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삶과 여정

BLUE (2) Life and Journey of Blue

by 도자기로드

BLUE 2

파랑의 삶과 여정

Life and Journey of Blue

글쓴이 김선애 도예가



PRUSSIAN BLUE

프러시안 블루 #013DFD

인간이 가장 먼저 만들었던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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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삶은어떠했을까.


‘ 각 색깔은 각자 미스터리 한 삶을 산다 (Eachcolor lives by its mysterious life)’ -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궁중화원이 권위와위엄을나타내는용을 심혈을기울여 그려 넣었던 왕실전용 청화백자, 성모마리아의색이었던 중세교회의 파랑. 왕실과 교회에서 사용할수있었던파란색 역시 고귀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다.

파란색의 여정은 신비한 돌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법사의 돌처럼 옛날 옛적 동화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이야기이다. 파란색 안료는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라는 신비한 원석에서 만들어졌다. 이 안료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베니스로 옮겨온 것이 서양에 파란색이 소개된 시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산, 딱 그 장소에서만 난다고 해서 금값처럼 거래되었다고 한다.라피스 라줄리는 아주 밝은 파란색의 암석으로 대리석처럼 아주 단단하다. 이 암석을 깨뜨려 아주 고운 가루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아시아에서 베네치아로 올 때까지도선박으로 몇 개월이 걸렸을텐데, 만드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공장에서 기계로 모든 공정을 거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암석에서 물감을 만드는 과정을모두 손으로 했다. 1~2주가 모두 걸리는 극한 작업이었다. 곱게 갈려진가루는 비즈왁스 (Beeswax)와, 레진, 아라비아 고무 (Gum Arabic)과 함께 섞은 후 물감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프러시안 블루색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사용한 주요 색상을 살펴보면, 빨간색, 검은색, 노란색, 흰색 그리고 금색으로 그 어느 곳도 파란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스인들보다 청색을 더 등한시한로마인들은 청색을 동양적이며 어둡고 세련되지 못한, 미개한 색으로 여겼다.[1]또한, 12세기 전반기에 청색 바탕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등장할 때까지 청색은 기독교교회와 예배의식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2]파랑의 인생반전 드라마가 시작된 때는 12세기부터이다.파란색은 서양 사회에서 고대 로마 시대나 중세 초기 때처럼 별로 중요하거나 이름 없는 색이 아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귀족적인 색으로 그 지위가 올라간다. 이러한 파랑의 신분 변화의 1등 공신은 성모마리아이다. 이전에는 검은색, 회색, 갈색, 보라색, 청색 또는 진한 녹색이든 어떠한 색깔이든 어둡기만 하면, 성모마리아의 의상 색으로 가능했다. 청색은 성모 마리아의 겉옷(가장 흔한 경우)이나 혹은 드레스의 부분, 전체에 나타났는데그 이유는 사실 그림 속 성모마리아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상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3]성모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파란색의 인기와 연관 지어 중세 회화의 역사에서 시각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성화에서 성모마리아가 청색 의상을 입고 나타남으로 청색이 사회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4]





빛으로 표현된 파랑


1305년,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탈리아 페인터이자 건축가였던 조토 (Giotto, 1266~1337) 는 파두아(Padua) 지역에 있는 스쿠로베그니 성당 (ScrovegniChapel)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37개의 장면으로이루어져 있는 그림에는 ‘유다의 키스(The Kiss of Judas)’,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과 같은 유명한 성경의 일화도 그려져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천장화이다. 딥블루 색의 천장에는 화려한 금색의 별이 장식되어있다. 단순한 하늘과 우주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려다보고 있는모습의 ‘천국’을 묘사해놓았다.[5]예술가의 천국이 깊은 파랑으로 천정이라는 공간에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700여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색을 잃지 않았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종종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조토의 유토피아는 천장화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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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로 표현된 빛, 파랑


대학 학부 시절처음 도자기를 만들고 색을 칠했을 때, 몇 날 며칠을 꼬박걸려 그렸던 그림이 불 속에서 사라졌었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도자기 성형과 장식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청색을 표현하는 코발트는 자연상태에서 흑갈색을 띠고 있다가 불 속에서파랑으로 변신하니, 반전 있는 삶을 사는 파랑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기술적인한계를 뛰어넘어 분명 도공들에게는 색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도자기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그중 하나는 250여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웨지우드 도자기의창립자 조사이어 웨지우드의 일화이다. 18세기 자스퍼 (Jasper)라고 불리는 흙으로 특별한 파란색 소지를 만들기 위해 무려 3000번이나 넘는 실험을 계속했다. 웨지우드의 이런 실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도자기의색 발달은 조금 더디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의청화백자 색을 일컫던 오리엔탈 블루(Oriental Blue)는 델프트 웨어로 발전되어 델프트 블루 (Delft Blue)로, 이 색은 또 영국으로 넘어가서 주석유약 영국 델프트 (English Delft)로 발전, 결국 브리티시 블루 앤 화이트 (British Blue &White)라고 불리게 된다. 지금은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패턴인 윌로우 패턴 (Willow Pattern) 또한, 중국다운 패턴을 파란색 하회 전사를 이용해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국의 파란 도자기 (Blue &White Porcelain)은 형태도 중요하지만,그림이 더 주목받는다. 영국 도자기에 표현된 그림이 있다면 대부분 원본 판화 혹은유화, 스토리 등이 있다. 오리지널 그림이 어느 색이었든,파란색으로 표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파랑본능’ 이 당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안에 숨 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동양에서도파랑의 빛을 도자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알려지지 않은 일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영국 대영박물관에는 1351년에 만들어진 The David Vase라는 도자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청화백자는 14세기 훨씬 이후 명 시대에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14세기의 두 청화백자 화병은 낯설게 느껴질수도 있다. Percival David 경으로부터 구매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이 커다란 화병은,두개가 하나의 세트로 오랫동안 서로 다른 사람의 소유였다가 1935년 데이비드 경이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한다. 몸 전체는 푸르른 용과 구름이 휘감는 그림이 있고, 목 부분에는 코끼리 얼굴이 손잡이로 형상화되어있고 표면에 한자로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信州路。玉山縣。順城鄉。德教里。荊塘社。奉聖弟子。張文進。喜捨。香炉。花瓶。一付。祈保。合家清吉。子女平安。至正十一年。四月。良辰。謹記。星源。祖殿。胡淨一元帥。打供。




