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굳이 입 아프고 힘들다고 징징거릴래?
직장생활이 우리 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지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죽고 싶은 것처럼, 직장생활도 지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그만 두고 싶을 때를 느낀다.
나는 당뇨병이 있어서 매일 한 봉지의 약을 먹는다. 약만 잘 먹으면 아무 일 없다. 3개월에 한 번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내 몸에 혈당수치와 인슐린 분비는 정상이다. 하지만 하루 약을 거르거나, 폭식, 폭음을 하면? 그래도 아무 일이 없다. 다만 혈당수치가 조금 오르고, 오른 혈당 수치를 잡기 위해 1주일 정도는 평소보다 식단 조절을 좀 더 빡시게,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선생님한테 잔소리를 한 번 듣는다. 큰 일이 나지는 않지만 만회를 하기 위해 조금 고통스럽고, 잔소리는 짜증스럽다.
오늘 보고서에 오타를 내는 사소한 실수를 했다. 수치 분석을 조금 잘 못해서 숫자가 아주 약간 틀어졌다. 실수는 금새 찾아서 보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실수를 팀장이 매의 눈으로 봤다. 뭐라고 얘기는 안하지만 신경은 쓰인다. '나를 부주의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나에 대해 나쁘게 평가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이고, 팀장의 눈빛이 어른거리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것을 더 잘하려고 몇 번 더 꼼꼼히 보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큰 일이 나지도 않고, 승진이나 연봉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신경도 쓰이고, 시간도 소모된다.
가끔 감기를 한다. 감기를 하면 정신이 맑지도 않고, 무기력하고, 식욕도 없고, 자고만 싶다. 병원에도 가야하고 의사선생님한테 주사도 맞아야 한다. 챙겨주는 약은 꼬박꼬박 안 까먹고 먹어야 하고, 술도 못 마시고, 죽을 먹는 게 좋다. 생활에 주의와 절제가 필요할 정도이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의 고통을 참고나면, 씻은 듯이 낫고,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 크고(성장하고), 더 건강해지고, 더 활기차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평소보다 많은 일로 거의 한 달 내내 야근을 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정말 커피 한잔, 담배 한대를 할 시간이 없는 이상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가며 일을 해도 일은 쌓여가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싶은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친 몸과 에베레스트만큼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 앞에서 줄담배만 핀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밥을 먹기도, 씻기도 싫다. 온 몸에 힘이 없고, 눈꺼풀은 감기고, 프로포폴이라도 맞고 정신과 육체가 노곤하게 스르르 잠들고 싶다. 그런데 한 달 내내 야근한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고, 팀원들과 얼큰하게 취해 본다. 다음날 아침(주말이라 가정하자)에는 대충 씻고 만화방에 반쯤 누워 사이다와 꿀꽈배기를 흡입한다. 중간 중간에 눈도 붙이고, 배고프면 짜장면도 시켜먹는다. 오후 5시나 되어 슬리퍼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며 맞는 햇살이 너무 좋다. 내가 마친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은 또 하나의 내 스펙이 되었다. 나는 업무담당자로써 한 층 더 성장했다.
가끔 순간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일도 있다. 문에 손이 찧이는 것 처럼, 침대 모서리에 발이 찧이는 것 처럼, 스팸을 굽다고 손을 데이는 것 처럼, 넘어져서 살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일들. '으악~'소리를 지를 만큼 무지 아프다. 별다른 조치를 할 수는 없지만 상처도 꽤 길게 간다. 피멍이 빠지거나 상처가 아물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상처가 낫는다고 더욱 성장하는 건 아니지만, 아픔에 대한 경험이 늘어가고, 앞으로는 문을 닫거나 스팸을 구울 때 조심해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상처 중에는 간혹 평생 흉터로 남기도 한다.
긴 시간을 들인 건 아니지만 내가 쓴 보고서에 대해 욕을 먹었다. '의식의 흐름에 이게 맞니? 아휴...(이하생략...상상에 맡긴다)'. 짜증 섞인 멘트들이 날라왔다. 내가 선의로 한 행동을, 내가 믿고 했던 이야기들을 무기로 동료로 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배신감에 '우와...나원 참'이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걸 죽여, 살려. 와 열폭' 짜증 밖에 나지 않았다. 나 때문에 일이 꼬여버린 적도 있고, 내가 한 선택으로 난감한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시말서를 써야할 정도의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 실수를 덮으려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나서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순간 짜증 게이지를 최고치로 올려버리고, 부끄럼 폭발로 온 얼굴이 벌게진다. 순간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고,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고, '아...내 직장생활이 이렇게 끝이 나나?', '아...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지?' 오만가지의 생각이 거대하게, 순식간에 파도처럼 몰려든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고통은 퇴근 후 고주망태가 되든, 10km 전력질주를 하든, 헬스장에서 땀을 한바가지 쏟든, 바이올린을 켜며 안정을 찾든, 빠르게 감정이 다 잡아진다. 몇 일을 고민스럽고 부끄럽긴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이 해결을 해 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그리고 이런 일들을 통해 내가 성장을 하지는 않지만-뭘 배운게 아니니까-뒤통수를 조심하게 되고, 팀장의 보고서 컨셉을 알게 되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조심하게 되는 등을 깨닫게 된다. 다른 건 모르겠고, 거짓말과 뒤통수 맞은 건 평생 기억에 남기도 하더라.
