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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Nov 24. 2021

있는 그대로, 그렇게

그녀는 소중하니까

나의 그녀는 오늘도 콧노래를 부른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연신 흥얼거리는 소리가 아이돌 노랫소리와 섞여 흘러나오고 있다. 춤을 추는지 가끔씩 노랫소리가 숨찬 소리 같이 들리기도 하고 “휴” 짧은 숨소리도 들려온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쯤, 그녀는 방문을 벌컥 열고 몸에 흥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엄마! 뭐해?”

“엄마 지금 바쁘….”

“엄마, 이것 좀 봐! 어때? 웃기지?”


뭐하냐는 본인의 질문에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 나의 그녀, 나의 딸은 내 앞에서 목을 양 옆으로 크게 흔들며 긴 생머리를 펄럭거린다. 그 모습은 흡사, 봉산탈춤에 나오는 사자춤과 같다. 


“야, 어지러워. 그만 흔들어!”


내 말에 딸은 보란 듯이 눈까지 하얗게 뒤집고 코 평수를 넓힌 채 기괴한 모습으로 머리를 더 흔들어 댄다. 이럴 때면 남편은 기겁을 하며 예쁜 표정을 지으라고 소리친다. 딸아이는 우리의 찡그린 표정을 보면서 “에이!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래~”라면서 더 재미있어한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은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아이다.

낮을 많이 가리고 정말 친하지 않고는 자기가 먼저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남들이 볼 때 딸은 얌전하고 말이 많지 않은 사춘기 고등학생이다. 내가 봐도 이중적(?)인 모습인 딸. 굉장히 재미있고 유쾌한 아이지만 정말 딸과 친하지 않고는 그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공부를 싫어하는 딸은 성적이 좋지 않지만, 얌전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담임 선생님도 무척이나 예뻐해 주신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다소 충격을 받은 듯 연락을 해왔다.


“어머니. OO가 갑자기 직업학교를 가겠다고 해서, 제가 지금 너무 놀라고 혼란스럽네요.”

“아, 그래요 선생님? 어제 직업학교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마음을 결정하고 말하는 거 같아서 제가 놀랐습니다. 어머니, 중간에 직업학교로 가는 건 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아서요.”

“네, 선생님. 집에서 어떤 생각인지 잘 들어보고, 결정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OO가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 제가 당황해서 솔직히, 상담을 잘 못해주었어요. OO가 말도 많지 않고 얌전한 아이인데, 제가.. 놀라서..”


얼마 전 아기 아빠가 된 30대 초반 담임 선생님은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였다.

 목소리도 여리고, 순함이 그대로 보여지는 사람. 그런 담임 선생님은 평소와 다른 딸아이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익숙하지 않으면, 친하지 않으면 말없이 그대로 있는 아이. 어쩌면 딸아이의 이 모습이 사람들은 익숙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한 농담에 까르르 넘어가고, 괴상한 표정과 말투로 하루에 몇 번씩 가족을 웃겨주는 모습과,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단호함을 갖춘 아이인데 어느 한 편의 모습만 보여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속상하다. 



언젠가 딸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OO아, 너는 참 재미있고 유쾌한 아이인데, 왜 이렇게 밖에선 얌전해?”

아이는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밖에서? 글쎄,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꼭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밝고, 즐겁게 유쾌한 모습을 보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엄마의 입장인 나는 내 아이가 밖에서도 용기 있는 모습이길 바란다. 따지고 보면 내 욕심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잘 살아가는 딸에게 부리는 욕심. 

항상 ‘다 좋은데, 이거 하나만 고치면 더 좋을 텐데’란 생각으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욕심이 지나치면 사랑을 가장한 강요가 되는 법.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딸과 같은 나이였을 때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전기밥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뽀얀 김을 내뿜는다. 딸아이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아이브 빈 스타링 앳 더 엣지 오브 더 워러~ 

롱 에즈 아이 캔 리멤버 네버 리얼리 노우잉 와이~”


음치인 딸은  아주 솔직한 발음에 영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ost다.


“아이 위시 아이 쿠드..흑…컥… 흠…흠..”


노래 부르다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한다. 끊긴 노래가 못내 아쉬웠는지 딸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에이, 중간에 끊겼잖아. 엄마, 내가 다시 처음부터 불러줄게.”

“굳이? 처음부터?”

내 말을 듣지 못한 척 딸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브 빈 스타링 앳 더 엣지 오브 더 워러~”


심각하고 진지한 딸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딸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 

있는 그대로,  딸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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