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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11. 2023

유채꽃 멱살을 잡고라도 붙잡고 싶은 봄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햇살이 좋아서, 바람이 좋아서 집을 나선다.

시원한 봄바람에 갈색의 곱실거리는 털로 뒤덮인 강아지들의 꼬리가 연신 빙빙 돌아간다. 산책의 시작은 좋았다.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의 선선함을 적당하게 데워주는 따듯한 햇살. 산책 겸 나들이 겸 방문한 체육공원의 봄은 그렇게 완벽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의 세기가 심상치 않다. 벚꽃 나무에서 떨어지는 벚꽃 잎을 보니 바람이 야속하다. 떨어지는 벚꽃 잎이 펼친 손바닥으로 자연스럽게 떨어지면 행운이 온다는 말이 생각났다. 눈을 감고 슬쩍 손바닥을 펼쳐 행운을 가져다줄 벚꽃 잎을 기다렸는데 순간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벚꽃잎들이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듯 세차게 날아가 버린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아쉬운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바람이 자꾸 봄을 쫒으려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오랜만에 봄을 만끽하는 '감성사진'을 찍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나왔는데, 바람에 쫓겨 봄이 달아나고 있었다. 짖꿎은 바람은 불었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어디 한 번 찍으려면 찍어봐라'는 심술을 반복하고 있다. 벚꽃 잎이 가득 떨어진 길을 바쁘게 건너 유채꽃이 주욱 늘어선 길가로 가는 길. 아들은 잔디 밭쪽에 쭈그리고 앉아 민들레 꽃을 찍기 시작했다.

"오! 민들레~ 너도 너무 예쁜데!"

만족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몇 장 찍는 듯하던 아들이 이내 다급한 소리를 지른다.

"아악! 안 돼, 흔들리지 마!"

여지없이 심술궂은 바람이 휩쓸고 가니 민들레의 머리가 기우뚱기우뚱 바람에 따라 사방으로 움직였다. 봄바람이 아니라 봄 태풍이 왔다. 

"아들! 서둘러! 빨리 유채꽃 찍으러 가자."

급한 발걸음으로 강아지들과 뛰듯이 걷는 우리 등 뒤로 뺨을 때리듯 매콤한 바람이 휙~ 몰아친다. 

"엄마,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바람이 때리는 거 같은데요?"

아들의 말이 맞다. 바람에 맞으며 사진을 찍는 느낌이다. 오늘이 아니면 2023년의 봄을 장식하는 유채꽃을 영원히 놓친다는 생각에 바람의 방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5분째 유채꽃 앞에 카메라 모드로 변환된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다. 잠시 바람이 멈춘 순간 촬영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바람이 유채꽃을 날려 버린다. 유채 줄기가 휘청 거리며 옆으로 쓰러진다. 사진을 망쳤다.



다시 도전해 본다. 따가운 바람을 맞으며 핸드폰을 들고 타이밍을 노린다. 촬영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다시 바람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유채꽃을 휘청이게 한다. 이번에도 실패다. '제발 좀 찍게 해 줘라' 속으로 외쳐 보지만 바람은 계속 또 다른 바람을 불러와 쉬지 않고 유채꽃밭을 휩쓸고 지나간다.



혹시 자리가 좋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좀 더 앞으로 옮겨 다른 유채꽃의 코앞에 핸드폰을 들이대고 앉았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된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잠시 바람이 멈추는 듯 해 촬영을 하려는 순간 귓가에 휘이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다시 세찬 바람이 불었다. 화면 가운데, 가장 예쁘게 찍힐 수 있었던 자리에서 쓰러지듯 이탈한 유채꽃. 또 실패다.



어쩔 수 없이 유채꽃의 멱살을 살포시 잡았다. 

"미안, 살짝 잡을게."

혹시 가지가 상할까 조심스럽게 잡고 사진을 찍었다. 

유채꽃의 멱살을 잡고라도 이 봄을 붙잡고 싶었다. 



유채꽃 속에서 꿀을 먹는 곤충들의 통통한 엉덩이까지 찍힌 사진. 유채꽃이 전해주는 봄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와 듣는 저녁 뉴스.

"내일은 전국적으로 흐린 날씨에 태풍 세기와 같은 강풍이 불겠습니다. 야외 시설물 관리에 신경 쓰셔야 하겠습니다. 강한 바람이 예보돼 체감온도가 낮고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겠습니다.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에 본 하늘이 우울하다.

마음속으로 예보가 빗나가길 바랐지만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벚꽃과 유채를 피우던 봄이 지나가고 있다. 다가오는 5월 새로운 꽃을 피우는 봄이 남아있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전날 찍은 사진들을 보니 웃음이 난다. 제대로 찍힌 사진이 거의 없다. 옆으로 휘청이며 쓰러져 있는 꽃들과 심령사진처럼 흔들린 꽃잎들이 야속한 바람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을 삭제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2023년 4월 어느 날의 봄은 유채꽃의 멱살을 잡을 만큼 간절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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