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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02. 2021

마흔둘의 끝자락, 친구와 절교했다(1)

너의 비밀은 어디까지니?

K와 나는 언제,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건지 모르겠다. 

2018년 12월. 10년 동안 친구로 지낸 K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당시 마흔둘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못한 충격과 배신감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K와 마지막 통화를 나눴던 12월 26일, 나는 내가 알던 K가 아니라는 걸 정확하게 알게 된 후 도저히 그녀와 이전처럼 지낼 수 없었다.

 

사실, 절교하기 8개월 전쯤, K에 대한 의심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K 좀 이상해.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감추고 있는 게 너무 많잖아.”

사람들이 이렇게 걱정하고 의심할 만했다. 그 당시 감추고 있던 K의 개인적인 상황이 의도치 않게 드러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K는 나와 동갑으로 늦된 결혼을 해서 딸과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다. 그녀는 비혼 주의였는데, 3살 어린 남편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K와 나는 봉사 활동을 같이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내가 출근을 하게 되면서 2년 정도 만남이 뜸해지기도 했다. 그때쯤이었다. 사람들 입에 그녀가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점이. 


출근 후 일을 하던 어느 날, K에게 연락이 왔다. 핸드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잠깐, 통화 가능할까? 중요한 이야기라서.”

“응, 말해 무슨 일인데?”

“혹시, 너도 내 소문 들었니? 네가 듣기 전에 내가 직접 얘기해야 될 거 같다.”

“소문? 무슨 일 있니?”

“일단 들어봐. 나 사실 예전에 결혼해서 아이들이 3명 더 있어. 아들은 25살이고, 둘째 딸은 22살, 막내딸은 고등학생이야.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가 이혼했어. 그리고 재혼해서 아이들 둘 더 낳은거야. 내 나이도 너랑 동갑이 아니라 내가 한 살 더 많아.”

갑자기 걸려온 전화 내용은 놀라웠다. 놀라웠지만, K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컸다. 감출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사정과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재혼이었다니. 더군다나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아 두 번째 이혼을 준비 중이었고, 5명의 자녀를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그녀의 가혹한 운명이 기가 막혔다. 재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지만, 자녀를 낳으면 남편의 마음이 돌아올까 싶어 연년생 아이를 낳았다고 한 그녀의 말이 자꾸 생각나고 맴돌았다. 불쌍한 내 친구 K.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냉담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며 그녀와 가까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냉담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K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커졌다. 내가 10년 동안 봐온 K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 남편이 다쳐서 입원했을 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가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 주던 친구였고 항상 나를 자랑스러워하던 친구였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나는 K의 편을 들었다. K가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세상 어떤 사람도 그 상황이라면 숨기고 싶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얼마 후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게 된 나는 약해진 체력 탓에 6개월 후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어느 늦은 저녁 술에 취한 K의 연락이 왔다. 

“야, 나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때문에 당 수치도 높아졌어.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다 외면하더라. 너 내 친구 맞냐? 내가 힘든 거 알아?”

울먹이는 K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리고 아팠다. 당장 내야 할 공공요금도 내지 못한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이후 변호사 비용 마련하기도 빠듯하다는 그녀는 어린 두 아이의 양육권을 절대 내줄 수 없다는 모성 강한 엄마였다. 

“내야 할 공공요금이 얼마인데?”

“지금 당장 필요한 건 50만 원 정도야.”

“알았어. 50만 원 입금해 줄게.”

“고맙다. 당장은 힘들고 몇 달 후에 줄게.”

“그래. 알았다.”


나는 K에게 말은 안 했지만, 50만 원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옆에 있던 남편도 얼마나 힘들면 K가 전화했겠냐면서 돈은 돌려받지 말자고 했다. 

이후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고, K는 먹고살려고 시작한 조그만 과일가게를 접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새롭게 보험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 K를 보며 응원해 주 던 날,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A와 B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A와 B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동생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들이 K 때문에 힘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비밀에 쌓인 K는 그렇게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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