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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05. 2023

너의 말 못 하는 아픔에 난 담담할 수 없었다

사랑하니까...

고요한 새벽시간.

'툭' 팔을 건드리는 작은 진동에 잠이 깼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 38분.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하면서 돌아본 옆자리에 보리가 앉아 있었다.


"보리야, 왜? 무슨 일인데..."

낮고 부스스하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보리는 아무 반응이 없다. 평소였다면 나를 깨우고 나서 눈을 마주치고는 있는 힘껏 꼬리와 엉덩이를 덩실거려야 하는데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앉아 미동도 없다. 손으로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 나를 힘겹게 쳐다보는 눈빛에 초점도, 힘도 없다.


"우리 보리 왜 그러지... 보리야 어디 아파?"

너무 무섭다. 치매에 걸린 듯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보리의 모습이 너무 무섭다. 배가 아파서일까 싶어 동물병원 진료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은 장소리도 괜찮고 약간의 미열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처방받은 장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보리는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보리의 눈은 실핏줄이 터져있고 잔뜩 부어있었다. 떨리는 마음에 병원으로 향했지만 병원이 쉬는 날이라는 걸 뒤늦게 기억하고는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눈이 세균성 감염으로 충혈되고 부었으니 스테로이드제 안 연고를 처방해 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보리는 여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멍한 모습이고 자꾸 누워있으려고만 하니 나는 답답함에 미칠 노릇이었다. 


다시 다음날,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가서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를 했다. 3일 동안 말 못 하는 강아지를 두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가슴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 보리의 염증수치가 치솟아 있었다. 초음파로 확인한 뱃속은 다 괜찮은데 장 끝쪽에 음식물이 아닌 이물질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강아지에게 위험한 장중첩일 수도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확하지 않다는 말에 더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았다.


"2차 병원으로 가시죠.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검사 자료는 가시는 병원에 다 넘겨드리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1시간 20분 거리의 2차 병원으로 가는 길. 침착하자, 침착하자 나를 다독여 본다. 7살, 아직은 살아야 할 시간이 많이 남은 아이라고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도착한 병원에서 접수 후 진료까지 30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30분이 아니라 서른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보리 보호자님!"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차트 잘 받아서 확인했고요, 다시 검사해 보고 말씀 나누시죠. 검사는 1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선생님의 품에 보리를 넘겨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잘 부탁합니다' 말하고 싶었는데 울음이 터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휴지로 두 눈을 꾹꾹 눌렀다. 뭘 잘했다고 눈물이나 흘리는지 그냥 내가 싫다. 

1시간 후 선생님은 다행히 장중첩의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치솟아 있는 염증수치가 문제였다. 간과 방광에 약간의 염증은 보이는데 이 정도로 염증수치가 치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 7살  강아지에게 보일 수 있는 약간의 염증정도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수의사의 모습에 답답함이 몰려온다.


"일단 오늘부터 3일 동안 약 먹어 보고 일요일에 다시 검사해 보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여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녀석과 함께 밤을 새우고 잠깐 잠든 사이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보리 목이 둥그렇게 부었어요."




분명 전날 밤까지도 이러지 않았는데 보리 목 속에 호두가 들어가 있는 듯 둥그렇게 부어있다. 병원으로 전화해 바로 진료 시간을 예약하고,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병원으로 갔다. 다시 시작된 검사. 반복된 진료와 검사에 걱정으로 몸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정상 염증 수치가 5~9 정도인데 현재 보리는 100이 넘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다. 

그럼 이제 보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는 내 울음 섞인 물음에 수의사는 현재 40.5도까지 열이 올라 일단 열부터 내리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41도가 넘으면 장기 손상이 온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이틀 정도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된 가루약을 먹어 보고 다시 피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 병원에서 떨어뜨렸던 보리의 열이 다시 오른다. 집으로 오자마자 물에 적신 수건으로 보리의 온몸을 감싸주고, 닦아주며 열을 내리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내가 잠들까 봐 새벽 2시, 4시, 6시 2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췄다. 알람에 맞춰 강아지 체온을 확인하고 물수건으로 몸 닦아주기를 반복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보리에게 독한 약을 먹이는 게 마음 아프지만 어떻게 하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다행히 이틀 동안 열이 내리기 시작했고 무섭게 부었던 목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구입했던 미니 절구에 사료를 넣고 가루로 갈아 핥아먹게 하니 보리가 조금씩 먹는다. 

다시 진료를 받은 일요일, 선생님의 밝은 표정에 가슴이 뛰었다.


"초음파 결과 목의 오른쪽은 아직 부어있지만 전체적으로 많이 가라앉았고 염증수치도 68 정도로 내려왔어요. 약이 효과가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아직 염증수치는 정상수치보다 많이 높으니까 일주일 정도 더 약을 먹어 보죠."


보리가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 너무 감사해서,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초음파 검사 때문에 하얗게 밀린 보리의 배를 비벼주면서 꼭 안아 보았다. 결코 담담할 수 없었던 말 못 하는 강아지의 아픔. 어디가 아프다고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고통의 시간이 줄어들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다시 코끝이 시큰해진다.




보리에게 약을 먹이고 책상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하얗고 긴 종이 몇 장에 까만 작은 글씨가 가득하다.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닌 사실을 증명하듯 청구서가 배시시 웃고 있다.


아프다는 걸 느끼고 처음 동네 병원 간 날 52,000원.

눈이 부어서 병원 간 날 3,8000원.

다시 동네 병원에서 채혈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268,000원.

2차 병원 진료는 동네 병원 거쳐와서 다행히 검사비용을 많이 절감하게 되어 3일 동안 45,650원, 91,300원, 99,000원. 그 외의 추가 약값과 일주일 내내 병원을 왕복한 주유비 등등...

하하하.

청구서를 보고 웃는데 눈에서 물 같은 것이 찔끔 나왔다. 절대 눈물이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남편이 보리 이마에 본인 이마를 가져다 댄다.

"요 녀석아, 돈 갚아라! 100만 원. 네가 일주일 동안 거의 100만 원 쓴 거 알아, 몰라?"

100만 원을 썼는지 말았는지 에라 모르겠다는 듯 훌러덩 눕는 녀석의 통통한 배를 쓰윽 쓸어 보던 남편이 씩 웃으며 말한다.

"이제 열도 안 나고 정상입니다 아가씨!"

남편과 함께 잠이든 보리의 모습을 보니 나도 잠이 온다.

파란만장했던 일주일 동안 2시간 이상 잠을 자 본 날이 없었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워보니 알겠다.

말 못 하는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정말 무겁고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아들 딸을 낳고 다 키워 둘 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나의 책임은 끝나지 않다는 것을. 

두 발뿐만 아니라 네 발로 다니는 녀석들에 대한 책임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난 일주일간의 시간은 그보다 더 묵직한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연약한 생명을 키우기로 한 이상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져야 한다. 비록 100만 원 아니, 그 이상의 지출이 있을지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작은 몸의 아픔을 보고 담담할 수 없었던 건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 주며 품어주는 존재다. 보리는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5장의 청구서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코를 골며 자는 두 녀석들 얼굴에 내 얼굴을 비볐다. 녀석들은 귀찮고 짜증 난다는 듯 힐끔 쳐다보더니 동그랗게 몸을 말고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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