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천사장 만들기
"람, 난 지금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웃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지는 말아줘."
어느 날 클로드가 말했다. 어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기시감이 느껴졌다. 야, 천람. 세상에 닮을 게 없어서 아버지가 하던 짓을 하고 있냐. 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자괴감이었다. 평범한 버릇이 아버지의 행동과 조금이라도 닮았다는 걸 느끼면 극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것 역시 학대의 후유증 중 하나였다.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내게 이 버릇을 고칠 시간이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여자가 좀 방긋방긋 웃고 다니지 왜 허구한 날 인상 구기고 다녀서 분위기 칙칙하게 하느냐고 핀잔을 듣는 분위기도 아니다. 내가 어머니 말마따나 '실없이' 웃는 버릇을 고치려면 여기만큼 좋은 토양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이 버릇에 느꼈던 자괴감이 무색하게, 곤란할 때 웃지 않는 삶은 상당한 안정감을 주었다. 게다가 동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고 따라붙는 이상한 노인들이나 젊은 남자들을 쫓아버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 버릇을 고치는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했기에 내가 변해가는 과정에 한층 탄력을 붙인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이유 없는 폭언이나 폭력에 처음부터 '엄마/아빠가 이상해서 그래'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똑똑하지만 부모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이 작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안에서 원인을 찾기 위해 파고들고 또 파고든다. 애초에 이유 같은 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정보로 부모에게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본인의 안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더욱 간단하고 안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런 아이였다. 몇 년 동안 폭언을 당하고 아버지가 동생이나 어머니를 때린 것 때문에 당장 그를 향한 기대를 모두 끊어낼 수 있었다면 나는 심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거다.
아버지의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자신감 있는 잘생긴 사장이라며 한껏 칭찬을 했었다. 그들은 식당 한켠에서 놀고 있던 나와 율이에게 '아빠 멋있어서 좋겠네'라고 하기도 했다. 30살이 된 천람은 '염병, 고작 1년에 세 시간 만나는 주제에 아는 척 하기는'이라고 생각하지만 7살의 천람은 그런가 보다 했다. 다른 어른들이 멋지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 했으니까,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아동학대의 피해와 학교에서의 따돌림이 나를 성격파탄자로 만들기 전까지 나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 내성적이었다는 나의 증언과 이후 분노에 못 이겨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증언은 얼핏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크레이지 코리안 장녀의 발광 게이지는 느리지만 차근히 충전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결코 상충되는 현상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나지만 그의 사교성만은 지금도 유일한 장점으로 꼽는다. 식당에 어떤 손님이 오든 껄껄 웃으며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였다. 어린 눈에는 매우 멋져 보였다. 나는 무척 내성적이었지만 흉내에는 소질이 있었다. 어린 나는 배달음식이 오면 숨었고, 술에 취한 아버지의 손님들이 율이와 내게 재롱 좀 부려보라며 성화일 땐 화장실로 피신했다. 아버지의 흉내를 완벽히 내면 내게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이 생각 하나로 아버지의 행동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먹혀들어가는 거다. 나이 든 남성에게는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나이 든 여성들은 어머니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억양까지 완벽히 복사했다. '밖에 많이 추워요?'나 '어머니, 오늘도 건강하시네.' 같은 말. 당연히 이것들은 미취학 아동이 유창히 쏟아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들이었고, 천사장네 맏딸이 손님 응대를 곧잘 한다는 소문은 이웃으로 퍼져 나갔다. 엄마는 조금 창피해하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꽤나 기뻐 보였다.
좋은 건 무조건 자신을, 나쁜 건 무조건 엄마를 닮았다고 몰아붙이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그는 나의 이 흉내도 아버지가 가진 좋은 점 중 하나가 발아한 것이라 여겼다. 이렇게 아버지와 같은 옷을 입고 그의 그늘 밑에 숨었다면 삶이 좀 더 편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람이는 나를 닮은 내 딸이니 뭐든 내 편을 들 것'이라는 아버지의 착각에 돌을 던지고 슬레지해머로 한번 더 작살내지 않았다면 엄마나 동생이야 어쨌든 내게는 폭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어머니나 동생처럼 순한 사람들이 그저 선량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패악질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로 느껴졌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맞서야 했고, 불행하게도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런 훗날의 판단과는 별개로 당시 나의 아버지 흉내에는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졌다. 어른들의 칭찬이나 용돈이나, 율이의 감탄이나, 마치 내 것인 양 솟아나는 자신감 같은 것. 그렇게 아버지의 버릇들이 내 안에서 조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