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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Mar 16. 2021

거절도 붕어빵처럼 바삭하고 맛있게

'안돼'라는 말에 '배려'를 조금만 넣어주세요

거리에 가득한 봄 내음을 맡으며 길을 걷는다. 특별할 것 없는 날인데, 봄은 마치 가슴이 두근거릴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기대하게 한다. 조금만 걸어도 신선한 콧바람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진다. 가사를 외우지 못하는 신나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볼일만 보고 들어오자’ 다짐했는데, 봄 냄새에 홀려 어느새 옷과 화장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점마다 빨간색으로 쓰여있는 ‘봄맞이 파격 세일’ 일곱 글자를 보니, 정말 봄이 온 게 확실했다. 


몇 가지 화장품을 사서 돌아오는 길. 로터리 회전 구간 한쪽에 붕어빵 천막이 보였다. 겨울 동안 가끔씩 들렀던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인사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는 학생들에게 붕어빵을 포장해 주느라 바쁜지 대답이 없었다. 학생들이 사 가고 남은 붕어빵은 세 개. 나는 혼자 앉은 자리에서 붕어빵 열 개도 거뜬히 먹는 아들을 생각하며 나름의 개수를 계산해 주문했다.

“사장님, 붕어빵 오천 원어치 가능할까요?”

“오천 원이요? 지금 세 개밖에 없어서 안돼요. 새로 구워야 돼요.”

으응? 새로 구워 내는데 왜 안된다는 거지? 

“기다렸다가 새로 굽는 거 가지고 갈게요.”

기다린다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보며 팥 주머니를 꾹꾹 누르더니 못마땅한 듯 말했다.

“안돼요. 그렇게 장사할 수 없어요. 누가 기다리면 부담스러워서 힘들어요.”


당황스러웠다. 손님이 기다리면 부담스럽다는 말. 물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사장님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게 ‘죄송스러워서’라고 에둘러 표현했던 것 같은데, 아주머니는 아니었다. 

“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내 말에 아주머니는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빨리 만들려고 하다가 붕어빵 다 망치고, 망치면 팔 수 없잖아요. 팥도 다 버리게 되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야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길. 기분이 불쾌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 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불쾌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아주머니가 내 주문대로 붕어빵을 팔지 않아서?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안돼’라는 거절을 하는 아주머니의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되는 이유를 굳이 ‘그렇게 장사할 수 없다’라는 말로 해야 했을까? 붕어빵에 금덩이를 넣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손님이 기다리면 부담스러운 이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다리겠다는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 혹시 붕어빵을 망치게 되면 손해 볼 ‘나’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아 불쾌감은 배가 되었다. 나는 좀 더 배려가 있는 거절을 원했다.

‘지금 당장 빨리 만들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시면 맛있게 구워드릴게요.’

‘오천 원은 힘들고, 개수를 좀 줄여서 사 가시면 어떨까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에 한동안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본인의 생각과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손님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말은 참 어렵다. 듣기도, 하기도. 생각해 보니 나도 순간 기분이 언짢다는 이유로 수고하시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섰다. 마흔이 훌쩍 넘은 사람이 유치해지는 순간이었다. ‘수고하세요’ ‘많이 파세요’ 정도의 인사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며 좋은 말은 귀로 듣는 보약이라는데, 그 보약 내가 먼저 주고 올걸. 이제는 누구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내가 먼저 바로 건네줄 수 있도록, 마음속에 귀한 재료 넣어 최상의 보약으로 잘 끓여놔야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도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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