이었기에 그 약을 다시 마주했을 때에는 약을 먹는 것이 너무 두려워 단 한 번만을 복용한 후 그 이후에 처방이 나오는 약들은 모조리 빼두었다가 셋째 날 간호사 선생님께 도저히 못 먹겠다고 빼달라고 요청을 드렸었다. 가바펜틴을 대체할 만한 다른 약이 있는지 확인을 해주신다고 하셨고 *ADR 목록을 확인한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바꿀 수 있을 만한 약이 프레가발린인데 ADR에 등록이 되어있는 약이어서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하셨다. 잠시 후 다시 오신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사실상 교체를 할 수 있는 약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부작용이 가장 적은 가바펜틴 용량을 최소용량으로 복용하는 것은 어떻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그 약을 먹었을 때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먹지 않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복용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약으로 인한 문제는 계속해서 터졌다. 이따금씩 전에 다친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플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리도카인 파스를 붙이곤 했었다. 그날도 그렇게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파서 과제를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나에게는 그 마저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한되는 상황 속에서 "주치의 선생님께서 안된대요.."라는 말이 건네질 때 얼마나 슬펐는지. 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위에서 말했듯 남은 12.5 mcg은 3일 후 떼게 되었다. 하지만 떼어낸지 하루가 지난 후 나는 다리가 썰리는 듯한 통증에 다른 진통제는 다 끊어도 패취만은 다시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패취 다시 쓸래요. 죽을 것 같아요.” 이렇게 글로 보면 그저 철없는 인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당시의 나는 몸 통증 + 두통 + 오심의 난리통 속에 하나라도 잠재우겠다며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펜타닐이 아닌 소염진통제였다. 당연한 결과였을지 몰라도 그에 내 통증은 전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 이후 결국 패취 재처방이 결정 났다.
왜인지 심란하고 우울해
그래도 이겨내야지
내가 이겨서 나가야지
-2021년 6월 4일 일기 中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입원 4일 차. 교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통증의 원인을 찾아보자고 하셨고, 현재의 양상으로써는 섬유근육통의 증상도 있지만 다른 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그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병명은 '소신경병증', '소섬유신경병증'.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참 병들도 많다. 나는 교수님이 가시자마자 그 병에 대해 찾아보았지만 그 병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그렇다 할 정보를 얻지는 못하고 몇 개 있던 논문만을 읽어보았던 게 생각난다. 근데 결론적으로는 그 병 역시 치료가 쉽지 않다는 것. 소신경병증 자체의 치료 방법은 따로 없었고 신경병증에 사용하는 약물을 적용해 보는 치료 방법이었다. 어떻게 이런 병들만 골라서 의증으로 달리는지. 그날부터 나는 그 병에 포커스를 맞추어 모든 약을 갈아엎게 되었고 여러 가지 검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opioid : 아편유사제
-아편제제와 같은 작용을 가진 합성 마약으로서 아편유도체가 아닌 것
-세포막의 아편제 수용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아편제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천연산 펩타이드
*덱사메타손 : 염증억제작용이 있는 합성 부신피질호르몬제
*ADR (Adverse Drug Reaction) : 약물이상반응, 해당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있을 때 주의하기 위해 병원에서 등록해 놓는 약물 부작용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