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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람 Nov 14. 2019

용서하는 방법 - ④

모니터 밖의 지뢰찾기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날들은 지뢰밭을 헤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한 행동이 그렇게까지 지탄받을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나나 동생이 그날, 그 시간에 뇌관에 발을 올렸다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에게는 그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다. 어머니는 적어도 나나 동생이 기댈 언덕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무려 35년이다. 그 35년 동안 어머니는 단 하루도 아버지 곁에서 떠날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도덕이 어머니를 침식해 들어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동생이 잘못하면 내가 혼났고, 나나 동생이 잘못하면 어머니가 함께 지탄받았다. 군대의 구조였다. 우리가 한순간도 원한 적 없는.

 


 5분 전에는 나와 동생에게 얼굴을 부비며 사랑을 입에 담던 아버지가 라면 하나 완성할 짧은 시간 안에 벌게진 눈으로, 죽일 듯이 우리를 노려보는 건 기억도 안 나는 아기 시절부터의 일상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존재는 돌발성 호우 그 자체였다. 지금이나 '고작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컸다고 9살짜리 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가혹했다'는 생각을 하지,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아버지가 컵 소리가 너무 크다고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내려치면 그런가 보다 했고, 그가 더 큰 소리를 낸 이웃 아저씨에게는 웃는 낯으로 너스레를 떨면 그것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도 뭔가를 학습한 모양이었다. 클로드가 나의 뇌관을 건드리면 나는 얼씨구나, 니가 오늘 내 신경을 두드리는구나 하며 칼춤을 춰댔으니-비유적 표현이다-.


 클로드가 내 손을 잡고 '나는 네 부모님이 너를 대한 방식은 끔찍하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을 때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건 길에서 행복하게 웃는 화목한 가족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아가 너 참 좋겠다, 나도 그런 게 갖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때의 부끄러움과도 닮아 있었다. 얇은 분노로 꼼꼼하게 칠해진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원해서 당한 학대가 아닌데 왜 이 수치는 내게 있나. 내가 직면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사람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용서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나는 학대를 당했다는 것.

 


 내가 불쾌하다 느꼈던 일들을 묻어둘 때면 늘 약간의 위화감이 따라왔다. 약간 다른데, 이거 약간 다른데. 더덕과 잔대처럼 꼭 닮았지만 내가 했던 '선택적 망각'과 '용서'는 뿌리부터 다른 것이었다. 진짜 용서했다면 그 사람이 다른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잘 묻어둔 이전 잘못의 몫까지 끌고 와 몰아세우지는 않는 법인데,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판단과 감정의 표현을 유보했을 뿐이지 결코 용서한 적은 없었다. 용서의 밭이라 생각하고 돌봤던 것이 사실은 분노의 토양이었다. 내 딴에는 이유가 있고 또 규칙이 있었기에 이 분노의 조건화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옛날 일에서 몸도, 마음도 멀어져서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착각이었다. 클로드의 말처럼 내 부모님이 나를 대한 방식은 선명히, 나와 클로드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금 내가 클로드의 태풍이었나? 부끄럽고 또 화가 났는데 신기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아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는 평을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성격이 좋아 남들보다 잘 인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쌓인 화는 응당 풀어도 될 것처럼 보이는 곳에 풀었다. 사기를 당했을 때, 택시 기사가 시비를 걸어올 때, 누가 제 새끼 격 좀 높여 보자고 순한 내 동생 후려칠 때. 누가 순진한 외국인이라고 내 남편한테 바가지 씌울 때. 티가 안 났을 뿐 이 코리안 크레이지 장녀는 언제나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중고 거래를 할 때마다 '이것은 사기인가' 하는 의심이 사실로 굳어지는 순간에는 희열마저 느꼈다. 오랜만에 화 풀 상대가 생겼다고, 앉아서도 누워서도 마음 편할 일 없게 단기간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어줘야겠다고. 가만히 있다가 뺨 맞은 동생마저도 저 대신 화를 내는 내게 '누나, (상대방한테)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라고 걱정하는 판이었지만 클로드만은 내 분노에 제동을 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더 좋았다. 내가 머리 풀고 흰 옷 입고 칼춤 출 때 장구로 비트를 넣어주는 남자라서. 내가 언제나 온화하게 남아주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어서. 분노와 불화마저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내 결핍을 눈치챘을 때만은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입으로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칼춤을 내 집에서, 내가 선택한 남자에게 휘둘러서는 안 되는 거였다. 부모님 집이야 이미 늦었다지만 내 집에까지 그 살얼음 같은 공기를 들여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도 그는 나를 용서했다. 나는 내가 용서할 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용서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기가 생겼다. 이것이 내가 아동 학대 피해자로서의 나를 인정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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