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oing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ing Doing Jun 08. 2016

몽고반점, 스물다섯

단상(斷想: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2016.06.08

열다섯,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독서 목록의 책을 읽는 숙제였다.

아무런 내용도 모른 채 제목에 이끌려 책을 열었고, 큰 충격을 받은 채 책을 덮은 후,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었고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10년 동안이나 더 공적 교육을 받으며 사회화되었지만, 외려 지금에 와서 이 사회 규범에 한참 벗어난 욕망을 이해할 것만 같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도처에서 얽매여있다.
-장 자크 루소


우리는 사회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더 큰 자유를 위해 개인적 자유를 양도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근원적 자유를 끊임없이 억압하고, 억압당하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로의 도피를 꿈꾼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태어나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동물에 가깝던 생물체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며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 몽고반점은 가장 근원적인 나이다. ‘그’는 처제의 몽고반점을 갈망한다. 단순한 성적 페티시가 아니다. 그는 몽고반점 그 자체를 원한다. 몽고반점을 담아낸 카메라 속에서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된 관계도, 옷을 입지 않은 알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둘은 모든 제약을 초월해 자유롭다. 


일탈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쨌든 그들은 사회 속에 살아가야만 했고, 사회 속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로 규정되었다. 그 순간,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처음으로 그는 그녀의 눈이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스물다섯 해를 사는 내내 한 번도 내 몽고반점을 본 적이 없다. 아마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내 몽고반점을 그리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이의 폭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