정말 드물지만 수술도 한다. 얼마 전에도 작은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지내면서 드는 생각은 '아프다. 고통스럽다. 빨리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 내일이 오면 나아지려나?'라는 것 뿐이었다. 진짜 나이 40에 아파서 울뻔했다. 빨리 고통이 끝내는 순간만이 오길 바랬다. 수술은 돈(Resource)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회복도 어렵지만, 잘 끝나면 '건강'을 되찾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보상을 받는 것이다.
몇 달이 걸려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잘 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이상한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인을 추적하던 중, 프로젝트 중반에 내가 했던 잘못된 결정과 업무들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팀원 중 한명이 나(팀장)의 리더십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상사에게 투서를 하여, 나의 리더십에 대해 강한 챌린지를 받게 되었다. 평소에 해오던 루틴한 일들 사이에서 누수가 생기고 있었음에도 알아채지 못하는 바람에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쯤되면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신이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옵니까?', '이 일을 타계할 수 있을까? 그냥 퇴사를 해야하나?' 간혹 도덕적 해이가 맞물리는 경우는 불치병처럼 퇴사 많이 답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큰 일들-매우 큰, 직장생활에서 결코 잦지 않은-은 어떻게든 해결이 되기 마련이다. 빨리 이 고통과 힘듦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체력과 시간 등 내가 가진 모든 리소스(resource)를 다 쏟아 부어도 회복이 안된다. 내년도 내 연봉은? 내 승진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정말 답답하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노력하는 만큼 회복이 빨리 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잘못과 부끄러운 일들도 사람들-특히 윗분들- 머릿 속에서 까먹어 진다. 한참이 지난 후에는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는 후배를 보며, "내가 예전에 말이야."라고 하면 들려주고, 후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값진 경험담이 된다. 나의 내면을 다지고, 상대방의 존경을 얻게 되는 마법의 경험이 된다. 비 온 뒤에 굳는 땅과 같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와 같은 일들이 된다. 특히 멘탈이 강해진다. 강해진 멘탈은 앞서 언급한, 감기같은, 손이 찧이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도록 나를 탄탄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의 몸이 느끼는 감정처럼, 고통처럼, 우리의 인생도, 직장생활도 똑같은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 우리 몸이 아프면 약을 먹는 것 처럼, 직장생활의 고통은 술과 담배로 달랜다. 몸이 아프고 나면 성장하는 것 처럼, 직장생활도 아프고 나면 좀 더 강한 멘탈로 태어난다. 5살의 나는 바늘에만 찔렸도 울었다. 지금의 나는 아니다. 20대의 직장인으로써 나는 감기만한 일에도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어떻게 하지?'라고 했다. 지금의 나는 아니다. 왠만해서는...'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꺼야'라고 생각한다. 10년 후의 나는 어떨까? 더욱 성장해 있을 것이다. 고통에 대한 참을성은 커지고, 내가 하루하루 겪는 힘든 일들로 인해 단련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더욱 크고 멋진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힘들어 하는 일들은 더 멋진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모두가 감기를 하고, 손이 데이고, 한 번쯤 수술을 해보는 것 처럼, 모두가 겪는 일이다. 내 혼자 힘들고 지치는 일이 아니다. 감기 걸렸다고 울래? 손이 데였다고 붓기가 빠질 때까지 징징거리고 있을래? 수술 후에 계속 진통제에 의지하고 고통을 피할래? 직장생활에서 오는 힘듦은 그냥 몸이 아픈 것 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라. 어차피 울어봐야 고통이 줄지는 않는다. 힘들다고 징징거려봐야 일이 줄거나, 연봉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힘듦을 뛰어 넘을 때, 성장이 있고, 그에 대한 대가가 있는 것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CRPS)은 드물게 발생하는 교감신경계의 질환으로 극심한 통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건강백과]
드라마 『의사 요한』에서는 CRPS 환자가 나온다. 바람만 스쳐도 칼로 후비는 것과 같은 고통에 힘들어 하고, 손만 닿아도, 지나가다 스쳐도 죽을 듯한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환자가 나온다. 매순간 다가오는 극심한 통증을 만성으로 매일 달고 사는 환자. 이 사람에게 고통이란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것처럼 항상 옆에 있는 일상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을까? 하지만...그는 살아간다. 아이들의 아버지로써,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노부부의 아들로써. 본인의 고통을 참아가며 일을 하고,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참으면서...
내 직장생활이 CRPS 환자처럼 매일이 죽을 듯한 고통은 아니지 않는가? 매 순간이 폭발해버릴 만큼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터질 듯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가 제일 아픈 것 같아도, 더 아픈 사람도 있듯이, 내가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더 힘든 직장인도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