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7) Royal Delft
There is no blue without yellow and without orange, and if you put in blue, then you must put in yellow, and orange too, mustn't you? Oh well, you will tell me that what I write to you are only banalities.
(Vincent van Gogh, from a letter by Vincent Van Gogh to Emile Bernard, June 1888)
‘인터스텔라(2014)’영화에서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 하지만 믿어보기는 해요.’ 도자기 역사에서 파랑은 나에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과 같은 존재이다. 영국 런던의 V&A에서 유럽도자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파랑의 속삭임은 나에게는 사랑의 속삭임과 같았다. 네덜란드 리서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파랑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옛날옛적에...’ 로 시작하는 동화 속 끝나지 않는 스토리였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친구였던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프랑스 화가)에게 편지를 쓰며, 파랑을 표현하려면 함께 노랑과 오렌지를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랑과 주황색 없이는 파랑이 없다는 그의 말은 재미있게도 이번 호에서 함께 만나려 하는 델프트 도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렌지색은 네덜란드 왕가와 국가를 상징하는 색으로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 독립운동을 펼친 영웅과 관계있다. 당시 네덜란드 귀족이었던 오라녜 빌럼 1세는 네덜란드 독립을 이끈 영웅으로, 왕정이 된 이후, 그 가문의 이름인 오렌지 색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오라녜(Oranje) 영어로는 오렌지(Orange)라고 쓴다. 그래서 오렌지 색이 네덜란드 왕가와 국가를 상징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는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이 있는데 델프트를 가고자 한다면 먼저 고흐가 들려주는 네덜란드의 파랑 이야기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델프트까지
암스테르담을 떠나 델프트까지 기차로 이동하다 보면 네로와 파트라슈가 사랑한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 실사판 버전이 나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기억의 동화의 실 배경은 벨기에의 앤트워프였다는 아쉬운 사실) 들판에 멀리 풍차를 보며 델프트까지 이동한다. 네덜란드에 필자가 방문했던 날은 비가 오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방문한 날에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기차가 델프트 역까지 가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섰다. 생전 처음 밟아보는 네덜란드 시골길에서 버스로 1시간 30을 더 델프트까지 이동했다. 다시 영국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던 그때 마음은 글을 쓰면서 하나의 추억으로 새겨진다.
역사적으로 도자기가 만들어진 고장은 운하가 있다. 원자재를 운반하기도 하고 석탄 등의 원료를 운반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운하가 아름다운 델프트에 드디어 도착했다. 역에서 델프트 공장, 박물관에 가려면 걸어서 약 10여 분이 걸린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 당황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유럽 도자기 공장은 숨어있다는 나만의 이론을 검증한다며 아무도 없는 길을 걸었다. 걷기 좋은 유럽은 역시 소도시가 매력적이다.
로열 델프트 공장 & 박물관의 역사
ROYAL DELFT FACTORY & MUSEUM
델프트에서 언제부터 공장이 세워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32개의 델프트웨어 공장이 있었다 전해진다. 16세기 중반 이후, 암스테르담에 있던 Haarlem, Middelburg공장이 이탈리아에서 다색도기를 배워와 생산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16세기 후반에 가서야 델프트 고장에서 델프트도기를 만들었다 전해진다. 17세기에는 많은 공장이 급속도로 생겨났다. 당시 중국 자기가 네덜란드 선원을 통해 들어와 자연스럽게 소개도 되었고, 1602년에 생긴 더치동인도회사 또한 극동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자기를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653년 설립된 ‘De Porceleyne Fles(The Porcelain Jar)’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델프트 공장이었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로열델프트의 전신이다. 17세기 전성기를 맞이하며 델프트의 파란 꽃을 피우던 시절이 왔다.
18세기에는 이미 유럽에서 포셀린이 발명되어 델프트 도기와 비교해 포셀린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델프트에서 도기를 만드는 공장들은 점점 더 어려움을 겪게된다. 1746년에 하얀 흙이 발견되었다. 새로운 흙은 델프트 도공들이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우수하여 어두운 태토를 덮어서 포셀린처럼 보이게 만들던 하얀 주석 유약이 필요 없어졌고 문양을 그린 후, 투명유약으로 바로 시유할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델프트 공장들도 대량화를 위해 핸드페인팅이 아닌 전사지의 이용, 기계시설의 도입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도 따르는데 1876년에 반대로 Joost Thooft 라는 델프트 엔지니어가 공장을 넘겨받았는데, 다시 도공들이 직접 손으로 델프트 블루의 색을 표현하는 전통방식을 다시 과감히 도입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예전 델프트 도기는 충격에 무척이나 약해서 잘 깨졌다. 그는 흙의 구성을 달리하여 영국 도기처럼 내연성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 계기로 유명해졌고, 그의 이니셜 JT에 Delft라는 단어를 같이 섞어서 로고를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델프트 도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재건하는 데 힘쓴다. 1919년 The Porceleyne Fles에 덴마크 왕실에서 Royal이라는 칭호를 하사해서 지금의 로열 델프트가 되었다. 1)
렘브란트 ‘야간순찰 The Nightwatch’
렘브란트(Rembrandt van Rigin, 1606~1669)이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였던 1642년 완성한 13x16피트 사이즈의 걸작을 델프트 도자기 타일 작품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 그림은 사실 한낮에 일어난 일로 부관의 명령아래 부대가 출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림 위에 덧칠한바니시(Vanish)가 산화하면서 그림이 검게 변해서 야간순찰로 이름이 잘못 알려졌다 한다.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은 돈을 걷어 이 그림을 의뢰한 사람으로, 검은 옷을 입고 있는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와 흰색허리띠를 차고 있는 빌렌 반 라위턴뷔루흐 중위이다. 이 두 명 뒤에 왼쪽으로 있는 소녀가 눈에 띄는데, 원본 그림에는 배경에 금발 머리에 진주로 장식하고 노란 드레스를 입었다.
