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아버지는 웃음으로 많은 말을 대신하는 사람이었다. 당황스러울 때도, 곤란할 때도 웃었다. 아마도 오랜 식당 운영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방어기제가 쿨한 척이라면 아버지의 방어기제는 웃음이었던가 보다. 나는 그날도 화가 나있었다. 열네 살 때였나 열다섯 살 때였나, 왜 잘못한 것도 아빠인데 화내는 것도 아빠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잘못하면 사과를 하는 거 아니냐고. 딴에는 몇 대든 얻어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빠 하는 꼴을 참아 넘기느니 차라리 몇 대쯤 맞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였으니까. 아버지는 술이 취해 벌게진 눈으로 한참 나를 노려보더니 낄낄 웃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거실에 서 있었고, 나는 내방 앞에, 그리고 어머니는 안방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웃지 말라고 소리쳤다. 아빠 때문에 나는 매일 혈관 속에 불꽃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남은 가족들 속은 뒤집어놓는 주제에 웃음이 나오나, 분노에 눈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나도 무서움을 느꼈다. 아버지와 나는 체격부터가 달랐고, 아버지가 내 앞에 서면 나는 턱을 들고 눈을 맞춰야 할 만큼 키 차이가 났다.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동생과 엄마를 때렸는지 모르는 바도 아니었으니까, 이 사람 앞에 설 때면 늘 '내가 만약 두들겨 맞아서 내일 학교를 빠지더라도 이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정하지 않으면 취한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끼어들 용기를 짜내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가 잘 잠가놓으라 당부하고 나간 방문 뒤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손발에서 땀이 나 장판에 찍찍 들러붙었다. 발가락 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매 발가락 끝으로 장판을 밀쳐내며 생각했었다. 저걸 말리려면 술병이라도 깨서 들이대야 하나, 아니면 자해라도 해서 시선을 돌려놔야 하나. 근데 자해라는 걸 하면 내일 학교 갈 수 있나. 어른이 된 지금은 '왜 둘이 실랑이하는데 내가 자해를 해?'나 '차라리 물을 뿌리지 왜 자해라는 방법을 생각했을까' 같은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지만 당장 거진 이틀에 한 번씩 엄마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노출되다 보니 사고가 점점 극단적인 쪽으로만 돌아갔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비이성적인 존재가 된다. 나도 애지만 동생은 더 애였다. 엄마와 동생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굳게 믿었다.
아동 학대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부를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클로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학대 피해는 그저 외면하고 살아갔을 것이다. 사연 없는 가정 없다는 흔한 말로 대충 눌러놓고 말이다. 가끔씩 좋은 날도 있었다는 사실이 학대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버지의 눈이 술 때문에 벌겋지 않았고, 어머니의 얼굴이 불안함에 창백히 질리지 않았고, 나와 동생이 눈치 보지 않고 뛰어놀 수 있었던 시간들이. 하지만 그 둘은 양립할 수 있다. 좋은 날이 있었다고 해서 내가 학대를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아동 학대 생존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엄마와 대화하면서 내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엄마, 나는 나랑 엄마, 그리고 내 동생 율이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막말로 우리 중 하나가 지금 여기 없었어도 하등 이상할 거 없어."
엄마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우리가 당한 일을 부르는 이름은 그거였구나.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을 불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구나. 나와 율이는 아동 학대 생존자였고, 엄마는 가정 폭력 생존자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도 본인이 한 일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부분도 있지만, 아버지 안에서 나머지 가족들의 학대 피해가 '자연스러운 일'일 거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신혼 시절 이미 성인이었던 고모가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들 앞에서 손찌검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므로, 람이는 딸이니까 맘먹고 때린적도 없고 율이는 사내놈이니 부모 노릇 하려고 좀 때린 것이 뭐가 나쁘냐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몇 살 때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늦어봤자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을러대면서. 당시의 맥락은 기억나지 않아 이미 오염된 기억일 수 있지만 경찰을 부를 거야, 때렸잖아. 진짜로 부를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은 기억한다. 아버지를 향해서. 그때도 아버지는 웃었다. 아버지는 나와 율이가 분노와 상처, 두려움을 내보일 때마다 웃었다. 내가 뭐가 그렇게 웃겨서 못 견디겠느냐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것은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던 순간부터 8년은 지난 후의 일이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웃음인데 이것이 내 생활에서 나타날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곤란할 때면 웃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심장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