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빠른 경운기
우리집은 사슴농장이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 1980년대의 김포는 시골이었다.
지금이야 신도시가 멋지게 들어선 세련된 도시지만, 그 시절엔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진 정겨운 마을이었다.
좁은 길 하나 차이로 동네마다 이름이 달랐고 그 작은 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소박한 마을이 만들어졌다.
내가 살던 곳은 그중 양촌이란 곳이었는데 논과 포도밭이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동네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우리 집은 사슴농장이었다.
드넓은 사슴농장 안에 조그맣고 빈약하게 ‘콕’ 박혀 있던 허름한 집은 농장 안에 작은 점처럼 얹혀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내 이름 석 자를 두고 “사슴농장 집 둘째 딸”로 불렀다. 이름도, 별명도 아닌 “사슴농장 집 둘째 딸”이 기분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내심 이름을 불러줬으면 하기도 했다.
내 기억에서 아빠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바쁜 만큼 돈을 버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한 곳에 가만히 계신 모습을 본 일이 거의 없다. 아빠는 경운기를 운전하셨는데, 그 경운기는 아빠의 보물이자 분신 같았다.
경운기로 사슴에게 먹일 도토리나무와 고구마를 운반하고, 들판으로 나가 풀을 한가득 싣고 오기도 했다.
아빠의 경운기는 ‘뿌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동네를 넘어 곳곳을 누비면서 존재감을 뽐냈다. 자연스럽게 언니와 나, 남동생은 태어나서 걷기도 전부터 경운기를 타고 다녔는데 별이 쏟아질 듯 한 여름밤에 경운기를 타고 맡았던 바람의 달콤한 향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경운기는 보통 경운기가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이 가끔 집으로 찾아와 다음날 태워 달라며 탑승을 예약하기도 했다. 사슴농장일도 녹록지 않고 함께 키우는 여러 동물들이 있어 바쁜데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의 아빠는 무조건 “알겠습니다.”대답했다. 어린 마음에 자꾸 부탁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얄밉고 야속하던지.
돈 내고 타는 것도 아니면서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영 불편했다. 하지만 우리 경운기는 특별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또한 다른 경운기에 비해 빠르고 항상 깨끗했다. 동네에 다른 경운기들은 털털털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해서 경운기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도 잡아타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우리 경운기는 제트기 수준이었다. 소리도 야무지고 빠른 멋진 경운기였다.
한 번은 동생과 함께 경운기를 타고 동네 5일장에 다녀오다가 돌부리를 넘던 경운기가 덜컹하면서 동생이 그대로 떨어졌다. 운전하시던 아빠는 뒷 사정을 모른 채 앞으로 전진하고 나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 서야 멈춘 아빠는 떨어진 동생을 안고 뛰어오던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는데 아저씨는
“아휴, 경운기가 왜 이렇게 빨라요?” 하면서 놀라워했다.
그날 나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생이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우리 경운기가 빠르다는 걸 인정받은 것에 감사했다. 동네에서 논이나 포도밭이 없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어서 서운했는데 경운기가 이런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는 자랑거리였다.
아빠는 경운기를 애지중지 깔끔하게 관리하셨다.
항상 걸레로 닦고 가끔씩 농기계 가게로 가지고 가서 점검도 받았다. 다른 경운기처럼 시커먼 경유에 범벅이 된 적도 없고 새것처럼 늘 반짝반짝했다. 우리 삼 남매 얼굴 한번 씻겨주지 않았던 아빠인데 경운기만큼은 최선을 다해 관리하셨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아빠만큼 아니, 아빠보다 더 경운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에게 친구들의 관심을 받게 해 주었기 때문이랄까?
내가 경운기를 타고 동네로 내려오는 날에는 동네 한편에서 놀던 아이들이 뛰어 따라오면서 “어디 가? 어디 가는데?”소리를 쳤다. 그러면 나는 아빠에게 잠깐 멈춰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조금만 기다려. 다녀와서 너희들 우리 경운기 태워줄게.” 이렇게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고 잘 다녀오라면서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빠는 아이들의 말을 못 들은 척 아무 말 없으셨지만, 일을 마치고 다시 동네로 돌아오면 경운기를 따라왔던 아이들을 모두 태워 각자의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되면 나는 기분이 들떠 같이 탄 친구들과 호들갑스럽게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친한 친구도 있지만 평소 같이 놀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그 짧은 순간에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어제까지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친구인데 잘 가라고 인사하며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까지 하게 되는 멋진 일이 생겼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웠고 나처럼 행복한 아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네 아이들은 나도 모르게 우리 동네 경운기 순위를 정해 그림까지 그려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차곡차곡 접은 스케치북 한 장에는 1위, 2위, 3위 멋진 경운기 순위가 정해져 있고, 1등 자리에는 우리 경운기가 자랑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1등이 된 이유는 나를 더 기쁘게 했다.
“1등이 된 이유는 사슴농장에서 큰일을 하는 경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경운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꼬불꼬불 순진한 이 글씨에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지.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소심한 성격에 먼저 말을 거는 성격도 아니었고 뭔가 표현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어른들과는 말을 잘했는데 또래 친구들과는 쑥스러워서 대답 정도만 겨우 했다. 이런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빠른 우리 경운기가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고, 관심과 부러움을 받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 아빠에게도 멋진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그 별명은 ‘경운기 아빠’였다.
매일 경운기를 타고 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친절하고 부지런한 경운기 아빠. 특별히 힘이 세지 않아도, 특별히 똑똑하지 않아도 이렇게 멋진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