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Apr 03. 2021

마흔둘의 끝자락, 친구와 절교했다(2)

누구냐 넌?

지인에게 A와 B의 이야기를 듣기 얼마 전, K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나에게 연락했다.

“항소할 거야. 왜 내가 유책 배우자니?”

이혼소송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나는 씩씩거리는 K에게 조심스럽게 결과를 물어보았다.

“양육권은 내가 갖고, 나보고 애들 아빠에게 정신적 피해 보상비 000원을 주래.”

이상하다. 분명히 K는 남편의 온갖 악행을 이야기했었는데, 오히려 K가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니.

“야, 나 결혼했던 거, 그리고 전 남편 아이 3명까지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결혼한 거야.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는 몰랐다고, 사기 결혼이라니. 나 너무 억울해.”


K의 남편이 이혼소송을 신청한 이유를 이제야 정확히 알았다.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K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들면서 H가 생각났다. 나와 동갑내기 H가 얼마 전 K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K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H에게 너무 마음 주지 말라는 경고를 했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판사가 왜 이렇게 판결했는지 알겠어. 따지고 보면 내가 줘야 할 피해 보상금보다, 받아야 할 두 아이 양육비가 더 많잖아. 성인 될 때까지 받아야 하니까. 판사가 생각해서 이렇게 판결한 거 같아.”

응? 이건 무슨 신박한 헛소리지? 아무 거리낄 일이 없으면 왜 너를 유책 배우자라고 하겠니? 그리고 유책 배우자인 본인에게 돈 더 받게 해 주려고 판사가 양육권을 줬다? K는 애써 기적의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남의 부부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누가 유책 배우자인지, 그들의 이혼 소송이 어떻게 될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K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찼을 뿐이었다.

K와 통화를 마치고 서둘러 H에게 연락해 내가 묻는 대로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너, 솔직하게 얘기해. K가 전화해서 뭐라고 했어?”

“그냥, 힘들다고. 자기 하소연했어. 왜 그러는데?”

“너 혹시 K한테 돈 빌려줬어?”

“어? 응. 백만 원…”

“야! 내가 전화 오면 절대로 주지 말랬잖아!”


지인에게 A와 B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길. A에게 전화했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자 A는 “어떻게 알았어요?”라며 깜짝 놀랐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얼마야? K에게 둘이 얼마를 빌려준 거야?”

“저는 000원이고, B는 000원이요…”

거액이었다. 말을 기 힘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A와 B는 나를 통해 K를 알게 되었다. 나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K는 참 좋은 동생들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A와 B에게 반찬도 가져다주고, 아이들 병원도 데려다주면서 살갑게 대했다. 솔직히 나는 그 정도로 살갑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K의 친절함이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고마웠다. 그런데, 2016년에 빌려 간 거액의 돈을 2018년 12월이 다 지나갈 때까지 한 푼도 갚지 않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A와 B가 K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알지 못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왜 진작 나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A는 괜히 나와 K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말을 못 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우리의 관계가 본인들 때문에 틀어질 걱정을 하다니. K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다.


이후 며칠째 머리와 목이 아팠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알아듣기 힘들 만큼 쉬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 진찰을 받았다. 독감이었다. 며칠 동안 남편이 아늑하게 꾸며준 작은방으로 들어가 열이 나는 몸을 뒤척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동안 헛살았다는 생각과 배신감 그러면서도 ‘설마 K가…’라는 생각이 뒤범벅되어 며칠을 보냈다. 열이 내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날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K에게 전화했다. 그동안 내가 알게 된 사실들과, A와 B의 상황을 알고 있음을 전달했다. K가 본인 집이라 월세를 주었다던 빌라도 타인의 집인 것과, 현재 살고 있는 집도 20대의 큰 아들 명의로 된 것을 다 알고 있노라고 말하니 K는 적잖이 당황하다가,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신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며, 본인이 거짓말했던 상황들도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도저히 믿지 못할 황당한 핑계들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나를 통해 알게 된 동생들에게까지 문제를 일으켰냐는 질문에 K는 자존심이 상한 듯 “내가 왜 너에게 대답해야 되냐”라는 말을 했다. 하긴. ‘미안하다.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됐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K에 대한 신뢰는 깨졌고, 본색을 드러내는 목소리와 말투로 이미 그녀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와 B의 돈은 알아서 상환할 거라는 큰 소리 앞에 “그럼 H의 돈은?”이라고 묻자 K는 말을 얼버무리다 대답했다. H는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라고.