소녀는 중대의 상징인 수탉을 허리에 차고 민병대의 잔을 들고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마스코트가 되었던 것으로 작가의 재치와 상징적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델프트에서는 가로세로 18센티의 타일 480로 만들어졌고 1999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2명의 델프트 페인팅 마스터가 작업했다. 처음 스케치는 원본 그림을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투영해서 그리고, 나머지는 손으로만 작업했다.
기념 도자기접시 Commermorate Plates
로열 델프트 박물관에는 유난히 기념 도자기 접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사이즈도 제각각이며 기념하고자 하는 행사도 다양해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왕실 출생, 결혼, 전쟁과 평화, 우주여행, 역사 등의 중요한 순간을 도자기로 기록해 놓은 다큐멘터리이다.
기념 플레이트 중에서도 1915년부터 매년 생산하는 크리스마스 플레이트가 인기이다. 18cm, 25cm의 사이즈를 고를 수 있으며 어떤 해에는 25cm 크기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점은 1946~54년에는 칠보(클루아조네 cloisonné) 기법으로 만든 타일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델프트로 만든 크리스마스 종도 함께 제작되어 매년 델프트의 또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델프트 웨어 만드는법
유럽의 공장, 박물관 견학을 하면 어디나 있는 부분이 고유의 브랜드의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 마이센 공장은 관광객을 위해 만든 여러 개의 이어진 방에 도자기를 과정별로 직접 만드는 마스터들을 만날 수 있다. 한 방에서는 티컵을 물레와 석고틀을 이용해 만들고, 그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스폰지로 다듬는 것을 볼 수 있는 등이다. 델프트 공장은 공장의 부분만 관람객에게 오픈해서 실제로 관람객들이 공장 안에서 동선을 따라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박물관 안에 델프트 웨어에 페인팅하는 도공도 볼 수 있었다. 단계별로 전시해 놓아 오래 걸리는 도자기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델프트웨어 제작방법은 간단히 다음과 같은 순서로 만들어진다.
Stage 1
카올린, 석고, 장석, 규석 등 십여 가지의 원재료를 섞어 델프트 만의 레서피로 흙을 만든다.
물과 함께 섞어서 흙 슬립이 되게 한다.
Stage 2
슬립을 석고 틀에 부어서 형태를 만든다.
Stage 3
시간이 지나서 흙이 꾸덕꾸덕해지면 몰드를 제거한 후 자연상태로 잘 말린다. 몰드 접합부분에 살짝 삐져나온 흙이나 자국을 건조 후 제거한다.
Stage 4
다음으로 기물에 화장토를 바르고 1160°C (2120°F)에 소성한 지 24시간 후에 초벌 상태가 된다.
Stage 5
핸드 페인티드 HAND-PAINTED
델프트웨어 페인터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도자기를 장식한다. 소성 전에는 검게 보이는 코발트블루 산화물에 천연모 브러쉬를 이용해 물을 묻혀 수채화처럼 그림을 그린다. 로열 델프트의 마스터 페인터가 되기 위해서는 약 8년의 시간이 걸린다. 오랜 훈련 기간동안 연습을 해야 비로소 로열델프트의 DNA가 살아있는 디자인과 장식을 할 수 있게 된다.
핸드메이드 전사 HANDMADE TRANSFER
핸드 페인팅 제품 뿐만아니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만든 전사지를 입혀 장식을 한 델프트웨어도 있다.
Stage 6
장식 후에는 시유한다. 스프레이 방식으로 뿌리거나 담그는 기법을 이용한다. 유약을 시유하면 장식이 덮여서 보이지 않지만, 가마에서 1200 °C (2192 °F), 24시간동안 재벌 소성 후에는 유약이 유리질화되어서 투명하게 되고 검은색 페인트는 파란색으로 변한다. ‘
Stage 7
델프트웨어 제작의 마지막 단계는 물품 검수(퀄리티 체크)이다. ‘프리미엄’ 등급만 로열 델프트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판매할 수 있다. 오리지널 로열 델프트 제품은 핸드페인팅 기법으로 기물 바닥에 이니셜 JT, 로열델프트의 시그니처 약병 그림 그리고 Delft 라고 쓰여있다. 2)
노란 튤립의 꽃말은 ‘바라볼 수 없는 사랑’이다.
유럽에서 사는 동안 나는 그곳을 짝사랑했나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어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다르게 살아갔지만, 현지인들의 문화 속에 함께 어울리며 나눔의 기쁨과 감정도 느꼈다.시간이 흘러 때론 꽃말도 변한다고 하는데, 노란 튤립은 노란색이 주는 밝고 희망이 다가온다는 의미도 있다고한다. 아픈 친구에게 빨리 나으라는 뜻으로 선물도 하고, 우울하거나 힘든 순간을 겪는 사람에게 밝은 희망을 주는 꽃이다. 파란 델프트에 장식된 노란 튤립을 상상하며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꿈꾼다.
NOTE
1) History of Royal Delft, Royal Delft, