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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Feb 13. 2023

간헐적 단식? 아니, 간헐적 폭식!

폭식을 위한 아름다운 단식

16:8!

16시간 공복 후 다음 8시간 안에 두 끼를 해결하는 16:8의 간헐적 단식. 바로 이거! 나에게 16:8의 간헐적 단식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16시간과 8시간을 몇 시 기준으로 잡을까 곰곰이 생각 후 아침을 건너뛰는 게 그나마 수월 할 것 같아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16시간을 공복시간으로 잡았다. 9시부터 저녁 5시 전까지 두 끼를 평소처럼 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번 다이어트는 대성공 느낌이 강했다고나 할까?


하루, 이틀... 생각한 만큼 나름 수월하게 지나갔다.

뭔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들지만 평소처럼 평범한 두 끼를 먹었다. 그런데 3일째부터 밤 9시가 되면 뱃속에서 천둥이 일어나고 그 천둥은 11시까지 계속됐다. 위가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미칠듯한 배고픔이 온몸을 휘감고 잠도 오지 않는다. 평소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배고픔에 기분도 나쁘고 짜증이 났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고 있는지 회의감까지 들기 시작한다.


16시간이 너무 괴롭고 길어서 지칠 때쯤 괜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맛있는 간식, 식재료등을 찾아보면서 눈으로나마 위안을 삼으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8시간 동안 맛있는 거 먹으면 되잖아? 두 끼 먹는 건데 잘 먹어야 살지~'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2개... 3개... 5개... 총알배송 식품들이 담기기 시작한다.

16:8 간헐적 단식이 간헐적 폭식이 되는 순간이다.


밤만 되면 배고픈 배를 붙잡고 다음날 무얼 먹을까 고민한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팥떡 오늘 1개밖에 못 먹었는데 내일은 더 많이 먹을 거야, 고기는 몇 시쯤 녹여서 몇 시쯤 볶아야지 등등 잠들기 전까지 온통 8시간 안에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진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할 때 읽었던 어느 박사님의 '평범하게 두 끼'라는 조언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 버리고 내일 먹을 맛있는 음식에 집중한다. 16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굶주려있던 불쌍한 내 몸을 위로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래도, 간헐적 단식 중이니 평소 마시던 믹스커피 보다 디카페인 커피믹스를 마셔준다. 막상 칼로리는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카페인이 많이 제거된 커피가 더 나을 거라고 나 자신을 속여본다. 

"커피가 왜 이렇게 맛있지?"

한 봉지를 더 뜯어 뜨거운 물을 붓는다. 살짝 찔리는 마음이 생기다가 이내 나름 정당한 핑계를 만들어 낸다.

"카페에서 라테를 마셔도 지금 보다 커피가 더 많이 들어가는데, 2 봉지쯤이야 별거 아니지!"

입속에 맴도는 커피의 맛이, 그리고 향이 달디달다.



커피를 2잔 마시고 나니 오전 10시 30분.

오후 4시 30분까지 두 끼를 해결하려면 바쁘다.

평소 먹는 영양제 3가지를 꿀꺽 삼키고 밥을 먹을까 했는데, 맛있는 간식이 눈에 밟힌다.

오늘 두 끼 중 한 끼는 밥이 아닌 간식을 먹기로 한다.

아이들 핑계로 사놓은 약과를 꺼내고, 떡과 음료수 팬케이크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서 맛있게 먹는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지 할 일을 하고 나니 벌써 3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떡과 약과 음료수까지 잔뜩 들어간 배가 아직 다 꺼지지 않고 있다. 4시 30까지만 먹을 수 있으니 앞으로 1시간 안에 뭐든 먹지 않으면 16시간의 공복을 견디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양념해 놓은 오리 주물럭을 꺼내고 온갖 야채를 숭덩숭덩 썰어 때려 넣는다.

맛있게 익은 오리고기와 잡곡밥을 다람쥐 양쪽 볼에 가득 찬 열매처럼 뱃속에 차곡차곡 넣어준다. 분명 간헐적 단식은 이런 게 아닐 텐데...



나에게 16:8은 간헐적 폭식을 위한 간헐적 단식이 되어버렸다. 

한 달 안에 줄여보겠다던 뱃살도 그대로, 두꺼운 팔뚝살도 그대로인데 그나마 16시간 동안은 빈속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위안을 느껴본다. 언젠가는 안정화가 되겠지...


"엄마! 다이어트는 이미 글렀어요.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서 다이어트가 되겠어요?"

아르바이트비로 치킨을 주문한 아들이 치킨을 들이밀며 나에게 한 말이다.

"야! 나 지금 공복시간이야. 아침 9시까지 먹으면 안 돼!"

맛있는 치킨 냄새에 발버둥을 쳐본다.

다행히 치킨의 유혹은 뿌리쳤지만 아들의 말처럼 앞으로 16:8이 성공하기는 희박할 것 같다.

그래도 큰 소리 뻥뻥 쳤으니 앞으로 일주일만 더 해보자 생각하면서 볶음밥을 먹는다.

성공이 희박한 게 아니라 성공은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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