‘후… 안 되겠구나 너는…’

나는 더 이상 말할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K의 사정이 어려워 빌려주었던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굳이 받지 말자 생각했던, 만약 K의 사정이 좋아져 갚는다면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며 기분 좋게 받으려고 했던 돈이었다. 내가 보내 준 돈은 유난히 병원 치레가 잦았던 K 아이들의 밀린 보험료, 생활비 그리고 공과금이었다. 그 돈은 돌려받지 못해도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K는 나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잘못도 뉘우치지 않는 K를 보며 법원에 지급 신청을 했고, 원금과 이자 지급 판결이 나고 한 달이 지나서야 K는 문자를 보내왔다.

‘오늘 돈 입금할게. 돈이 없어서 이자는 못 준다. 잘 지내라.’

쿨하게 이자는 못 준다니 K 다웠다.


얼마 후 A와 B는 나의 지급 신청 과정을 보고 K에게 한 달에 조금씩이라도 상환하라고 독촉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녀들은 거의 4년 만에 한 달에 한 번 아주 적은 금액을 받고 있는데, 내가 먼저 행동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는 독촉 문자를 보냈지만, 끝내 받지 못하고 있다.

그 후, 3년이 지나가는 동안 K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걸러지지 않은 원색적인 말로 비난하기도 했고, 그녀의 숨겨진 과거 행적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소문을 다 믿지 않는다. K가 나에게 그리고 A와 B, H에게 거짓말한 것이 드러났고 우리의 우정과 신용을 저버렸지만. 사람들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미안하다’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던 K를 용서하지 못했다. 나중에 A와 B에게 듣게 되었는데, K는 반찬과 기저귀 등을 사서 A와 B에게 전달하며 'OO이(나)가 샘낼지도 모르니 자기와 만나는 것을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무슨 뜻이었을까? 단순히 초등학생을 능가하는 유치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즉 K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나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10년의 시간이, 그리고 본인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무한한 신뢰로 감싸주었던 사람들이 K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그때라도 K가 거짓말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줬더라면 충격은 받아도 절교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도 세상을 살아보니 녹록지 않다. 의도치 않은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고 자존심 상할 만큼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신의를 저버려야 할까?

사람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다워야 하는 이유는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지켜야 사람이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K의 거짓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을 만큼.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면 용서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나도 그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철저히 이기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도 하는 특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돈 갚으라는 얘기잖아!’

왜 그랬냐는 내 물음에 K가 했던 말이다. 아니.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 거야. 정말 그걸 모르겠니?


얼마 전 A와 함께 차를 마셨다. 오랜만에 K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의 대화 속에 그전처럼 K에 대한 분노는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생각지 못하게 K가 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용서는 아니었다. A와 B에게 최소한의 도리는 하면서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10년을 알고 지낸 시간과 친구로 지낸 추억에 대한 예의랄까? 함께한 시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할 여유가 생긴 걸 보면, 언젠가 아주 먼 훗날에라도 K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용서의 시간이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직은 나도 완벽한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최대한 순화한 글로 썼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적지 못했다.

이유는 아무리 순화해도 이 글을 보는 A와 B, H는 아픔이 되살아 날 테니까...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함께 해주는 A와 B, H에게 감사하다.


이번 글의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쓴 다른 글까지 함께요...

사실을 기반으로 쓰는 글인 만큼 예민한 부분은 쓰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둘의 끝자락, 친구와 절교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