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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ing Doing Jun 04. 2016

오이의 폭력

단상(斷想: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2016.06.04

날씨가 더워지면서 냉면, 쫄면 등의 음식을 자주 먹게 된다.

그런 류의 음식을 주문하면서 꼭 해야 하는 말이 있다. 

"오이는 빼주세요-"

나는 오이를 못 먹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이를 싫어했다. 최초의 기억에 따르면, 딱히 어떤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편식을 막으려는 엄마의 노력으로 한 입 오이를 베어 먹었다거나 학교 급식에서 모든 반찬을 골고루 받되 남기지 말라는 선생님의 엄포로 오이소박이를 억지로 먹은 뒤 토한 기억뿐이다.

오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왜 오이를 먹지 않느냐'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왜 나이 먹고 편식이냐', '오이가 얼마나 건강과 미용에 좋은데'라는 질책에서, '편식하는 사람은 성격도 까칠하다더라'라는 주장으로까지 흘러간다.

이에 앞서, 짜장면, 냉면, 쫄면, 막국수 등에 올라가는 오이는 default이다. 음식을 주문받는 과정에서 아무도 나에게 '오이는 넣으실 건가요?'하고 묻지 않는다. 자칫 오이를 넣지 말라는 주문을 잊고 나면, 나는 걷어내고도 남아있는 오이의 잔향을 맡으며 찝찝한 기분으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이 분명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당연히 음식에 올리며, 오이를 먹지 않는 나의 자유를, '편식'으로 낙인찍는다. 이는 폭력이다.

오이는 내가 자주 겪기 때문에 가져온 한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특정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하는 음식에도, 체질상 마시지 못하는 술에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건강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단순하게 먹기 싫은 음식에 대해 이런 저런 이유로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책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주인공 영혜에게 주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으며, 먹기 싫은 음식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거기에 왜 더 이유가 필요할까.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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