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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Nov 19. 2021

개복치는 살아있다

아직 안 죽었어 이것들아!

고요하다. 

살짝 소름이 돋을 만큼 어두 컴컴한 고요한 바닷속에 대형 풍선처럼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리저리 바닷물을 유유히 헤치며 다니던 물고기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둥그런 물체를 툭 건드려 본다. 누가 봐도 산만한 덩치에 둥그런 것이 건드리는 대로 힘없이 슬쩍 밀린다. 


“죽었나?”

제일 먼저 툭툭 건드리던 배불뚝이 물고기가 한 마디 던진다.

“글쎄… 죽은 건가? 이렇게 커다란 게 왜 죽었을까?”


배불뚝이 물고기 옆에 착 달라붙어 눈만 껌뻑거리던 검은색 물고기가 무척 궁금하다는 듯이 말한다. 두 물고기가 서로 만담 나누듯 ‘죽었나?’ ‘왜 죽었을까?’를 무한 반복하는 사이 여러 마리의 또 다른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모여든 물고기들은 둥둥 떠있는 덩치를 보고 제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빨간 몸통에 얼룩무늬가 그려져 있는 나이 든 물고기가 목소리를 깔고 나선다.


“흠… 등은 푸르스름하고, 배는 회색 빛에 몸은 둥글넓적한걸 보니 개복치 구만!”

“개복치요?”

“그래, 개복치. 큰 덩치에 맞지 않게 겁은 많아서 여차하면 엎어져 있으니…”

“그럼, 죽은 거예요?”

“뭐, 이 정도면 죽었다고 해야지.”



둥그렇게 모여든 물고기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사이 커다란 몸으로 둥둥 떠있던 그것. 그 개복치가 가장 작은 지느러미를 살짝 떨며 눈을 깜빡였지만, 물고기들은 자기들 이야기만 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사실.. 있잖아. 나 이 개복치 잘 알고 있어.”

갑자기 보라색 물고기가 아는 척을 한다. 

개복치는 슬쩍 뜬 눈으로 보라색 물고기를 봤지만, 도대체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 개복치 죽을 줄 알았어. 살아있을 때도 말이 아니었거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지.”

“아니 왜요? 뭐 때문에요?”

보라색 물고기 주위로 몰려든 다른 물고기들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동그란 눈으로 들이댔다.


“있잖아, 사실은… 저… 에잇! 말 못 해. 어떻게 함부로 이야기하겠어. 난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성격이 아닌 보라색 물고기의 말은 사실을 이야기한 것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머머머…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 말 안 해도 알겠네요.”

“그러게요. 말 못 할 정도면 뻔하지 뭐!”

“어떻게 살았길래…쯧.. 쯧..”

“원래 개복치가 덩치만 컸지 마음은 콩알이라서 조금만 놀라고 힘들어도 죽는다잖아요.”

“맞아. 나도 들었어. 내가 아는 언니의 동생의 친구가 그러는데 별 이유도 없는데 쓰러진다고 하더라.”


그들의 말은 다 틀렸다. 정말 개복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몇몇 물고기는 가끔 인사만 하고 지나쳤던 사이였고, 몇몇 물고기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도 속 이야기를 해본 적 없던 사이였다. 나머지 물고기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었다. 모든 것을 아는 척 물고기들이 떠들어 대는 사이 개복치는 슬쩍 몸을 바로 뒤집고 눈을 크게 떴다.


“어머! 깜짝이야!”

자신은 그런 성격이 아니라던 보라색 물고기가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다른 물고기들은 귀신을 본 듯 놀랐다가 이내 개복치의 눈길을 피했다. 



개복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훗!’ 소리 없는 웃음을 날리며 유유히 사라졌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겨내고 잠깐 쉬어가자 생각했던 개복치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푸른 바닷속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려움에 잠시 실망해도 용감하게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던 개복치였다. 개복치는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던 물고기들을 생각하자 다시 피식 웃음이 났다.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어쩌면 소심한 개복치다.

슬프면 참지 못하고 울고,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리고 힘든 상황을 피하려 도망가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도 포기하진 않았다. 잠시 가슴이 아파 집안으로 숨어들어 숨을 고르고 나의 내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 중 일부는 마치 내가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떠들고 다니기도 하고, 어떤 큰일이 있는 것처럼 부풀려 말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그저 바다에 둥둥 누워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의 성격과 모양대로 살아간다. 난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겁 많은 개복치다. 


제대로 알지 못하며 수군거리는 물고기들보다 차라리 겁 많은 개복치로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

어쩌면 오늘도 개복치는 죽었다면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수군거리는 이야기꾼들이 있을지 모른다. 

둥둥 떠있던 바다에서 다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말하겠다.


“나 아직 안 죽었어 이것들아!”


다시 힘껏 헤엄쳐 보란 듯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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