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Mar 19. 2021

펫숍에서 왔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야

우리 집 반려 강아지 토리와 보리는 펫숍에서 분양받은 강아지다. 아니,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펫숍에서 돈 주고 사 온 강아지다. 딸아이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며 노래 불렀지만 난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완고한 내 태도에 강아지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딸의 카톡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에 강아지 정말 예뻐!’

‘너희 강아지 몇 살인데?’

“음… 그냥 좀 어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아이는 친구들과의 채팅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불러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가 일부러는 아니지만, 어쨌든 네 핸드폰을 보게 됐어. 그건 미안하다. 사과할게.”

아이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죄송해요. 거짓말해서.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래. 네 마음도 이해하지만, 친구들에게 거짓말한 건 정말 잘못한 거야. 알지?”

“네, 알고 있어요.”

“강아지가 그렇게 좋아? 강아지 키우려면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져야 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 허락할게.”

딸아이는 내 말을 듣자,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말했다.

“네, 저 정말 책임감 가지고 잘 돌볼게요!”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가족 찾기에 돌입했다.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인터넷 검색의 힘을 빌려 유기견 입양을 준비했다. 당시 동네 가까이에는 유기견 보호소가 없었던 탓에 동물 병원 중 유기견 입양에 힘쓰고 있다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병원이었는데, 외부 출장을 자주 나가시는 대 동물 병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에서 유기 동물 분양 상담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원장 선생님은 외근 중이시고, 제가 상담해 드릴게요.”

원장의 부인이었다. 여자는 나를 보고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물었다.

“OO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아파트요? 아파트는 안되는데. 강아지는 키워 본 경험이 있어요?”

“어렸을 때 마당에서요. 그런데, 아파트 살면 원래 유기견 분양이 안 되나요?”

내 물음에 여자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파트에 살고, 특별히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워 본 경험도 없고. 그럼 저희가 분양해 드리기가 좀 그렇죠. 그 아이들은 한 번 상처받은 아이들인데 혹시 아파트에서 키우기 힘들다고 다시 버려지면 어떻게 해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죠.”

“전 쉽게 생각하고 온 게 아니지만, 어쨌든 분양이 어렵다고 하니 아쉽네요.”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각서 한 장 쓰고, 칩 이식하고 나면 되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소중한 생명을 만나는 일인데. 

굳은 결심을 하고 갔지만, 유기견 분양이 어려워지자 딸아이에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는 펫숍에 가면 되는데 왜 걱정하냐고 해맑게 말했다. 나는 펫숍이 무서웠다. 티브이를 통해 강아지 공장을 보게 되었는데, 강아지 공장에서 펫숍으로 오게 된 작은 강아지들은 좁은 플라스틱 한 뼘에서 먹고, 자고, 쌌다. 강아지들의 작고 예쁜 모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원래 먹어야 할 적정량의 사료에 3분의 1만 먹인다는 소리도 들었다. 분양이 되지 않은 강아지들은 다시 강아지 공장으로 보내져 강제 출산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물론, 양심적인 사업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속 펫숍은 무서운 곳이었다. 


“엄마, 약속 꼭 지킬 거죠?”라고 말하는 딸아이와, 일단 어디든 가보자는 남편과 함께 방문한 곳에는 여러 종류의 강아지들이 투명한 사각 박스 안에서 “낑낑”소리를 내며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픈 감정에 목이 메었다. 

‘이 강아지들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신나서 모든 강아지를 다 데려가고 싶다는 딸아이를 보고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여보! 요 녀석들 어때? 푸들인데. 귀엽다.”

아이보다 더 신난 남편이 귀엽다는 말을 하자, 이 순간을 놓칠세라 직원이 설명한다.

“얘네들은 쌍둥이라, 한 칸에서 같이 지내요. 귀엽죠? 씻기려고 한 녀석을 데려가면, 남은 녀석이 울어요. 서로 많이 의지해요. 분양가 세일하는데, 데려가세요 사장님!”

남편은 너무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여보, 우리 애들 같다. 둘이 떼어 놓으면 안 될 거 같아. 두 마리 다 데리고 갑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의 품에 빨간 리본과, 파란 리본으로 한껏 멋을 부린 태어난 지 2개월 된 푸들 두 마리가 안겨 있었다. 그렇게 보리는 분양 세일가 48만 원에, 토리는 45만 원에 우리 집 강아지가 되었다. 

우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토리와 보리가 있었던 펫숍에서 미용을 하고, 간식을 산다. 펫숍 직원은 우리를 볼 때마다 “강아지를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저희가 감사해요.”라는 말을 하는데, 참 씁쓸한 말이다. 최선을 다해 돌보는 건 당연한 책임인데,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 계획한 대로 유기견을 입양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들을 보면 “우린 운명이야! 사랑해! 사랑해!”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나는 바란다. 어떤 제도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모두가 수긍하고 지지할 만한 동물보호 제도가 나오길. 유기 동물이 줄고, 펫숍 분양에 대한 제도가 개선되어 언젠가는 펫숍 분양을 뿌듯해할 날이 오길. 돈보다 동물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 생명존중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천사들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지금 우리 가족은 또 다른 천사를 맞이할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고 있다. 그날이 언제인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떤 천사를 맞이할지는 정해졌다. 그 천사는 버림받은 것에 굴하지 않고, 어디선가 새로 만날 가족에게 또 한 번 사랑을 전해줄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친구다. 그 천사를 너무 늦지 않게 꼭 만나고 싶다. 만나게 되는 날 정말 고생했다고, 그리고 우리가 미안하다고 꼭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절도 붕어빵처럼 바삭하고 맛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