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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Nov 07. 2022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 힘든 하루 샤워 후 노곤한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

2.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남편의 따듯한 위로

3. 보기만 해도 뿌듯함을 안겨주는 아들과 딸

4. 항상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강아지들의 동그란 눈

5. 허전한 뱃속을 칼칼하게 채워주는 뜨끈한 라면 한 그릇

6. 몸과 마음의 피로를 녹여주는 구수한 강아지의 발 냄새

7. 다른 반찬 없어도 밥 두 공기 뚝딱 할 수 있는 김치찌개

8. 고질병 안구건조증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인공눈물

9. 마음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바람 가득한 동네 산길

10. 원래 나의 모습보다 날씬하게 비춰주는 거울


특별히 마음수련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데 문득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목록을 적어 보기 전까지만 해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건 무언가 특별한 것,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예를 들면 '밤잠 설치도록 기쁘게 하는 통장잔고'라든가, 아니면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외모' 또는 '시기 질투가 당연한 범접할 수 없는 능력'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삶에서 행복은 꼭 특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 참 고맙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망만이 가득한 세상일 테니 얼마나 괴로울까... 

오늘이라는 하루를 지내고 나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작고 소소하지만 끊임없이 생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20대 중반에 다니던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맡았던 '왕눈이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진한 쌍꺼풀에 큰 눈 때문에 생긴 별명 왕눈이 언니. 빨간 립스틱 때문에 웃을 때면 가지런한 치아가 더 돋보이던 언니였다. 남편과 이혼 후 5살 아들을 혼자 돌보며 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언니가 말했다.

"어제 아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엉덩이를 몇 대 때려줬더니 울더라. 마음이 아파도 어떻게 하겠어. 버릇없어지면 안 되니까. 아빠 없는 애라서 그렇다는 소리 들으면 안 되잖아. 울고 나서는 몇 시간 동안 이름 불러도 오지도 않고 대답도 안 하더니.. 글쎄.. 사탕 하나 주니까 그렇게 행복해하면서 쪽쪽 빨아먹더라."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이 나도 엄마의 화해가 담긴 사탕 한 알은 5살 아이에게 행복이었을 것이다. 


밤잠 설치도록 기쁘게 해주는 통장 잔고가 없어도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않았어도 나에게도 뜨끈한 라면과 강아지의 구수한 발 냄새, 따듯한 위로, 답답함을 풀어주는 동네산길이라는 행복, 나만의 사탕이 있다. 씁쓸한 세상에서 천천히 단 맛을 내는 조그만 사탕. 그 사탕이 하루를 살아가게 하고 감사하게 한다. 때로는 세상의 쓴맛에 좌절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겠지만 행복이라는 사탕은 끊임없이 계속 만들어질 테니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벌써 11번째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생각나는 것을 보니 난 정말 많은 사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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