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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Mar 30. 2022

살은 빠졌는데 욕이 늘었다 (1)

어떤 것에든 부작용은 있다

키 162cm에 몸무게 82kg~84kg을 왔다 갔다 했던 그 시절의 나.

그날은 시험과목 중 제일 자신 없는 C언어 시험일이었다. 적어도 전문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는 엄마의 엄명에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해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던 시기였다. 공부를 안 했으니 마음은 불안하고 그 불안함은 새벽 첫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게 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정류장에서 15분은 걸어가야 하는 나의 학교는 어쩜 매일 걸어도 그렇게 힘이 드는지. 골목길의 경사는 거의 지하철 까치산역 에스컬레이터 경사도와 맞먹을 정도였다. 첫 번째 경사진 길을 걷고 나면 중간에 평지가 있고 그곳에는 여러 상점과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두 번째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학교가 있었는데, 그날의 사건은 힘든 몸을 잠시 쉴 수 있었던 그 평지에서 일어났다. 


첫 골목길을 거의 올랐을 때, 뒤에서 "드드드드..부..엥..." 힘없는 모터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쪽으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뚱!"


소리에 휙 바라보니 오래되고 작은 오토바이에 가스통 2개를 칭칭 감은 젊은 남자가 나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며 비웃듯 씩~ 웃고 지나갔다. 오토바이는 금방 쓰러질 것처럼 뒤뚱뒤뚱거리면서 평지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눈이 뒤집혀서 메고 있던 가방을 힘껏 날렸다. 가방은 어쩜 그리 말을 잘 듣는지 남자의 등을 맞추고 떨어졌다. 남자는 오토바이를 멈추고는 당황한 듯 오토바이를 제대로 세우지도 못했다. 오토바이가 갑자기 힘없이 픽~ 쓰러졌다. 



"야! 뭐라고? 뚱이라고?"

성난 내 물음에 남자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쓰러진 오토바이를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뚱이라고?"

"아이씨... 오토바이 쓰러졌잖아!"

남자가 악을 썼다. 보아하니 앳된 얼굴이 나보다 많아야 2살 정도 더 많아 보일까 말까 했다. 

악을 쓰는 남자의 소리에 일찍 문을 열었던 한 상점 주인이 불안한 듯 우리를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경찰서에 전화를 하는 듯했다. 


"본인이 오토바이 잘 못 잡고 헤매다가 쓰러뜨리고 왜 남 탓을 해!"

나도 지지 않았다. 내 악다구니에 남자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나보고 뚱이라고? 네가 나 뚱뚱해지는데 뭐 도와준 거 있어?"

"야, 더 도와줬다가는 터졌겠다! 하하하~"

남자는 보란 듯 더 크고 과한 몸짓으로 비웃었다.

"무식한 놈...."

내 입에서 낮게 진심어린 말이 나왔다. 그 말에 남자는 내가 큰 소리를 쳤을 때 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못할 말 하는 게 바로 무식한 거야. 알아?"

남자는 '무식'이란 말에 자격지심이 있었는지 눈에 독기가 서렸다. 


그때 우리를 지켜보던 상점 아저씨가 

"여기에요~ 여기!" 라며 휘 휘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가 손을 흔든 방향으로 경찰차가 오고 있었고 경관 2명이 내렸다.

"학생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로 싸우세요?"

중년의 경관이 부드럽게 물었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눈물을 꾹꾹 참으며 내 입으로 마음에 상처가 된 '뚱'이란 단어를 다시 꺼내야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있는 경찰에게 상점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 이놈이 여기 학생한테 몹쓸 말했어요."

아저씨는 젊은 가스 배달원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같은 골목에서 일하면서 모를리가 없었다.


"정말 여기 학생 보고 뚱이라고 했어?" 

경찰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네..."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학생은 가방을 던졌고?"

"네. 제가 등 쪽에 가방 던졌어요."

나의 당당한 말에 경찰은 오토바이를 살펴봤다. 

"오토바이는? 어디 파손된 곳은 없나? 가스통은?"

"없습니다. 가스통은 빈 통입니다."

뚱이라고 외치며 히죽거리던 남자의 패기는 어느새 땅속 깊이 빠졌는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자, 여러분!"

경찰이 먼저 젊은 가스 배달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뚱이라니? 어디서 배운 말이지? 어?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겠나 나쁘겠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는 재미있다고 하는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 모르는 건가?"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잘못했습니다."라고 다 죽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학생! 학생이 던진 가방에 사람이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화가 난 건 알겠는데 사람이 다치게 되면 더 큰일이 생기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가스배달원과 나는 서로 사과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사실 사과는 했지만 분이 풀리지는 않았다. 나도 무겁고 두꺼운 내 몸이 싫었고 항상 뚱뚱한 몸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런 나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놀림거리로 치부한 그 배달원을 당장 용서할 수는 없었다.

"미친 X. 나쁜 XX"

내 입에서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는 배달원을 보고 있던 경찰이 내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도 딸이 있어요. 둘이나. 고등학생인데 한참 예민해서 말도 제대로 못 걸어. 허허.. 우리 첫째 딸도 좀 덩치가 커서 매일 스트레스받는데 부모 눈에는 다 예뻐 보이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찰관은 나에게 뚱뚱해도 괜찮으니 기죽을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럽던 20살의 나는 경찰관의 그 말은 그저 중년 아저씨의 실없는 농담처럼 들렸다. 

162cm에 83kg의 나는 어딜가나 젊은 가스배달원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그 여자는 2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때와 똑같은 감정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다음 2편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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