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타민 최종 ver.
저번 케타민 치료 이후 내 인생에 케타민 치료는 더 이상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부작용이 난무하던 약제들로 약물 치료를 시도하기에는 내 몸이 버텨주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더 올리는건 어려웠다. 최후의 수단으로 나는 케타민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류마티스내과 외래 날 나는 교수님께 케타민에 대해 다시 언급을 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하고 싶은 치료가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이야기해 주어도 좋다며 케타민 치료를 다시 해보자고 하셨다.
통증의학과에서 했던 케타민 치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3일의 기간을 두고 총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점과 4시간의 경과관찰을 포함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점 때문에 입원과정이 필요했고 공강이었던 다음날 바로 입원 예약을 걸었다. 다음날 아침, 내 마음도 모르는 건지 날씨가 정말 좋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응급실 원무과에서 입원 수속을 했고 나는 입원장을 받아 4층으로 올라갔다. 무거운 철문을 열자마자 병동이 보였고 거기에는 1일 병동과 화학요법주사실이라는 표지판이 달려있었다. 미리 안내받은 곳으로 들어가니 이른 시간이었던 탓이었는지 간호사 선생님들만 계셨다. 평소에 병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약품이기에 약품이 올라오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안내를 받은 후 라인을 잡았다.
챙겨 온 문제집을 꺼내 한참을 풀다 보니 어느덧 9시가 훌쩍 넘었고 그즈음 케타민 약제가 병동에 올라왔다. 약물 주입이 되는 동안 속도와 주입량이 정확하고 일정해야 하는 약품은 '인퓨전 펌프'라는 기계를 사용하는데, 작동하는 인퓨전 펌프가 병동 내에 없어서 조금 더 지연이 되었다. 곧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인퓨전 펌프와 케타민 약제를 가지고 오셨고 케타민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내게 말씀을 해주셨다. 케타민 약물이 한두 방울씩 혈관 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어지러움과 오심을 느꼈다. 10분 만에 케타민이 잠시 중단되었고, 구역을 억제해 주는 약물인 *맥페란이 병동으로 올라왔다. 그 이후 교수님께서도 병동에 올라와 상태를 확인해 주셨고 맥페란이 다 들어가면 다시 케타민을 시작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1시간 후 나는 케타민을 다시 시작했고 약물 주입과 동시에 약기운에 잠이 들어버려서 오히려 무사히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나한테만 케타민이 듣지 않는 것만 같아서 짜증이 났다.
그렇게 3일이 지나 또다시 케타민 치료 날이 다가왔고 나는 그 괴로운 과정을 한 번 더 겪어야만 했다. 이번엔 울렁거림과 더불어 약물 투여 2시간 정도가 경과되었을 때 호흡곤란까지 오게 되어 주사가 잠시 중단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너무 뛰어 가쁜 호흡이 지속되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일단 남은 약물을 모두 투여하자고 하셨기에 남은 약물을 다 투여했다. 그 이후에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 쉬는게 괴로웠다. 이에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EKG를 찍어보자고 하셨고 결과적으로는 빈맥만이 관찰되었을 뿐 별 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경과관찰 후 퇴원계획지를 받아 귀가를 했다.
나는 그렇게 힘든 치료를 두 번이나 했음에도 나아짐 없이 계속 아팠다. 매일을 진통제에 의지해 하루를 이어나가야만 했고 그 마저도 되지 않는 날들이 하루 이틀 늘기 시작했다. 내가 당장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있어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었다. 나는 그렇게 진통제로 하루를 겨우 버티며 사는데 교수님들이 내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는데 "평생 이렇게 진통제를 먹고살 순 없어요."였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이 결국엔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너무 싫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그럼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라는 말인가? 하루하루가 시한폭탄과도 같던 내게는 그 말이 참으로 무책임하게 다가왔다.
