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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13. 2021

나에게 단발머리는 눈물이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시골 마을 작은 미용실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미용실로 들어선 여자아이는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부운 눈을 연신 손으로 비비는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미용실 원장에게 밝게 인사했다.


“아유, 오늘은 날이 덥네요.”

“어서 오세요. 오늘 유난히 덥죠? 시원하게 미숫가루 한 잔 타 드릴까요?”

“그럼 좋죠. 한 잔만 주세요. 나눠 마실게요.”

여자아이는 미숫가루를 마실 생각이 없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은 지금도 입안이 깔깔해 모래를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큰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미숫가루 음료를 가져온 원장이 물었다.

“오늘 뭐 하시게요? 파마는 아직 다 안 풀려서 괜찮은 것 같은데…”

“나 말고 우리 딸 머리카락 자르게요.”

“아, 그러세요? 아기 머리가 지금도 길지는 않은 것 같은데, 또 짧게 자르게요?”

“네, 숱도 좀 정리하고, 귀밑으로 짧게 잘라주세요.”

원장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이는 곧 울음이 터질 듯 입을 씰룩거렸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는지 원장은 다정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주 조금만 자를게. 알았지?”


아이는 아주 조금만 자른다는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때 아이 엄마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길면 내가 관리해 주기가 힘들어서 자주 잘라주는 거예요. 짧게 자르면 묶지 않아도 되니까요. 너무 바빠서 애들 머리 신경 써 줄 틈이 없네요.”

멋쩍게 웃으면서 슬픈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던 아이 엄마는 험한 밭일에 뼈마디가 둥그러진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바쁘지 않았어도 그 손가락 상태로는 딸의 긴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두껍고 따뜻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올 때 다짐했다. 이제 짧은 단발머리 때문에 울지 말자고. 미용실 거울에 비쳤던 엄마의 표정은 울고 있는 자신보다 더 슬펐고 비참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발머리를 사랑해 보자고 다짐했던 여자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다. 

엄마는 항상 머리에 손이 많이 간다면서 단발머리를 선호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어본 적도, 예쁜 핀을 꽂아 본 적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긴 웨이브 머리에 빨간 리본 끈으로 멋을 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풍기던 샴푸 냄새와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머리 위에 예쁘게 꽂혀있던 머리핀까지.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 아이 옆에 있으면 왠지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반짝거리는 머리핀을 딱 하나만 가지고 싶다고 떼를 썼을 때, 엄마는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니 나중에 사주겠다는 말로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세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는 먹고사는 것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돈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미용실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을 본 날, 엄마의 얼굴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딸의 긴 머리를 관리해 줄 경제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엄마는 분명히 속으로 울고 있었다. 엄마는 마디마디 튀어나온 뻣뻣한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손가락마저도 돕지 않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까지 머리를 길게 길렀던 나는 몇 달 전 어깨 위로 살짝 올라가는 단발머리로 잘랐다. 급격하게 늘어난 새치를 핑계로 염색도 했다. 나이가 한 살씩 늘어가며 얼굴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머리를 자르고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머리카락은 또 자라 있었다. 지저분한 부분만 정리를 해볼까 싶어 아파트에서 가까운 미용실로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좀 자라서요. 한 3cm에서 5cm 정도 잘라주세요.”


미용실 원장은 알겠다면서 신나게 머리를 잘랐다. 안경을 벗은 상태라 정확하진 않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드라이를 끝내고 보니 머리는 귀밑으로 겨우 내려와 있는 아주 짧은 단발이 되어있었다. 분명히 3cm에서 5cm 정도 잘라 달라고 했는데.

거울 속에는 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와 짧게 머리를 잘랐던 어린 내가 있었다. 눈물이 난다. 

미용실 원장은 나를 달래 듯 갸름한 얼굴에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용실을 나서며 한 발짝 걷는데, 맺혔던 눈물이 떨어졌다. 머리를 망쳐서 눈물이 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거울을 봤을 때 나는, 울음으로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앉아있던 어린 나를 보았다. 가슴이 멍이 든 것처럼 아프고 시렸지만 반가웠다. 몸서리칠 만큼 싫었던 단발이 눈물 날 만큼 반가웠다. 의미는 다르지만 어린 시절에도 그리고 다 커버린 지금도 단발머리는 나에게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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