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칫밥 먹었어도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보았다. 이병헌은 오랫동안 전지 회사에 충성을 다했지만, 한순식간에 해고당한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손으로 관자놀이를 토도독 토도독 불안하게 쳐대며 그가 외치는 말이다.
본격적인 육아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10월은 공휴일이 많았기에 - 직장인들에게 기분이 꽤 괜찮은 달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난장판이었다.
박수칠 때가 아니라 박수 멈췄을 때 떠났다.
여러 명이나 10월부터 정직을 당했고, 흉흉한 분위기에 여기저기 작은 한숨이 들렸다.
업무 공백은 심각했고, 이 와중에 육아 휴직을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되기 위해 처절하게 다른 이들을 죽였던 이병헌과
내가 쉬기 위해 처절하게 다른 이들의 일을 눈감는 내 모습이 반대인 듯,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병헌처럼 외칠뿐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한 명이 나가도 TO가 안 생겨요.
특히 휴직은 나간 거로 치지도 않고요.
요즘은 2명이 퇴사해야 1명의 TO가 생겨요.
국가는 낳으라고 하지만, 회사는 달갑지가 않은 것 같다.
굵직한 기업이지만, TO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떠난 자리엔, 내 옆자리 직원이 온전히 떠맡을 뿐이었다.
옆자리 직원은 ‘가지 마요~~’ 농담인 듯 처절한 외침을 한다.
미안해요…
나는 왜 미안해야 할까,
회사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야 할까…
회사에서 진통을 겪고 싶지 않아
임신 36주부터는 ‘언제 낳아도 안 이상한’ 때가 된다.
만원 지하철, 버스는 공포의 대상이다. 배가 짓눌리기 십상이다.
혼자 걷다가도 균형을 잃어 쓰러진다.
3시간 앉아있는 것이 최대 한계이다.
나 역시 겪어보지 않았을 땐 몰랐다.
‘많은 임산부들이 1~2주 전까지 일을 한다죠??’
‘맞아요. 제 친누나는 많이 쉬어도 우울함이 온다고 안 쉬더라고요.’
캐주얼한 점심 식사시간,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왔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인사이드아웃의 세포들처럼
분노세포는 ‘뭐라고! 어쩌라고!’, 불안세포는 ‘미안하네 어쩌지..’ 뒤섞여 다투고 있다.
상황은 모두가 다를 텐데 그저 쉽게 평균화되는 생각들…
정반과 그 중간이 어떻게 같은 모습이겠나.
태반(아기집)이 내려와 있어서, 어쩌면 아이가 잘 못 크고 빨리 조산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경과를 봐야겠지만 정상 분만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나는 나름대로 9개월간 일을 해왔는데도 죄인처럼 회사를 쉰다.
개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미안함, 죄책감은.
당연히 TO가 생기고, 빠르게 대직자를 뽑고 (2개월 차에 말했으니, 7개월의 기회가 있었음)
임신을 충만히 축하받을 순 없었을까.
임신했다고 했을 때 팀장님이 놀란 이유는 뭐였을까 아마, 걱정도 들었겠지.
걱정이 들지 않고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을 순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