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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Mar 26. 2021

아파트 담배 연기는 절대 향기로울 수 없다 2

층간 소음 VS 층간 담배 냄새, 당신의 선택은?

A가 ‘밥이나 먹자’라는 말을 열 번쯤 했나? 코로나로 모이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거의 1년 만에 식사 자리가 잡혔다. 나를 포함한 A, B, C 4명의 여자들은 이름 모를 섬에 갇혀있다 나온 듯 반가움에 한껏 들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 얼마 전 이사한 A의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다. A가 이사하며 모든 가전제품과 가구를 바꿨다고 하자 모두 ‘좋겠다’는 부러움의 감탄사를 쏟아냈다. A는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보이다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다 좋은데…”

“다 좋은데 뭐? 뭐가 문제야?”

B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물어본다.

“정말 다 좋은데, 윗집 아이가 너무 뛰어.”

“몇 살인데? 늦게까지 뛰어?”

“4살이라는데, 밤 11시가 넘어도 쿵쿵거리고 뛰어서 머리가 아파.”

“어머, 아기가 그 시간까지 잠을 안 자는 거야?”

“아기 엄마 말로는 낮잠을 늦게 자고 일어나면 밤에 잘 안 자려고 한데.”

“그래도 그렇지. 밤 11시에 뛰는 건 말이 안 되지.”

“글쎄 말이야. 낮에 뛰는 건 괜찮은데, 밤에 뛰니까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한숨을 쉬는 A를 보니 나도 한숨이 나온다. 층간 소음도 층간 담배 냄새처럼 두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C가 나를 보고 물었다.

“참, 너희 아랫집은 지금도 계속 담배 피우니?”


C는 몇 년 전 여름,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기겁한 경험이 있다.

“응, 아주 잘 피우지.”

“어머, 웬일이니. 그 총각 아직 독립 안 한 거야?

“만화가 되면 독립하겠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담배 냄새 생각만 해도 목구멍에서 쓴 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 순간 옆에 있던 B가 말했다.

“층간 소음이랑 층간 담배 냄새, 둘 중 뭐가 더 힘들까?”

B의 말에 모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과연 둘 중 어떤 상황이 더 힘들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침묵을 깨고 A가 말했다.

“난 층간 소음을 겪어보니까 너무 힘들더라. 조그만 녀석이 뛰는데 어쩜 그렇게 크게 울리는지. 내 머리가 흔들린다니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쿵쿵거린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었다. 그때 C가 말했다.

“에이, 언니가 몰라서 그래. 난 저번에 얘네 집에 갔다가 담배 냄새 맡고 놀랐잖아. 냄새 너무 고약하더라. 난 못 참을 거 같아.”

“난 잘 모르겠다. 둘 다 힘들 거 같다.”

B는 잘 모르겠다에 한 표를 던졌다. B와 C의 말을 듣고 있던 A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해 보니까 담배 냄새 올라오는 게 더 힘들 거 같다. 사실 난 쿵쿵거릴 때 힘들기는 해도 막상 밖에서 윗집 엄마 만나면 미안하다고 인사도 받고, 조심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들으니까.”

“그래도 그 아기 엄마는 예의 있네.”

“매번 미안해하면서 매트도 두꺼운 걸로 바꾸겠다고 하더라고. 아기도 귀여워. 콩알만 해 가지고 조그만 발로 콩콩거리고 다니더라. 참, 요즘 애들은 어쩜 그렇게 다 예쁘니? 우리 어릴 때는 촌스러웠는데 지금 아기들은 다 예뻐. 그렇지?”


발소리로 A의 두통을 유발했던 4살 꼬마는 어느새 예쁜 아기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아기 이야기가 나오니 소음 이야기는 사라지고 웃음이 나온다. 

층간 소음이 힘들지, 층간 담배 냄새가 더 힘들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고 있다면 다 똑같이 힘들 것이다. 

A는 윗집 아기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소음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이해하기로 했다고 한다. 예의 있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A처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겪고 있는 담배 냄새 공격은 냄새에 그치지 않고 우리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꾸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참았으면 오래 참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억울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기처럼 아랫집 총각이 예쁘지 않다. 총각이 피우는 담배 냄새도 콩콩거리는 아기 발소리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담배 냄새가 내 새끼 방귀 냄새처럼 구수하게 느껴질까?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아들이 트림을 꺽 한다. 민망했는지 씩 웃어 보인다. 성인이 되어가는 고3인데 나름 귀엽다. “잘 먹었습니다!” 외치며 일어서던 아들이 피쉭 방귀를 뀌었다. 냄새가 지독하다.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방귀 냄새는 처음이다. 큰일이다. 이제 내 새끼 방귀 냄새도 지독한 걸 보니 아랫집 담배 냄새를 이해하기는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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