설명에 따르면, 신에게 바치는향로가 함께 있었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가족과 자녀들의 안녕과 평안, 보호를 위한 기도의 의미로 절에 바쳐진 물건이다.날짜도 쓰여있다. 여기서 신은 ‘후 징이’라는 장군으로 13세기 이름을 날렸던 장군이었고,얼마 지나지 않아 신으로 추앙되었던 인물이다. 미래를 보는 능력, 지혜 그리고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6] 이러한 신의 보호를 받기 위해 바친 물건. 최상품 중의 최상품,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청화백자였다.



여기 14세기 당시 최고의재료, 최상의 코발트블루 안료와 포셀린이 있다. 코발트 안료는 이란(지금의 이라크)에서 멀리 건너온 것으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던 재료였을 것이다.[7]당시 이 작품을 만들었던 징더전 도공의 마음으로 들여다보자. 이국적인 재료, 경덕진이 자랑하는 자기토. 자신이 가진 기술을 녹여내고 싶었을 것이다. 코끼리 얼굴 손잡이, 꽃, 구름, 용무늬까지 다채롭다. 주문자로부터 최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을 것이고,도공 역시 절에 바치는 물건이니 신경을 많이 썼을 테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최고의 재료로 마음껏 표현해보았을 것이다. 여러 단계를 거쳐간다. 가마에서불을 만나 생긴 빛이 푸르름으로 나온다.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과 빛의 소통이 조화롭게 도자기를 통해 일어난순간이다.



곧, 청화백자는 유럽으로 건너가 네덜란드인들의 삶에 들어가고 곧 영국에그 빛이 전해진다. 색의 전달뿐만 아니라 문화의 흐름 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청화백자의 역사 속에서 파랑 또한 파란만장한 삶의 길을 걷는다. 조선 전기의 백자는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았다면, 조선 후기의 자기는 그 시대 역사의 흐름과함께 구불거리는 굴곡의 길을 겪는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양란에 따라 분원에서 생산하였던 청화백자가 철화백자 생산으로 바뀐 적도 있으며, 숙종(1674~1720) 이후 대외관계, 경제발전에 따라다시 청화백자 생산이 재개되었다.[8]영조 시대에는 분원의 제도와 정비가 완료되고 경영이 안정을 이루면서, 점차 화려한장식이 특징인 청화백자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장식 또한 더해진다. 왕실 사대부, 문인층 등 새로운 수요층을 위한 것이었다. 정조시대에는 경제적 호황 덕분에 음식,제사기명, 문방구 등 일상생활에도 깊게 사치품이 침투된다. 청화백자는 왕실의 도자기로만 만들어져야 했지만, 몰래 만드는 사람 또한 생겼다.보다 못한 정조 임금은 청화백자뿐만 아니라, ‘기교한 제도는 일체 엄금한다’라며 호화로운 도자기를 가지는 것을 금지했다. 검소를 장려한 어명에도 불구하고 청화백자는 부유한귀족, 돈을 모은 상인들에게 ‘머스트헤브 아이템’이 되었다. 도공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품질이 관청에 납품하는 것보다 좋아지기까지이른다. 시장의 논리이다. 정조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사치품이 된 조선백자.결국, 고종 1884년 관요를 포기하게 이르는결과에 이른다. 반면 지방 가마는 질은 떨어져도 더욱 융성하여 일반인들에게 그 문화가 전달된다.[9]



자연에서는결코 우리 손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파랑의 빛을 현재 도자기에서 나타내는 방법은 많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파란색이 금값보다 비쌌던 시절에 파랑은 ‘함부로 소유할 수 없는’ 색이었지만, 지금은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파랑덕분에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바탕 아래 도자기에서 파란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의 여정은 파란색을 따라가면서 함께 찾아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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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셀 파스투로 (고봉만 외 옮김), 블루색의 역사: 성모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한길아트,2002, p.32

[2]ibid, p.46

[3]ibid, p.67

[4]ibid, p.69

[5] Blue: AHistory of Art in Three Colours, 2016 [TV], BBC Four,7월 27일, 01:00

[6] One of theDavid Vases, 2017, The British MuseumCollection Search, Accessed 10 November 2017, http://www.britishmuseum.org/research/collection_online/collection_object_details.aspx?assetId=440946001&objectId=3181344&partId=1

[7]이란에서 수입한 코발트는 중국에서 ‘후이후이 징’이라고 불렀는데 이 뜻은 곧 ‘무슬림 블루’ 라는 뜻이다.

[8]방병선, 조선시대 후기 백자의 연구[1998],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학위논문(박사),p 2

[9]방병선,조선시대 후기 백자의 연구[1998],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학위논문(박사), p 3




** 월간도예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내용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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