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지#2
나를 위해서는 아끼지 않겠다던 나는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돈이 없다는 핑계로 아르바이트와 술로만 보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 같았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땐 까마득히 몰랐다. 그래서 난 첫 여행 이후 목표를 세웠다, ‘죽기 전에 50개 도시 가기’
가장 먼저 떠난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라는 단어를 쓰는데도 가슴이 뭉클하다. 전 세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지만 아마도 파리는 내가 가장 사랑한 도시로 남을 것 같다. 처음으로 가는 유럽, 처음으로 혼자 한 여행, 오롯한 혼자만의 첫 여행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듯하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서 본 너무나 푸르고 아름답던 창밖 풍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잘한 것은 파리에서만 6박 7일의 일정을 짰다는 것이다. 어디 여러 나라, 도시를 돌고 싶지 않았다. ‘파리’만을 온몸으로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파리지앵이 돼보고 싶었다. 목적지 없이 골목골목을 걷다 배고프면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그리고 근처 공원에 앉아 먹던 그 샌드위치 맛은 거짓말 좀 보태면 미슐랭 3 스타 급이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에펠탑 앞 잔디밭을 갔다. 진짜 매일 갔다. 오죽하면 자신을 스스로 ‘에펠탑 성애자’라고 불렀을까. 내가 매일 같이 그곳에 간 이유를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그 잔디밭에 있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해도, 누워서 하늘을 바라봐도, 에펠탑을 멍하니 바라봐도 그냥 좋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어도, 주위 사람 목소리를 들어도, 새소리를 듣고 있어도 좋았다. 혼자 한 여행이니 숙소는 외롭지 않게 한인 민박으로 구했다. 저녁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얘기도 나누게 되었고 일정이 맞으면 동행도 했다. 어느 저녁엔 숙소에 묵던 사람들 다 같이 에펠탑 앞 잔디밭에서 맥주 한잔 하며 노래도 부르고 했다. 너무 좋은 추억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동생들이 있다.
이후 현재까지 로마, 피렌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런던,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뉴욕 등 3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한해에 유럽을 2번이나 간 적도 있다.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던 죄로 일주일에 몇백짜리 여행을 그렇게 다니고 있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동안 한 번도 패키지로 다녀온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패키지로 가는 건 관광이라고 생각했고, 여행을 하고 싶던 나는 패키지로 가지 않았다. 난 여행과 관광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관광은 기억이 생기지만 여행은 추억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을 가면 남이 짜준 일정에 따라다니며 사진 찍고 이동하고, 먹고 사진 찍고 또, 이동하게 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가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그리고 ‘난 여기 여기를 가봤어.’ 하며 SNS에 사진들을 올린다. 그렇게 다녀온 곳은 1년만 지나도 핸드폰의 사진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물론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보다 더 오래 머릿속에 남는 것은 내 눈에 담았던 풍경과 그곳의 냄새, 소리라고 생각한다.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왔을 때의 일이다, 7박 9일의 짧은 일정으로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가보기 위해 자동차를 렌트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를 타도 됐지만, 미국 대륙 횡단이 '버킷리스트'중의 하나라서 직접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약간의 후회를 했다. 여행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가봐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차로 이동하여 보고 다시 이동하고, 내가 지양하던 ‘관광’을 하고 왔었다. 겨우 휴가 내서 비싼 돈 주고 다녀온 머나먼 미국 땅이었는데, 나에게 남은 추억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쉽고 슬펐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내 다리가 버텨주는 날까지는 많이 걸으며 많은 추억을 나의 눈, 코, 귀에 담아 오겠다고.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지’ 내가 가장 즐겨하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더욱 열심히 놀고, 즐기고, 해봤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내가 이걸 했을 때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사실 나도 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잠깐 중요한 걸 잊고 산적이 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늘어났었다. 그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물론 실행은 못 하고 생각만.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의 권태기와 함께 이것들이 머릿속에서 분출했다. 나는 다 해보고 싶었다. 예쁜 옷도 입어보고 싶고, 여행도 다녀보고 싶었고, 책도 써보고 싶었다. 아직 해보고 싶은 건 많이 남아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이불 삼아 누워 고 싶고, 자식에게 아빠가 쓴 책이라고 이 책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여러분 나이가 몇 살이든 아직 늦지 않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좀 더 행운일 뿐이다. 무엇이든 생각이 들었으면 해 보자. 나 같이 글도 많이 안 써본 공돌이도 작가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