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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07. 2021

'괜찮아'를 빼앗겼다

잠깐만요, 그 말은 제가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2007년 2월. 우리 가족은 남편이 다니던 회사 이전으로 부득이하게 인천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정겨운 시골 마을인 이곳은 의외로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그냥 주말 부부로 지냈으면 더 좋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우울하기도 했다. 사실 남편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크는 것보다 인천에 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나를 설득했었다. 처음에는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5살, 4살 어린 아들딸을 두고 주말부부로 지낼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어서 온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많은 아파트와 상가들, 작은 공원들이 있지만, 14년 전 이곳은 그냥 시골 마을이었다. 밤 9시가 되면 거리에 사람이 없었고, 상가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이사한 다음날, 5살 아들은 이마트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이곳에는 이마트가 없다고 설명을 해주자 아들은 이마트를 봤다면서 꼭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 내가 이마트 봤어. 여기 이마트 있어.”

“어디에서 봤는데?”

“우리 자동차 슝! 내려온 데 있잖아. 거기에서 봤어.”


아들은 우리가 이사한 아파트로 오기 위해 지나야 하는 큰 도로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아들의 말을 듣고 찾아간 곳에는 이마트가 아닌 혼수 가전제품의 성지 ‘하이 마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5살 아들은 한글 ‘하’ 자를 몰랐고, 장난감을 사 오던 ‘이마트’만 기억하고 있었다. 


변변한 마트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 시골 생활에 소진 언니는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나보다 4살 위인 소진 언니는 상냥한 성격에 얼굴도 예쁜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같은 아파트 4층에 살고 있는 언니 덕에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두고 있는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소진 언니는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는 ‘괜찮아’ 공주였다. 항상 도와주려는 마음이 강했고 도움을 받고 고마운 마음에 “언니, 고마워요.” 인사를 하면 “괜찮아, 뭘 고마워.” 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괜찮아 공주’라고 나만의 별명을 지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진 언니의 ‘괜찮아’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사건이 있었다. 

소진 언니의 큰 딸 민영이가 또래 남자 친구가 뿌린 모래 때문에 눈이 따가워 울고 있었다. 언니는 민영이에게 “왜 그래?” 물었고, 민영이는 아프고 억울한 마음에 엄마에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모래 뿌려서 눈에 들어갔어. 눈이 너무 아파.” 하면서 엉엉 울었다. 나는 모래를 뿌린 남자아이에게 모래를 눈에 뿌리면 다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소진 언니는 “괜찮아.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하면서 울고 있는 딸에게 “너도 그만 울어. 별거 아닌데 그래.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 엄마의 말에 민영이는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울먹거리며 눈물만 뚝뚝 흘렸는데, 나는 내 아이가 우는 듯 마음이 아팠다. 민영이는 분명히 괜찮지 않았다. 무조건 괜찮다는 엄마의 말에 무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빛은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호자인 엄마가 괜찮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먼저 아이의 서러운 마음을 다독여 준 다음 괜찮다고 하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몇 달 후 그 ‘괜찮아’의 불편함이 다시 찾아왔다. 소진 언니의 집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에서 “악!” 비명 소리가 났다. 당시 4살이었던 딸아이가 뛰어나오며 “엄마, 재훈이가 오빠 때찌 했어.” 소리쳤다. 방으로 달려가 보니 아들은 한쪽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재훈이는 한 손에 철 줄자를 들고 있었다. 얼굴을 감싸 쥔 아들의 손을 내려보니 왼쪽 뺨으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철 줄자로 맞은 아들의 얼굴이 찢어져 살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엄마들은 “어머나 어떻게 해.” 하면서 당황했고, 재훈이 엄마는 재훈이를 보고 “네가 그랬어?”라며 다그쳤다. 

재훈이는 아들이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만져 보고 싶었는데 자기에게 주지 않아서 때렸다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살이 찢어져 피가 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지만, 재훈이 엄마가 얼마나 놀라고 속상할까 싶어 입을 열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올게요. 괜…”

“어휴, 괜찮아! 괜찮아! 심하게 다친 거 아니야.”

소진 언니였다. ‘괜찮을 거예요’라고 하려던 내 말을 막고 소진 언니는 ‘괜찮아’를 연발했다. 더구나 그 말은 아이가 다쳐 당황한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말이 아닌, 재훈 엄마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짧은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재훈 엄마에게 괜찮다고 말을 해도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괜찮아’를 소진 언니에게 빼앗겼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병원에서 아들의 진료를 받았다. 상처의 크기가 크지 않지만 안쪽으로 깊게 찢어져 꿰맨 후, 파상풍 주사를 맞고 얼굴 상처를 덜 남기기 위해 재생 연고를 발라야 한다고 했다. 병원을 다녀온 후 긴장이 풀리니 소진 언니의 행동이 생각나며 기분이 점점 더 나빠졌다. 아이들 일에 서로 불편해질 까 봐 걱정이 돼서 본인이 나섰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소진 언니의 ‘괜찮아’는 피를 흘리는 내 아들의 아픔을 무시한 발언이었고, 동시에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분명히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말투가 아닌,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떨지 말라는 뉘앙스여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후 재훈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 다녀왔어? 미안해서 어떻게 해… 병원비는 얼마 나왔어? 바로 보내 줄게.”

“아니에요. 병원비도 5만 원 정도 나왔고, 며칠 후에 실밥 풀면 된대요.”

“안돼. 병원비 보내야지. 다친 것도 미안한데… 흉터 남을까 걱정이다.”

“연고 잘 바르면 남지 않는다고 하니까 걱정 말아요.”


아름다운 내용으로 대화는 끝났지만, 찜찜했다. 얼마든지 내가 먼저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고, 내가 해야 하는 말이었는데 빼앗기고 나서 말하려고 하니 의미가 없었다. 소진 언니에 의해서 이미 이 사건은 별것 아닌 괜찮은 사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마음속의 찜찜함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뒤처리를 안 한 느낌이 아닌, 하긴 했는데 휴지가 아닌 양말이나 신문지로 대충 처리한, 그런 느낌이었다. 


아들이 다치고 이삼일 후쯤 소진 언니가 전화했다.

 “생각해 보니까, 네가 기분 안 좋았을 거 같아. 괜히 내가 나서서 상황 정리하려고 하다 보니 실수한 것 같다. 미안해.” 진심 어린 사과에 “괜찮아요!” 기분 좋은 대답이 나왔다. 나도 진심이었다. 그제야 어설프게 닦아 냈던 뒤처리를 고급 물티슈로 깔끔하게 닦아 낸 듯 상쾌했다.


나는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한동안 그 말을 아꼈다. 괜찮다는 말은 상처받은 당사자의 몫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에 대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지만, 먼저 그 실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괜찮아’를 빼앗은 일이 없는지 돌이켜 본다. 왠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괜찮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배려로,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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