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의미
“아휴, 말도 말아라. 오늘도 박스 잔뜩 싣고 나갔지. 이제 경운기 버리라고 해도 내 말은 듣지 않아.”
이른 아침, 핸드폰 속에서 들리는 엄마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과 걱정이 섞여있었다. 비율상으로 짜증보다 걱정이 더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빠 편하신 대로 하게 두세요. 아무리 말려도 안되잖아요.”
“위험하다고 해도 어쩌면 그렇게 고집을 피우니? 나이가 몇인데.”
하긴, 70세가 넘으신 분이 경운기를 운전하기에는 위험이 많았다. 손에 힘이 빠져 손잡이를 놓치게 되거나 아빠와 함께 나이 든 낡은 경운기가 갑자기 운행 중 멈춰버리기라도 하다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엄마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부터인가 경운기에 새로운 물건들을 싣고 다니셨다. 박스나 중고 소형 가전제품 등을 실어 나르며 사람들에게 팔기도 하고 나눠 주기도 했는데 싣고 다니는 물건들을 팔기보다 그냥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볼 때 경제적인 수익을 내려는 의도는 아니신 것 같았다. 마치 오래되고 낡아 힘이 빠져 “나는 이제 틀렸어. 그만 놔줘!”라고 말하는 경운기에 포기는 아직 이르다며 새로운 임무를 주는 듯했다. 한 번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몇 번씩 시도할 때면 아빠는 “아휴, 참······.” 안타까운 탄식을 했다. 그러면 늙은 경운기는 아빠의 탄식에 순간 정신을 차린 듯 힘겹게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며 겨우 시동이 걸렸다. 나이 든 경운기 모습은 아빠와 비슷했다. 산뜻했던 붉은 계열 코팅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검버섯처럼 녹이 퍼져있었고, 낡은 경운기 얼굴은 살이 빠진 듯 왜소해 보였다. 기계가 사람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방송국 인형극 팀에서 퇴사 후, 나는 주부로 그리고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경력이 단절된 몇 년의 시간이 화살처럼 흘렀고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흘러버린 시간과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벗고 다시 조금씩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했는데 그곳은 항상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한 곳이었다. 봉사 전 지역아동센터가 한 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이 이용하는 기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가정환경 때문에 상처받아 무조건 위로가 필요하거나 예민한 모습일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고 밝은 아이들은 부정적인 내 생각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봉사는 위축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동센터 봉사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때 센터장님은 나에게 생각지 못한 제안을 했다.
“선생님, 이제 봉사 말고 아동복지교사로 일해보는 건 어떠세요? 이번에 복지교사 모집 공고가 올라왔어요. 잘하실 것 같은데 지원 꼭 해보세요. 물론, 일 년 계약직이라는 게 아쉽지만 분명히 좋은 경력이 될 거예요.”
좋은 경력을 위해서가 아닌,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몸부림으로 지원하게 된 아동복지교사의 주된 업무는 공부보다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채용 합격 통지를 받고 두 곳의 아동센터로 출근하면서, 나는 한동안 아이들 이름과 얼굴을 외우느라 애를 먹었다. 아이들은 불시에 “선생님! 제 이름이 뭐게요? 제 이름 아시죠?”라며 자기 이름을 맞추기 기대하며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면 나는 혹시라도 이름을 틀리게 말해 아이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떨리는 마음으로 대답하곤 했다. 이름 외우기 관문을 뚫고 업무를 익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갈 때쯤 엄마는 경운기를 처분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엄마에게 별일 아니지 않냐는 듯 말했다.
“이제, 아빠 운전 못하시죠. 잘한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래도 마음이 좀 허전하지. 너희 아빠는 더 서운할 거야.”
세상을 살다 보니 때가 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일을 하게 되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엄마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하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통화를 빨리 마치고 싶었던 이유는 퇴근 후 가장 바쁜 시간에 전화를 받아서라고 생각하면서 밖을 보니 늦은 저녁 시간을 맞이하는 아파트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마시는 10월 마지막 주 바람 속에 겨울 냄새가 가득했다. 그 겨울 냄새를 따라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2월. 아동센터 아이들은 봄방학을 맞이했다. 나는 겨울 방학에 이어 또 방학을 해서 좋다는 아이들과 함께 문제집을 풀고, 체험활동과 영화관람을 하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봄방학 숙제는 보통 독후감 쓰기였는데, 개구쟁이들은 개학 하루 전에 하면 되지 않냐며 떼를 쓰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연아는 그중 성실한 아이였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와 “선생님 안 힘들어요?” 안부를 묻는 아이였다. 연아는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가끔 기억을 잊는 초기 치매를 앓고 계셨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동화를 읽던 연아가 갑자기 나를 보고 말했다.
“선생님,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제가 할머니 목숨이래요.”
“그래? 할머니가 우리 연아를 너무 사랑하시는구나. 그런데, 연아는 목숨이 뭔지 알아?”
“그럼요. 목숨은 생명이에요. 생명이 있어서 숨 쉬는 거예요.”
“와, 연아는 정말 똑똑하다.”
“저녁 먹는데 할머니가 아파도 괜찮다고, 오빠랑 저랑 잘 크니까 할머니는 의미 있는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의미가 뭐예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의미는 오빠랑 연아가 예쁘게 잘 크고 있어서 할머니가 힘드셔도 괜찮다고 하신 거야. 할머니에게 연아는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뜻이야.”
순간 어린아이에게 ‘의미’를 설명한다는 게 어려워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지만, 연아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그러면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되죠? 오빠한테도 말해 줘야겠다.”
“우리 연아는 지금도 잘하고 있어!”
연아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사셨을 것이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손자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을까. 아픈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손자들에게 몸이 부서지게 힘들어도 너희들이 내 삶의 의미라고 말씀하셨을 할머니. 가슴이 아렸다.
그날은 유난히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서둘러 저녁을 먹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아빠는 고물상에 경운기 팔고 한참 허전해하더니 요즘은 좀 나아지셨어.”
아빠에게 그리고 나에게 경운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아빠에게는 자랑을 넘어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에게도 경운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방황하며 외롭고 힘든 아빠를 지켜주는 이 세상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였고 내 어린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준 보물이었다. 순간 어떤 말과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김포 가는 길은 봄을 넘어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엄마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들을 보며 아빠는 말도 없이 외출하셨다고 한숨을 쉬셨다.
“자전거 하나 사더니 매일 타고 나가신다.”
“아빠 자전거 타세요? 잘 됐네요.”
“매일 경운기가 어쩌고저쩌고 옛날 얘기만 하더니 자전거 사 오더라.”
“잘하셨어요. 그래야 경운기 생각 안 나고 좋죠.”
점심을 먹고 마당으로 나가 꽃향기를 맡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얼마 전 부모님이 새로 지으셨다는 창고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옛날 사슴농장에 있던 창고와 비슷한 느낌으로 물건이 정리되어 있었다. 가지런히 일렬로 놓여있는 몇 개의 공구박스 중 끌리듯 하나를 열어보니 익숙한 부품이 보인다. 경운기 손잡이에 달려있던 거울과 녹슨 주황색 부품들이었다. 생각 못 한 물건들을 보니 반가움에 웃음이 나며 동시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아빠는 소중했던 친구를 잊지 못하셨다. 아빠에게 경운기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소중한 추억이고 친구였다. 경운기는 그런 존재였고 그런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