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Feb 07. 2023

남편이니까 죽도록 밉고, 안쓰럽고 사랑합니다

지금 집에 남편이 없다.

남편이 퇴근하는 6시 정도가 되면 현관에 걸어놓은 종이 울리며 "나 왔어!" 소리가 들렸는데 일주일째 이 자리에 남편은 없다.


"엄마! 8시에 아빠랑 영상통화 ok?"

발랄한 목소리로 딸아이가 물어본다.


"네 맘대로 해. 영상통화를 하든지 말든지."

무뚝뚝한 내 말에도 딸은 개의치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


지난 화요일 산재사고를 당한 남편은 용인의 한 병원에서 수술 후 입원 중이다. 새끼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고 힘줄이 끊어져서 미세접합 수술을 받았다. 운이 좋지 않았는지 끝쪽 힘줄이 뼈에 붙은 채 절단된 상태여서 손가락 끝 마디는 살짝 굽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속이 뒤집어지는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카톡으로 수술이 끝난 손가락을 친절하게 사진 찍어 나에게 보냈다. 희한하게 생긴 핀으로 고정시킨 채 몇 바늘인지 모르게 꿰매진 손가락 피부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피부는 좀 더 지켜보다가 계속 색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식 수술 해야 된다네."

남의 손가락 얘기하듯 말하는 남편이 죽도록 밉다.


남편의 산재 사고는 벌써 3번째다.

하는 일이 쇠를 만지는 일이라 위험도는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왜 3번이나 사고를 당하나 싶다.

그놈의 오지랖 때문이다.


첫 사고는 큰 아이를 낳고 바로 둘째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얼마 후였다.

불안하게 울리는 핸드폰에서 "형수님! 형님이 많이 다치셨어요!"라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앞이 아득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게 된 남편의 모습은 처참했다.

눈, 코, 입, 귀... 구멍이란 구멍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두개골에 금이 간 채 찢어진 얼굴에서도 피가 흘렀다. 가장 상태가 심한 다리는 무릎 아래 뼈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내 얼굴을 본 남편은 연신 '괜찮아'만 반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제 기어 다니는 큰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임신 3개월의 몸으로 병실에 24시간 붙어 남편 간호를 시작했다. 남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도 입덧을 하는 시기에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따듯한 물을 받아 수시로 남편의 몸을 닦아주었다. 입덧도 사치고 태교도 사치였던 병원 생활은 3개월간 계속되었고 그 사이 배가 불러왔다. 그때 나는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


'제발 긍정적이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게 해 주세요!"

내가 불안하고 어두웠기에 그 영향이 뱃속 딸아이에게 갈까 정말 두려웠던 것 같다.


3개월간의 입원 생활을 마친 남편은 재활 기간만 1년이 걸렸다. 그 기간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우울하고 침울했다.

남편이 사고가 일어난 날, 다른 직원의 일을 돕지 않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면...

남편에게 1톤 무게의 그 무언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이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에'란 물음에 매일이 지옥이었던 시간이었다. 


그 지옥의 시간을 다 잊기도 힘든데 남편은 또 한 번 손가락 끝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수지접합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병원이었지만 남편의 손가락 끝은 살리지 못헀다. 유난히 길고 예쁜 남편의 손가락에 남은 흉한 상처가 안쓰럽고 가슴 아팠다. 


"기계가 돌아가지 않아요!" 

소리에 남편이 다가갔을 때, 꿈쩍도 하지 않고 내내 멈춰있던 그 기계는 갑자기 왜 돌아갔을까... 

기계가 돌아가든 말든 그냥 두지. 

본인이 뭐라고.. 자기 일도 아닌데... 자기가 뭔데... 그 무시무시한 기계 앞으로 갔을까.. 또 한 번 남편이 원망스럽고 죽도록 미웠다.

남편을 보고 '기계가 돌아가지 않아요!' 말했던 직원은 충격으로 한참 출근도 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에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던 남편은 이렇게 또 병원에 있다.

이번 사고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하는 말에 더 화가 난다. 남편이 운이 없어서 당한 사고란다. 날카롭고 위험한 물건을 그 누구도 아닌 운이 없던 남편이 만져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더 뒤집어진다.


"왜! 이제 발가락까지 다 없애버리지!"


수술이 잘 끝났다는 남편의 전화에 모진 말을 뱉어버렸다.

핸드폰 속 남편은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해..." 한다.

정말 남편이 너무... 너무.. 너무... 밉고 또 밉다. 그리고 그 뒤로 안쓰러움과 불쌍한 마음에 눈물이 난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쉽게 허락해 주지 않는 병원. 그래, 죽을병은 아니니 유난 떨지 말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여기 병원 엄청 깨끗하고 좋아! TV도 각자 자리에 한 대씩 설치되어 있어!"

수술이 끝나고 며칠 뒤 남편은 까만 내 속도 모르고 병원 자랑이 한창이다.


"옥상에 하늘정원도 있는데 운동하기도 좋고 최고야!"

남편은 말로만 자랑하기 아쉬웠는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보름달과 정원 풍경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고 있다.

'카톡! 카톡!' 소리가 괜히 얄밉다.

내 마음을 알기에 일부러 더 밝게 이야기한다고 하기엔, 정말 즐거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라 슬쩍 화가 난다.


"그렇게 좋아?"

내 물음에 한기가 느껴졌는지 남편이 조용해진다. 그러고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이제 더 조심하고 앞으로 이런 일 생기지 않게 할게." 한다.


그래.. 이제 제발 그만하자 남편아!!!!!!

마음속으로 실컷 외쳐본다.


얼마 전에 구입한 1kg짜리 당면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잡채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30인분 당면은 자주 구입하는 식재료이다. 다쳐서 속상하게 하는 남편 뭐가 예쁘다고 퇴원까지 기다렸다가 잡채를 해주나 싶다. 


"다 먹어버릴 테다!"


뻣뻣한 당면을 욕심스럽게 움켜쥐고 꺼냈다.

다 먹으려고 했는데, 죽도록 미운 남편 얼굴이 아른거린다.


"에이... 뭐가 예쁘다고..."

남편 얼굴을 지우려고 힘껏 도리질을 해본다.

그런데, 미웠던 남편이 한없이 안쓰러운 남편으로 다가온다. 잡채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그래.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지 뭐."

당면을 반으로 나누어 포장지에 다시 넣어둔다.

이 죽일 놈의 사랑!

남편이니까 죽도록 밉고 안쓰럽고 그리고 사랑하는 거지...


이제 다음은 없다.

딱 한 번만 봐준 거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남편이 보내준 사진을 다시 천천히 확인해 본다.

시설 좋고, 의료진도 친절하면서 tv도 혼자 볼 수 있고, 정원도 아름다우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밥 하러 갑니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