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과의 경주

이상한 경주의 추억

by 노랑꽃

사춘기가 다가오자 호르몬이란 녀석은 알게 모르게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평소에 맛있게 먹던 음식이 싫어지기도 하고 별 의미 없는 농담에 예민해져서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가끔은 이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모든 것이 부도덕하고 차별로 가득한 몹쓸 곳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분명히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아침을 먹고 나면 기분이 나빠져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등교하고, 다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재잘거렸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기분 탓에 화가 난 엄마는 더 이상 나의 기분을 맞춰줄 수 없다면서 내가 신던 신발과 가방을 모두 밖으로 던져버린 일도 있었다. 다행히 사춘기 호르몬은 엄마의 엄포를 이길 만큼 세지는 않아서 엄마의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던져진 물건들을 주워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중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경운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공부를 잘해 동네가 아닌 김포 시내로 입학했고 덕분에 경운기가 아닌 버스로 통학했다. 나도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도 되지만 차비가 아까웠다. 걸어서 20분인데, 멀지도 않은 거리를 돈 써가면서 다니는 게 부모님께 죄송했다. 난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자랑스러웠던 경운기도 점점 창피해졌다. 경운기는 동생만 태워주면 된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섭섭한 얼굴로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이제 창피해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걸어서 다니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톡 쏘아붙이는 나의 말에도 아빠는 내 마음을 돌리려 경운기를 타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위험해서’였다. 동네를 벗어나 학교를 가기 위해 걷던 그 길은 차도였는데, 양쪽으로 언덕 같은 산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 산에서 범죄자가 숨어있다가 걸어가는 사람을 납치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납치되어서 산속 소나무에 묶여 있다가 겨우 탈출한 사람도 있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범죄자보다 자동차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 속에 경운기를 타고 등교하는 내 모습이 더 무서웠다.

아빠에게 계속 강요하지 말라는 말로 쐐기를 박고 걸어서 등교를 시작한 지 일주일 후, 경운기는 이상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경운기의 뒷자리에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뼈대 모양의 아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야, 이것 봐라. 이렇게 세워서 천막으로 덮으면 너 타고 있는 거 하나도 안 보여.”

얇은 쇠 파이프 뼈대 위쪽으로 주황색 천막을 덮으면서 아빠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탈 때마다 덮어 준다고요?”

“양쪽 옆은 계속 덮고 다니고 네가 타면 뒷면까지 천막 내려주면 되지. 안 보이게.”


사방이 주황색 천막으로 덮인 우리 경운기는 마치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같았다. 아빠는 경운기를 넘어 ‘경운기 마차’를 운전하실 계획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에게 아빠는 한번 타고 나갔다가 오자면서 나를 달래셨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가기는 싫었지만, 주말 이른 아침이라 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효도 한번 하자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기로 했다. 시내로 나가는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경운기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좋았지만, 사방이 막혀 생각보다 더웠다. 아빠는 덥다는 내 의견을 듣고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 천막의 뒷면을 끈으로 묶어 살짝 열어 주셨다. 그런데, 경운기가 출발하고 보니 천막이 너무 많이 열려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운기 뒤로 따라오는 자동차의 운전자가 분명히 내 모습을 보고도 남을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흔들리는 경운기 안에서 조심조심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천막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 골목 쪽에서 나온 오토바이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Oh, my god! Oh, my god!”

수선스러운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은 시내 성당의 외국인 신부님이었다. 천막의 끈을 찾으려고 엉거주춤 서 있던 나는 신부님의 쩌렁쩌렁한 소리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What happened? Oh, my god!”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치는 신부님은 한 손으로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나를 가리키며 따라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신부님의 과한 몸짓과 큰 소리에 기분이 상했다.

‘아니 이 동네에서 경운기 처음 보나?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인데?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생각해 보면 주황색 경운기 마차가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신부님의 모습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긴 사제복을 입은 덩치 큰 신부님과는 맞지 않는 작은 빨간색 오토바이는 무게를 못 이겨 바퀴가 눌려 있었다. 조금만 속도를 더 내면 금방이라도 고장 나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숱이 없는 신부님의 금발 곱슬머리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펄럭이는 검은색 사제복 뒤로 한 장 한 장 성당 전단지가 날려 떨어졌는데, 알아채지 못한 채 우리 경운기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우리를 추월하려는 듯 속도를 더 내던 신부님은 경운기 옆쪽으로 다가와 아빠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아저씨, 안뇽하쉐효.”

꼬부라진 외국인의 한국어 발음이 내 귀에 들리는 순간, 아빠가 경운기의 속도를 줄이는 게 느껴졌다. “네. 네. 안녕하세요.”

아빠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속 좋게 인사를 건넸다. 신부님이 어떤 의도로 대화를 시도하든 나는 이미 기분이 상해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고, 아빠의 등 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재촉했다.

“아빠! 경운기 3단으로 바꿔서 가요. 빨리!”

경운기 속도를 1단에서 3단까지 조절할 수 있었는데, 3단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예민해진 나를 보고 아빠는 신부님에게 안녕히 가시라는 공손한 인사를 하고 나서야 빠르게 운전하셨다. 신부님은 열심히 속도를 내며 쫓아오면서 왠지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계속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예기치 못한 이상한 경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괜히 엄마에게 누구든지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하면 절대로 가지 말라며 투덜거렸다. 학교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원래 외국인들이 표현을 조금 과하게 한다면서 놀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놀라워서 그랬을 거라고 위로했다. 친구들 말처럼 문화의 차이겠지만 내 안의 사춘기 호르몬 때문인지 아니면 내 자존심 때문인지 바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 이후 우리 경운기는 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황색 천막 중간중간을 작은 창문처럼 뚫어서 걷고 내릴 수 있게 만들고 푹신한 방석까지 생겼다. 가끔 친구들이 타면 아늑하고 재미있다면서 즐거워했다. 특히 경운기 안에 있는 우리들의 얼굴에 천막의 주황색이 스며들어 붉게 보일 때면 서로 호박 귀신이라면서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다. 사춘기 딸의 이유 없는 구박에도 멈추지 않던 아빠의 정성은 이렇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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