의존할 수 있는 건 수액과 진통제뿐
아프지 않았더라면 병원 다니며 치료받을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요즘따라 친구들의 평범한 삶이 부러워서 눈물이 나곤 한다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아픈 게 자꾸 걸림돌이 되어 날 넘어뜨리곤 하는데
그게 너무 슬프고 억울하다
내 청춘의 날들은 온통 슬픔과 억울함 뿐
-2021년 5월 6일 일기
3주 후 교수님께서는 신경과 입원을 하기 전 날 다시 한번 더 케타민 치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고 이번에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나 힘들었으면서 또 하겠다고 한 과거의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 n번째 케타민 치료를 위해 다음 날 나는 또다시 1일 병동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역시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나는 침상을 배정받고 라인을 잡았다. 저번과 동일하게 도착한 시간으로부터 약이 올라오는 시간은 약 2시간이 걸렸고 케타민이 올라온 후 투여와 동시에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속이 쓰린 건 가끔씩 있던 일이었으니 참으며 치료를 이어나가길 택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는 극심한 어지러움과 오심을 느끼게 되었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
그 때문에 맥페란이 달렸고 이번엔 케타민을 중단하지 않고 함께 맞았다. 하지만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증상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심해져만 갔다. 정신을 차렸다가도 기절하듯 다시 잠에 들고를 반복했는데 내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새로 인지해야만 했던 그 상황이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케타민 투여가 끝난 후 나는 몇 시간 동안 화장실을 들락 거리며 구토를 해댔다. 하루 동안 먹은 거라곤 작은 젤리와 물 한 모금이었는데 계속해서 구토를 해대니 미칠 노릇이었다. 화장실에서 변기를 부여잡고 있는데 식은땀이 엄청났다. 그때 나는 이대로 쓰러져버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했다.
'죽을 것 같아.'
그 당시에 왜 거기서 도움을 청하는 게 굉장히 수치스럽고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생각이 들어 그냥 변기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있기를 택했다. 한동안 몸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몸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힘없는 폴대에 더 힘없는 내 몸을 의지한 채 병동으로 향했고 간호사 선생님께 상태를 말씀드려 맥페란을 하나 더 맞게 되었다. 그리고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아이알코돈 또한 전달받게 되었는데 아이알코돈을 물과 함께 삼키면 또다시 구토를 하게 될까 물 없이 삼켰다.
더 이상 게워낼 게 없던 나는 헛구역질만을 반복했고 그에 지쳐 바람을 쐬러 병동을 다시 나왔을 때 경과를 확인하러 오신 교수님을 마주했다. 교수님께서는 압통점을 눌러보신 후 통증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셨고, 일단 신경과 교수님과 연락을 해두었으니 잘 다녀오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게 든든하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죄스러웠다. 여전히 이렇게 나를 위해 노력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몸은 그에 반항을 하듯 악화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저혈압과 동시에 열이 나는 증상도 생겼는데 한 번 시작된 열은 계속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심박수까지 130으로 튀었다. 심박수가 120까지 내려가면 재투여를 하기로 했는데, 한참 동안 130 정도를 웃돌아 경과관찰만을 했던 기억이 난다. 투여가 끝난 후에도 증상은 계속되었고 증상완화가 되어야 귀가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간호사 선생님께 나는 몇 번이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있었으니 집에 가고 싶던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응급실에 내려가서 입원수속 하고 조금 더 경과관찰을 하고 가는 건 어때요?"라고 물으셨다. 하지만 구토가 멎은 틈을 타 집에 가고 싶었던 나는 집에 가서 빨리 쉬고 싶다며 끝까지 귀가를 고집했고 퇴원수속을 하고 병동을 나섰다.
내 고집에 병동을 나온 순간부터 나는 쉴 새 없이 구토를 해댔는데 심지어는 병원 밖을 나가서까지 구토를 해대는 바람에 다시 병원에 들어가 데리러 오기로 한 부모님이 올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내 몸에게 '나 응급실 가기 싫어. 한 번만 살려줘.'라고 빌었다. 어떻게 매일 최악을 갱신하는지. 더 이상 '오늘이 제일 최악이다'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이 상황들이 스스로도 감탄스러웠다. 아직 수습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인데 계속해서 일거리가 주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날 밤을 이불속이 아닌 차가운 화장실 바닥 위에서 보내야만 했다.
*맥페란 : 항구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