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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pr 25. 2023

너와 162km 멀어질 준비

우리의 거리 두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무릎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물집 방지 밴드, 바셀린, 각종 소화제와 두통약, 폼클렌징부터 선스틱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확인한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할 줄이야. 하마터면 맨몸만 덜렁 보낼 뻔했다.

5월 2일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 

이 물건들은 아들이 훈련소에 가지고 갈 물건들이다.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저체중으로 나온 아들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데 강원도 최전방 쪽으로 입대를 하게 되다니, 입대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들이 가게 된 신병교육대는 집에서 162km 떨어진 강원도 철원 3사단 백골 신병교육대이다. 5주 훈련만 이곳에서 받고 다른 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 게 아닐까 했지만, 3사단 신병교육대는 거의 백골부대로 자대배치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여리 여리한 몸이 이름도 무서운, 강원도의 백골부대의 훈련을 잘 이겨낼지 걱정과 의심, 두려움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다. 


"누나 백골부대 춥고, 힘들다고 하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얘기해 줬어. 아이고, 우리 조카 어쩌나 최전방에서 대남방송 들으면서 일어나겠네."


놀리는 거야 뭐야. 괜히 심술이 난다. 

남동생은 해병대 출신인데 군 복무기간 동안 연락 할 때마다 엄마 보고 싶다고 떼를 부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훗' 웃음이 났다. 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이 되었구나.


아들의 군입대를 준비하는 마음은 어린이집 첫 입학 내지는 초등학교 첫 입학과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까?'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뭐든지 잘 따라서 할까?

끝없는 걱정이 따라온다. 도대체 이런 걱정은 언제가 되어야 끝나는 걸까?


앞으로 제대를 하고, 대학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또 같은 걱정을 하겠지...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 또 비슷한 걱정이 생길 테고...

어찌 보면 군입대가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 아들, 내 자녀라는 생각 보다 한 사람,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성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는 기회!


162km 떨어져 지내면서 이제 정말 성인으로 인정하는 한 걸음의 첫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 군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 후 취업을 하면 또 한 걸음 거리 두기를 할 것이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인정하는 거리 두기를. 그리고 아들이 결혼을 하면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인정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로 인정하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고 부모가 되어 한없이 품어주는 '보호자'가 되었다가 이제 '조력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이제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역할이 아닌 아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내 역할의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코 끝이 찡해진다.


"나는 5월 2일에 절대로 울지 않는다. 서운해하지 마!"

아들의 군입대 날, 울 거냐고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괜히 먼저 말을 꺼냈다.

"네. 훈련 끝나고 자대배치받고 나서도 오지 마세요. 너무 멀어서 힘들어요. 휴가 때 제가 나오잖아요."

"그래? 그래도 한 번은 가야 되지 않겠냐?"

"에이! 저 다 컸어요. 애기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머니~"


162km 멀어짐은 기한이 있는 멀어짐이다.

당장은 아쉽고 걱정스러워도 내심 뿌듯하다. 

3.14 kg으로 낳아 국방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건장한 사내로 키웠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질 거리 두기로 어엿한 사회인, 한 가정의 가장, 든든한 아버지로 무르익어가는 아들을 응원하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162km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그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 것 같다.

우리의 아름다운 거리 두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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