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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Jan 30. 2023

지금 밥 하러 갑니다(2)

존버의 승리!


대체인력 아르바이트가 아닌 계약직 근무가 화근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씩 학교로 들어가는 급식실 아르바이트 경험을 해보지 못한 채 덜컥 한 달 보름동안의 계약직에 지원하다니. 멋모르고 지원한 중학교에 생각지도 못한 ‘합격’ 목걸이를 받고 나서 이틀 동안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보통은 1년에서 몇 년간 급식실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는데 생초보인 내가 뽑혔다니 말이다. 노동이라고는 집안청소 외에 딱히 경험이 없던 나에게 교직원 포함 1,100명 규모의 중학교 급식실 계약직은 너무 버거웠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 30분에서 오후 4시까지의 노동은 참 쓰디썼다. 물론 4시까지 꽉 찬 근무는 아니었다. 보통 일을 마치고 샤워를 끝내면 2시 40분에서 3시 정도였고 퇴근까지 나머지 한 시간은 작업복을 빨아 널고 휴게실을 간단하게 청소하며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나의 첫 임무는 야채 다듬기와 도마, 칼, 믹서기 등을 닦고 소독하는 것이었는데 그까짓 거 닦고 소독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막상 해보니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만만치 않았다. 순서와 닦아야 하는 장소 어떤 세제를 써야 하는지 등등 정해진 대로 해야 했기에 깜빡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가 되기 때문이었다. 

급식실의 모든 일이 그랬다. 

정해진 대로 바로바로 임무를 하지 못하는 순간 다른 직원에게 노동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다 보니 조금 예민한 직원의 경우는 온 얼굴로 짜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도 햇병아리 신병이니 좀 봐주면 좋을 텐데 싶지만 워낙 노동의 강도가 센 환경이다 보니 넉넉한 마음이 샘솟기는 어려운 듯했다. 


“잘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막상 일해 놓으면 틀렸다고 다시 하라고 하니 기분 나쁘죠?” 

중학교 급식실에서 제일 따듯했던 나보다 4살 아래 직원이 웃으면서 했던 말이다. 나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으로 답했다. 


“급식실이 워낙 할 일도 많고 힘든데 일은 빨리해야 하고 그래서 그래요. 그래도 하다 보면 일이 늘 거예요!” 


급식실은 정말 그랬다. 무겁고 힘들지만 가볍고 재빠르게 들어야 하고 닦아내기 힘들지만 빠른 시간에 반짝반짝 닦아내야 했다. 야채를 다듬는 방법도 그동안의 내 방법과는 달랐고 칼질도 정확하고 빨라야 했다. 내가 제일 못 하는 일을 아름답게 해내야 하는 급식실의 업무들이 나에게는 부담이었기에 매일매일 출근길이 한없이 무거웠다.


그래도 시간은 지난가는 것이 매력이라 하루에 몇 번씩 ‘때려치우자!’라는 생각을 했다가 ‘내가 이것도 못해내면 난 바보다!’라는 결론을 정신없이 번갈아 되네이면서 버티니 2주가 흘렀다. 이제 조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버틸만하다 생각하니 한 달이 지나갔고, 이 학교에서의 경험으로 다른 학교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계약 마감 날짜가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 급식실에서 나의 업무는 일이 고돼서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나름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자칭 베테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텃세가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기에 굳은 마음을 풀고 약속된 기간 동안 일을 마무리했지만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 항상 그들은 “우리 학교처럼 텃세 없고 사람들이 좋은 학교가 어디 있어?”를 반복했다. 정말 몰라서인지 아닌 척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며 약속을 지켰고 많은 것을 배웠다. 


계약 마지막 날 “여름방학 끝나고 다른 학교보다 우리 학교 우선으로 아르바이트 올 거지?” 묻는 직원에게 대답도 하기 전 누군가 말을 가로챈다. 

“당연히 와야지. 여기가 일 배운 친정인데.”


나는 씩 웃으며 생각했다.

‘친정 됐고! 하는 거 봐서!’


계약직으로 일을 배우고 나니 하루하루 들어가는 아르바이트는 가뿐했다. 어느 곳이든 갈등 없는 곳이 없고 힘들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 있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다. 첫 급식실 경험을 호되게 겪었으니 새로운 학교에서는 좀 더 유연하지 않을까 자신감이 생겼다.


무더운 여름방학이 지나고 개학 2주 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여기 ㅇㅇ초등학교인데 개학 전 급식실 청소 4일간 나올 수 있어요?” 


재학생과 교지원 포함 1,900명 정도의 규모가 큰 집 앞 초등학교다.

내가 왜 이렇게 급식실 알바에 집착(?) 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이 초등학교와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네! 갈 수 있어요.”

이왕 시작했으니 ‘경험’이 아닌 ‘경력’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것이 존버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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