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지#1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가 남긴 말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내가 오늘 생각했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을 매일같이 최선을 다해 살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지금 해야 한다. 돈 모아서 해야지, 나중에 성공해서 해야지, 시간 나면 해야지, 아직 오래 살지 않았지만 저런 것들은 결국 하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2014년, 청춘페스티벌에서 가수 요조 씨가 했던 말이 공감 가서 한동안 떠들고 다녔다. “늙어서 잘 살려고 오늘 먹고 싶은 아메리카노를 참지 말자.” 그래서인가 글을 쓰는 지금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이런 생각을 본격적으로 나의 삶에 접목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학창 시절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돈이 없다는 핑계로 못한 것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 날 정도로 아까운 시간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용돈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던 대학시절엔 아르바이트가 나랑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니까. 이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결혼 전까지는...)
먼저, 나를 꾸미는데 관심 많았던 나는 사고 싶은 옷을 마구 사기 시작했다. 심사숙고해서 구매했지만, 사실 꽤 많은 옷이 충동구매였다. 물론 비싼 옷은 손이 떨려서 사지 못한 적도 있지만, 사고 싶은 옷을 사는데 큰 망설임이 없었다. 너무 망설임이 없어서였을까, 그때 샀던 많은 옷은 대부분 재활용 수거함으로 갔다. 그때 좋아서 산 옷이고 유행이 지났을 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난 새로운 계절이 오면 옷장을 열어보고 또 ‘입을 옷이 없네’ 하며 쇼핑을 시작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이제 사는 옷은 재활용 수거함으로 덜 가고 있다. 역시 사람은 발전하는구나. 물론 때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하늘이 푸르고 높다란 어느 가을날이었다. 겨울 코트를 사겠다고 당시 여자 친구와 백화점을 갔다. 한참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코트를 발견하고 입어보니, 마치 나를 위한 옷 같았다. 코트를 입고 전신 거울에 이리저리 돌려보며 ‘이건 사야 해’ 생각으로 가격표를 봤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옷을 벗어 점원에게 건네며 “좀 더 보고 올게요.” 하며 가게를 나왔다. 여자 친구에게 “에이, 옷이 좀 별로더라”라고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 사실은 가격이 좀 ‘별로’였다. 여자 친구 앞에서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렇게 다시 백화점을 한 바퀴를 돌아갈 때쯤, 눈치 빠른 그녀가 갑자기 지갑에 잊어버리고 있던 백화점 상품권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아까 그 옷이 제일 예쁘다며 자기는 상품권 쓸 일 없다고 코트를 사는데 보태자는 것이었다. 여자 친구 성화에 못 이기는 척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그 코트를 구매했다. 실제로 여자 친구가 가진 상품권의 도움은 받지 않았다. 여자 친구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분명 옷을 입어볼 땐 기분 좋았지만 사고 나올 땐 뭔가 찝찝했다. 나를 위해서는 아끼지 말자 했던 나였는데, 몸에 밴 습관이 미웠다. 그때 더욱 확실히 다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하자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실행해야 그 기쁨과 행복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고마운 여자 친구에게 비싸고 맛있는 저녁을 사줬다.
그렇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옷을 사고 있고, 예쁜 쓰레기들을 사기도 한다. 여전히 충동구매도 하고 여전히 실패도 한다. 언제나 새로 산 예쁜 옷을 입고 집 밖을 나설 때 기분은 너무 좋다. 누군가는, 특히 부모님은 인제 그만 정신 차리고 돈을 모으라고 말했었지만,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엔 변화가 없었다. 이 옷 안 산다고 내가 더 괜찮은 사람과 더 좋은 집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고민해보았으려나. 어차피 불확실한 미래라면 지금이라도 행복하면 좋은 것 아닌가? 이 옷 하나가 내게 조금이나마 행복을 준다면 기꺼이 난 또 옷을 사고 실패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