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몸짓
그렇게 아버지의 말투와 몸짓을 복사하며 내성적인 자신을 숨겼지만 빈틈은 있었다. 나는 그 빈틈에서 오는 민망함을 웃음으로 숨겼다. 대화의 틈새나 상대방의 적의 앞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그냥 웃었다. 나는 애교가 약자의 언어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나 그 옛날, 여성인권이 지금보다 더 바닥을 치던 시절의 여성들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의 호의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의 생존 도구가 바로 애교였다고. 나를 미워하지 말아요, 다치게 하지 말아요. 이런 것들을 말로 하기엔 너무 자괴감이 들어 사람들은 애교라는 언어를 만들어낸 거라고.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내 웃음도 같은 맥락 위에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에 온 후에 가짜 웃음을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그러므로 여기에는 아버지가 없다. 발가락 관절이 모두 허옇게 질리도록 장판을 밀어내며 잠긴 방문 밖의 소리에 귀 기울인 날들을 떠올리게 만들 사람이 없다. 오직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들만이 여기에 있다. 지긋지긋한 인종차별마저도 그렇다.
아직 폴더폰이 보편적이던 시절의 일이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휴대폰 대리점 사장과 대화하면서 몇 번인가 실실 대며 웃었다. 그리고 대리점을 나오는 내게 엄마가 말했었다. '왜 그렇게 실실 웃어? 바보처럼.' 똑같은 말을 초등학교 5학년 때 들었었다. 다른 일은 별로 기억을 못 하는 데 반해 별로 친하지 않았던 여자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던, 왜 그리 바보같이 웃느냐는 말은 생생히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자신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여자아이가 했던 말은 기분이야 나빴지만 금방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했던 말은 극복이 안 되었다. 내가 바보 같은데 엄마가 보태준 게 없잖아. 아빠도 보태준 게 없잖아. 나 혼자 알아서 하려다 보니까 바보처럼 웃는 사람이 된 거잖아. 그런데 뻔뻔하게 그런 소리가 나와? 명치에 딱딱한 것이 걸려 왔지만 엄마가 모처럼, 새로운 핸드폰을 사준 날이었다. 내가 맞섰다면 엄마는 은혜도 모르는 아이라고 하루 종일 꾸짖었을 것이다. 나는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그 순간보다 더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잠들고, 잠들기 전보다 더 부은 얼굴로 일어나 악을 쓰는 생활은 지긋지긋했다.
엄마가 말한 대로 '바보같이' 웃는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대화의 틈새에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잠들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선생님 앞에서, 아이들 앞에서 내성적인 모습을 가리기 위해 아버지의 모사를 하지만, 대화의 공백에 웃음을 끼워 넣어 그나마 귀여움이라도 받고 있지만 아버지의 모사를, 그리고 가짜 웃음을 그만두면 내게 무엇이 남나. 차라리 바보같이 웃어서 귀여움이라도 받는 게 칙칙한 주제에 귀염성도 없다고 씹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애초에 나는 바보 같은 가짜 웃음이라도 짜내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름대로 나를 지켜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가짜 웃음을 그만둬서 받게 되는 공격은 엄마가 책임져줄 건가? 아니었다. 당장 엄마부터가, 오늘 내게 웃는 게 바보 같다 말했던 건 잊어버리고 왜 그리 무뚝뚝하냐며 잔소리를 할 거다. 제발 도와줄 게 아니라면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부모의 판단력에 의문을 품을 만큼 자아를 확립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제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이 부모의 한마디 때문에 부끄러워졌다고. 내 부모님은 내 선택지를 넓혀주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라고.
그 후의 생활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웃는 생활이 웃지 않는 생활보다 나아 보여서, 고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선악과처럼 떠먹인 한 술의 수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웃을 때마다 혹시 내가 또 예의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적이 신경 쓰였다. 내가 세상 무엇보다 이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엄마를 좋은 어머니로 만들지는 않았다. 엄마는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도 피해자였고, 그 세월을 죽지 않고 살아낸 것만도 나는 감사하지만. 그녀가 했던 말들은 아직도 아프다. 그녀를 이미 용서했음에도, 어머니가 떠먹인 수치만이 지워지지 않고 여기에 있다. 거울을 보고 입 끝을 쭉 당겼다. 잇몸이 너무 많이 보이나? 그때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눈이 웃지 않고 있었을까? 아랫니가 너무 많이 보였던 걸까?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할 때마다 엘리베이터 안 양면거울 속 내 눈을 보며 너는 누구냐고 무수히 외치는 기분이 들었다.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가끔은 얼굴이 무너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클로드가 좋아한다고, 수없이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자신의 웃는 얼굴을 아주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