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Feb 09. 2023

남편의 수줍은 사연에 라디오는 피자로 답했다

생에 첫 도전에 피자라니!

"와! 나 당첨됐어!!!"


몇 달 전 남편이 핸드폰 문자를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문자를 확인해 보니 KBS라디오 '이기광의 가요광장'이란 프로그램에서 선물을 보내준다는 문자였다.

운전을 할 때면 언제나 라디오를 듣는 남편은 프로그램 이름만 대면 사회자가 누구인지, 오늘 어떤 게스트가 나왔었는지 줄줄 외울 정도이다. 


남편은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니...

어떤 내용을 보냈을지 궁금하기보다 어딘가에 글을 써서 보냈다는 것, 그 자체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잘했네~"


내 한마디에 온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남편. 

어린아이 같이 들뜬 남편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보내주겠다던 선물은 '두 달 후'라는 안내 문자 보다 한 달이 더 지난 후에야 배송되었다.

남편의 사연은 대략, 학교가 멀어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아들과 함께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사연에 맞춘 센스 있는 선물은 '화덕피자 3종세트'였다.

남편은 주말에 아들이 내려올 때까지 화덕피자 3종세트를 냉동실에 얌전히 가둬놓았다.


즐거운 이벤트로 기억된 그날을 뒤로하고 거의 3개월이 지난주.

병원에 입원한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야! 저번에 내가 라디오 사연 보내서 피자 받아서 먹었잖아?"

"응. 먹었지~ 왜?"

"이상하다. 피자가 또 배송될 거라고 KBS에서 문자가 왔네."

"정말? 혹시 그거 저번에 보낸 문자가 오류 나서 또 온 거 아닐까?"

"그런가..."


하지만, 잘못 보내진 문자일 거라는 말을 하고 1시간 후 피자는 정말 또 배송되었다.

분명히 잘못 배송된 듯한데, 배송 문제를 방송국에 문의하기도 좀 그렇고 일단 피자를 보낸 화덕피자 업체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

잠시 후 "업무 중이라 문자로 부탁드립니다"란 문자가 왔다.

친절하게 주저리주저리 저번에 피자 받았는데 또 배송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내용으로 답문자를 보냈다. 내 문자가 너무 간절하게 느껴졌는지 바로 핸드폰이 울린다.

다시 한번 라디오 사연 당첨 이야기에 이미 피자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니 공장장님은 


"그냥 드시면 되는데... 연말에 다시 KBS에서 명단이 들어오거든요. 아마 연말 결산으로 추첨한 사연에 또 당첨되신 걸 겁니다. 제대로 명단 받아서 보내드린 거니 걱정 말고 드세요!"


명쾌한 답변에 신나게 피자 보관 박스를 뜯고 에어프라이어에 냉동된 피자를 바삭하게 구워본다. 



"이야~~ 우리 아빠 대단하시네!"


피자를 먹으며 아들이 너스레를 떤다.

아직 병원에 있는 남편은 함께 하지 못해도 함께 먹을 때 보다 더 기분이 좋은 듯하다.

핸드폰 너머 남편의 목소리에서 그 기분이 느껴진다.


남편의 수줍고 소박한 사연에 피자로 화답해 준 라디오!

덕분에 남편은 소소한 것이라도 글로 적어 보려는 도전을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남편의 마음이 담긴 글을 읽게 될 날이 올 거란 기대를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니까 죽도록 밉고, 안쓰럽고 사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