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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Mar 22. 2021

아파트 담배연기는 절대 향기로울 수 없다 1

우리 폐는 누가 보호해 주나요?

“야! 이 거지 같은 XX야! 내가 7년을 참다가 이사 간다!”

우리 윗집에 사시던 중년 부부가 이사 가던 날. 아저씨는 아파트 마당에 서서 1층 베란다를 향해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소심한 나는 아저씨를 보며 1층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나, 혹시 싸움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내 다디단 아저씨의 거친 말에 가슴이 뻥 뚫렸다. 다행히 1층에 살고 있는 가족이 모두 외출했는지 잠잠하다. 나는 2층인 우리 집 베란다에서 문을 열고 고함인 듯 환호인 듯 울분과 시원함이 묻어 있는 3층 아저씨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히 가세요! 축하드려요!

홀가분하다는 듯 웃음을 띤 얼굴로 차를 타고 떠나는 부부를 보니 한없는 부러움이 밀려온다. 차의 뒷모습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듯 단호해 보였다. 

나는 바로 윗집에 살던 3층 중년 부부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가끔 만나면 인사 나누고 얼굴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 서서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던 건 우리 집 아래, 1층에 살고 있는 청년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침, 아파트 관리소장님이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왔는데,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2층 사모님이시죠? 관리소장입니다. 잠깐, 얼굴 뵙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네, 무슨 일이신데요?”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잠깐이면 됩니다.”

집으로 방문한 관리소장과 아파트 관리원 아저씨는 어리둥절한 나에게 말했다.

“어제저녁 3층에 사시는 분께서 담배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찾아오셨어요. 6년을 참았는데,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하면서 여기 2층 사모님 댁에서 담배 피우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사모님 남편분께서는 술, 담배를 안 하시잖아요? 제가 말씀드렸죠. 2층은 아닐 거라고, 아마 1층인 것 같다고. 혹시, 1층에서 담배연기가 많이 올라오나요?”

관리소장의 말을 듣자 나는 마음속으로 ‘네! 아주 오지게, 징그럽게 핍니다!’ 소리쳤다.

“네, 정말 많이 피워요. 담배 냄새 때문에 너무 괴로워요. 10년 가까이 피해가 큽니다.”

“그러셨어요? 저희가 1층에 잘 말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강제성을 띠고 피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서요. 그건 이해하시죠?”


10년이란 시간을 참았던 말을 겨우 했는데, 뾰족한 해결 방법 없이 대화는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고 보니 6년이란 시간 동안, 3층 부부는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어쩌면 저주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꼭꼭 찌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담배 냄새도 모자라 수년 동안 억울하게 욕먹었을걸 생각하니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랫집에는 중년부부와 성인인 아들과 딸,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만화가를 준비한다는 청년은 지독한 골초다. 윗집 아저씨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선언한 1년 뒤 이사를 갔지만, 우리 식구는 여전히 아랫집 담배 냄새에 고통을 겪고 있다. 그나마 겨울은 환기시킬 때를 제외하고 문을 열지 않아 참을 만한데 봄, 여름, 가을에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 담배 냄새 공격에 정신이 아찔하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아들에게 주의 주겠다고 하지만 변화는 없다. 서른 살이 넘은 아들도 십 대 사춘기 어린 아들처럼 엄마 말에 반항하고 싶은 걸까? 


수년 전 아주머니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 학교에 다녀오는 우리 아이들에게 몇 번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토마토를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큰 잘못을 한 듯 “안 받는다고 했는데, 자꾸 아줌마가 가져가래요.”라며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아이들이 싫다는데 억지로 들려 보낸 아이스크림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담배 냄새로 까맣게 변해 갈 우리 가족의 폐를 생각하니 뽀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없이 얄미웠다. 


밤 낮 없는 담배 냄새에 문득 궁금해진다. 본인이 죽고 싶은 걸까? 아니면 누굴 죽이고 싶은 걸까? 

어쩌면 이제는 담배를 피우다 못해 자신의 폐를 태워 피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 냄새가 더 역겨워 비위가 상한다. 


누구나 세상을 살며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있다. 어차피 사람은 완벽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계속 피해를 주고 있다면 돌아보고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십 년 넘도록 아랫집 청년과 아주머니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제는 하려고 한다.


“이보게, 자네 이제 그만 담배 끊게. 남아있는 폐라도 지키고 싶다면. 자네의 담배 냄새가 우리까지 괴롭히고 있다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 내 주장이 이웃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돌아보는 성숙한 30대가 되길 바라네. 그리고, 아주머니! 자꾸 밥 한번 먹자고 하시는데, 전 밥이 아니라 맑은 공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아드님의 담배냄새로 찌든 폐를 안고, 편치 않은 식사 자리에서 소중한 제 위까지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식사는 노 땡큐 하겠습니다.”


오늘도 아랫집에서 절대 향기로울 수 없는 국가가 허락한 합법적인 독 냄새가 올라온다. 독 냄새를 피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사 가던 3층 중년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분들의 폐는 이제 안전할 테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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