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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누 Nov 01. 2019

왜 메디컬 드라마에 나오는 의국에는 만화책이 있을까?

문제를 심플하게 만들어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의국(醫局)에는 의사들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2층 침대가 항상 보인다. 그 침대에는 이불이 제멋대로 어지럽혀져 있고, 그 위로 만화책이 흩어져 있다. 미드 『시카고파이어』에서도 교대로 근무하는 소방관들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공간에는 침대와 그 위에 놓여진 얇은 소설책, 잡지, 만화책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로컬 병원에서 영상의학과 페이닥터로 근무하는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레지더트가 마치기 전까지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는 것 같아. 시간이 나더라도 밤새 TV를 보다가 새벽 4~5시나 되어야 잠이 들었어. TV 보는 게 잠자는 것 보다 낫더라구."

가장 참기 힘든 고문이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계속해서 잠을 자지 않는다면 정말 힘든 일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최소한의 음식과 최소한의 잠이 주어진다면, 그 다음으로 인간이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머리를 쉬게 하는 것, 걱정과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인 것 같다.


모든 직장인은 본인에게 주어진 직급과 직책, 의무와 비례하여 복잡한 문제들을 부여 받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고 샤워를 하는 순간부터 오늘은 어떤 일이 있고, 어떤 일부터 할 지에 대해 머리에 그리면서 직장인의 본분에 다가간다. 회사의 문을 여는 순간 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눈 앞에 펼쳐진 업무를 닥치는 대로 처리하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서까지 일과 미팅, 보고서에 시달리다보면 겨우 오늘 급하게 할 일 정도는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내일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내일 일을 미리 해둘까? 오늘 미친듯이 일을 했으니, 내일 일은 내일로 할까? 내가 오늘 꼭 해야하는 일 중에 빠뜨린 것은 없을까?' 의미없는, 항상 답은 같은-내일 일은 내일로...-결정을 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오면 내가 하는 일은 한 가지 밖에 없다. TV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가끔 산책을 하거나, 아주 가끔 책을 보거나, 더더더 가끔 일을 하거나.

사람들은 TV가 바보상자라고 한다.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게끔 한다고. 하지만 이만큼 '머리를 쉬게하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진이 다 빠질 정도로 고민, 생각을 하고 머리를 굴린다. '학창시절 이렇게 집중해서 머리를 썼으면, 내가 지금 이 일보다 편하게 살텐데, 돈을 더 받고 회사에 다닐텐데.'라고 욕을 하면서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하루종일 미친듯이 일한 내 머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 나는 그것이 TV를 보는 시간이다.


TV를 보는 일, 머리를 쉬게하는 일을 하고 나면, 어렵던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문제를 심플하게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잘 안풀리는 일이 있을 때, "잠시 쉬다가 다시 해"라는 선배들의 말처럼 머리를 식히고 문제를 심플하게 보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퇴근 길에 머리가 아픈지 않은가요? 회사에서 너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은가요? 머리를 쉬게하자. 머리를 쓰지 않는, 그 어떤, 아무 일이나 하면서 머리에게 휴식을 주자. 그러면 어렵던 문제들이 심플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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