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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Feb 03. 2023

지금 밥 하러 갑니다(3)

언니의 세계

재학생과 교직원 포함 2,000명에 가까운 초등학교 급식실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아침 7시 40분부터 일이 마감되는 2시 30분까지 청소, 급식메뉴 만들기, 세척, 청소가 반복되며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일주일 내내 빠지는 날 없이 대체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면 지친 몸이 신성한 노동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 못해먹겠다 이제 일주일에 두 번만 일해야지.'


힘들 때마다 하는 생각인데 막상 사람이 없어서 곤란해하는 급식실 왕언니의 부탁에 이 생각은 까맣게 잊게 된다. 일이 제법 몸에 익숙해지고 손에 붙는 듯해도 항상 배워야 할 새로운 일이 생기는 매운맛 급식실.


 보통 나이가 많은 조리원에게 '언니'란 친근한 호칭으로 통일하고 있는데 정년퇴직을 앞둔 제법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에게도 이 호칭이 맞는 건지 가끔은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언니'란 단어는 확실히 서로 가까워지는,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급식실에서 언니들은 각자의 경력에 걸맞게 모르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없는 슈퍼우먼이다. 그날 급식 반찬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만드는 순서, 방법 등을 효율적으로 진행한다. 간혹 영양사와 조리사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은 학교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의 경우 여러 학교를 들어가 일하다 보니 '이 학교는 이렇네, 저 학교는 저렇네'등의 말들을 뒤에서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인데 어찌 말이 없을까? 

급식실 업무 자체가 힘든 일이라 예민해지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기도 하지만 반면 힘든 일이다 보니 더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급식실 '언니들'은 본인의 주어진 일 외에 아르바이트생과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신입직원의 일까지 도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모든 언니가 발 벗고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따듯하고 든든할 때는 "잠깐 기다려! 언니가 해줄게!" 또는 "그건 언니가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다른 일 해!"라는 말을 들을 때다. 

그런다고 바로 좋아라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안심이 되고 언니들을 도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볼 때면 "언니! 가르쳐 주시면 제가 해볼게요." "아니에요. 언니 힘드시니까 저도 같이 할게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급식실 언니들 세계의 팔 할은 책임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9월, 가장 믿고 따르는 언니가 급식실 정규직에 지원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교육청을 통해 가을과 겨울에 모집되는 학교 급식조리원 정규직. 솔직히 한 번도 정규직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마흔 중반이란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지 특별히 급식 조리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 하고 나면 이틀 후에 바로바로 현금을 입금해 준다는 것도 큰 매력이긴 하다.


 언니의 물음에 조금은 닭살스럽게 대답해 본다.

"저는 언니처럼 멋지게 일하지 못해서 감히 지원을 못해요~"

순간 언니의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번진다. 눈까지 웃는 언니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꽤 좋은 것 같았다.

"어머! 자기 뭐야~ 부끄럽게..."

억척스럽게 척척 일을 해내던 언니가 순간 부끄러움 많은 아가씨처럼 변한다.


솔직히 나는 언니의 세계에서 든든한 언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글쎄... 언젠가는 생각이 바뀌어 급식실 언니의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지금처럼 언니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다.


다가오는 3월에도 가끔씩 급식실에 출근할 것 같다. 

언제까지 이 아르바이트를 할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언니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지어보려고 한다.

 학교 급식의 세계에서 원더우먼 보다 더 멋진 그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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