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Mar 08. 2021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

엄마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 지길

전 세계를 뒤흔드는 몹쓸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니면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딸은 온라인 학습을 마치고 간식을 만들어 먹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공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공부도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재능이라고 생각하기에 딸아이에게 ‘공부해라’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철없는 마음에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아무런 꿈이 없는 건 아닌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딸아이는 야무지게 말한다.

“엄마, 난 공부 못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대학보다 직업학교 가서 하고 싶은 거 배울 거예요.” 


나는 딸의 의견을 존중한다. 딸은 내 자녀이기 이전에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내 얼굴을 보고 딸아이가 말했다.

“아무래도 난, 엄마를 닮았어.”

“응? 갑자기?”

“엄마 닮아서 좀 독특할 때가 있어.”

나처럼 평범하고 재미없게 사는 사람도 드물 텐데, 독특하다니 웃음이 났다.

“야, 나처럼 평범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아니야, 민지도 엄마 특이하고 독특하다고 했어. 다른 엄마들하고 다르다고.”


민지는 딸아이와 같은 반 친구였고 항상 1등을 하는 아이였다. 딸은 민지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보다 큰 키를 부러워했었다. 그러고 보니 민지와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났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다 오랜만에 눈부신 해가 뜬 날이었다.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해놓고 외출하는데 거리에는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어쩌면 이 많은 아이들 속에 딸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맞은편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딸과 민지였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안녕!”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딸아이는 지나쳐가는 나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잠깐만! 어디 가는데?”

“마트에서 살게 있어서.”

딸과 나의 대화 속에 민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딸을 보며 물었다.

“누구신데?”

“응. 우리 엄마야. 엄마, 얘가 민지예요. 나랑 가장 친한 친구.”


민지는 깜짝 놀란 동그란 눈으로 인사를 하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딸은 나에게 혹시 배고픈 불쌍한 학생들에게 먹을 걸 사줄 생각이 없냐며 졸졸 따라왔다. 근처 편의점에서 원하는 대로 먹을 것을 사주고 두 아이를 보냈는데, 이후 민지는 그때 일을 종종 떠올렸다고 한다. 그날 내가 보통의 엄마들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어떤데?”

“먼저 이름을 크게 부르고, 손도 흔들지. 친구는 자기 엄마 창피하다고 그냥 가자고 하고.”

“아, 그렇구나.”

딸의 말을 듣고 나니 엄마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때 내가 그렇게 했어야 했나? 생각하게 된다. 그 상황에 내 행동은, 어쩌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딸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름도 부르지 않고, 아는 척 안 해서 서운했었니?”

“아니, 왜 서운해?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내가 부르면 되는데 뭘.”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가 뭐 그래?” 

“엄마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자녀를 양육하고 안전하게 책임지며, 사랑으로 성장하게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아니라면, 좀 더 ‘엄마’에 대한 시선이 부드러워지길 바란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 ‘엄마라면 당연히’라는 굴레에 씌워 하나부터 열까지 판단한다면 과연 남아있을 완벽한 엄마가 존재할까 싶다. 

나는 딸을 사랑한다. 먼저 애절하게 다가가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지 않아도. 어쩌면 엄마로서 부족해 보이는 행동일지 모르지만, 내가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딸아이가 나를 보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 민지가 엄마 되게 쿨해서 멋있대.”

“정말? 이상한 엄마라고 하지 않고?”

“엄마가 왜 이상해? 이상한 게 아니라 개성 있는 거지.”

그러면 됐다. 딸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된 거다. 더 말이 필요 없다. 

방으로 들어가던 딸이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한마디 추가한다.

“참, 민지가 엄마 삼십 대인 줄 알았대. 내가 엄마 나이 얘기했더니 깜짝 놀랐어.”

더 말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이런 말은 진심이든 거짓이든 언제든 환영한다. 민지는 공부를 잘하는 만큼 사람을 보는 눈도 정확한 아이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그라미와 네모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