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누 Nov 01. 2019

고속철과 완행열차

기다림의 여유를 즐기세요. 포기하면 마음 편해요.

난 항상 일주일에 두 번 고속철을 탄다. 주말 부부를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금요일 저녁, 월요일 아침 두 번 고속철을 타고 대구-서울을 오간다. 그렇게 매주 고속철을 타며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낀다. 그런데 오늘은 완행열차(무궁화호)를 타봤다.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고, 휴대폰도 잠시 봤다가 고개를 들어봤다. 무엇이 다를까? 고속철을 타면 '찰나'라는 말이 와닿을 정도로 눈을 감기 전이나 휴대폰을 보기 전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그런데 완행열차는 달랐다. 저 멀리 보이던 작은 아파트와 상가들 조금 더 가까워져 있고, 도로 위의 차들이 조금 더 앞서 나가고 있을 뿐 똑같은 풍경이 다시 보인다. 이 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완행열차는 '느릿하게 여유를 즐기라'는 듯 천천히 달려가고 있다. 여유가 남다르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매일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고속철을 타면 아이가 울고, 여학생들이 조잘거리고, 아저씨가 전화하는 소리는 소음이다. 그래서 수시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잘 어르고, 전화는 통로에서 하고, 대화는 자제하라고 방송을 한다. 그리고 참 희안하게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다 엄근진이다.

하지만 완행열차에서 보는 얼굴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오일장에 가는 할머니, 시골 어른을 뵈러가는 아이들, 바닷가로 놀러 가는 여학생들. 모두 즐거워 보인다. 아이들은 통로에서 뛰기도 하고, 전화도 하고, 재잘재잘 수다도 편하게 떤다. 조용히 하라는 방송은 전혀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중요한 건 사람들의 반응이다. 고속철에서 옆에 사람이 떠들면 이어폰을 끼거나 째려보거나 승무원을 호출한다. 그런데 완행열차에서는 아무도 신경을 안쓴다. 왜 그럴까? 천천히 가는 열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옆 사람들이 들뜬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정겹다. 옆에서 혼잣말을 계속하시는 할머니의 말도 포근하다.

 

심지어 완행열차는 가다가 멈추기도 한다. 마주오는 차를 피하기 위해 잠시 정차한단다. 요즘 이런 여유가 있을까? 수 분을 멈춰서서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여유. 기다리면서 짜증을 내기보다 옆사람과의 수다 속에 행복에 심취하는 이런 여유가 있을까? 최근에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다림의 여유를 즐겨 본 적이 있는가?

휴대폰이 없던 시절, 친구가 약속시간이 늦으면 뭘했었지? 지금은 바로 전화해서 닥달하고,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고, 짤을 보고, 게임을 하고 기다린다. 그 땐 뭘했지? 공중전화로 친구 집에 전화해서 나갔는지 물어보고, 어차피 듣지도 못할 삐삐에 하소연하는 음성메세지를 남겨둔다. 7~8명이 줄을 서 있는 공중전화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유일하게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땐 시집도 많이 봤다. 소설은 두껍고, 중간중간 읽으면 스토리 연결도 안되고 집중도가 떨어지니, 가볍고, 짧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을 참 많이 읽었다. 읽고 마는 게 아니라 하늘을 보며 생각도 해보고. 그런 낭만도 있었다. 늦게 온 친구에게 "왜 늦었어"라고 타박은 줬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시간낭비'가 아니라 '혼자만의 여유'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약속시간 10분만 내가 늦어도 정말 미안해서 사과를 수 번해야하고, 상대방이 늦게오면 그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한 번 대구에서 서울 가는 무궁화호가 40분 정도 연착이 된 적이 있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 것보다 더 놀란 것은 불평하지 않는 승객들이었다. 왜 그럴까? 고속철은 거의 늦지 않는다. 연착을 해도 몇 분이다. 하지만 완행열차는 당연히 연착을 하고, 도착시간을 당연히 갸늠할 수 없다. 그렇기에 타는 사람들은 다 포기한다. 연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싸울 일이 없다. 받아들이니 조바심이 날 일이 없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아이를 키우고, 한 팀의 팀장으로써 함께 커가는 팀원들이 있다. 우리 아이와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많다. '왜 이렇게 밖에 하지? 왜 이것 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에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이런 감정은 내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와 조바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떻게 커갈지, 우리 팀원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리더가 될 지 모른다. 10년, 20년 지나봐야 안다. 갸늠할 수 없다. 그럼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고속철처럼 내가 정해 놓은 길로,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가도록 계속 강요하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아쉬운 감정이 생기고, 짜증이 쌓이고, 감정의 반목까지 간다. 완행열차에 탄 것처럼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하루하루 수 많은 일에 떠 밀려 바쁘게 뛰어다닌다. 회사에서 내 자리가, 내 책상이 무슨 의미기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잠시 자리에 앉을 틈이 없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서 6~7개 층 정도는 계단으로 오르 내린다. (오를 때는 힘이 너무 들고, 내릴 때는 무릎이 너무 아프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침 8시 17분에 출근하여 노트북을 켜는 순간부터 노트북을 들고 뛰기 바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하는 종착지는 출근시간이 지난 5시 40분의 내 자리...그때서야 하루를 뒤돌아본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말을 했고,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튼 모든 게 잘 돌아갔으니, 5시 40분에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거겠지. 요즘은 이렇게 바쁘게만 달리는 일상에 점점 지쳐간다.


비둘기호가 달리던 시절에 고속철은 통일호였다. 통일호가 완행이 되는 순간에는 무궁화호가, 그 뒤로는 새마을호가, 그 뒤로는 KTX와 SRT가 나왔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나는 월급이라는 연료를 먹고 달리는 KTX나 SRT쯤 되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고장도 나고, 언젠간 나보다 더 빠른 고속철이 나오게 되어 나도 완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세상에서 없어진 통일호처럼...나도 결국 폐기가 되겠지.

고속철이 완행이 되는 것 처럼. 사람도 시대가 변하고, 늙으면서 지혜가 생기고, 여유를 알고 행동해야 한다. 항상 최고가 되고, 빨리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천천히 움직이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나도 이제 서서히 내려두고, 여유를 가지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90년생은 참 불쌍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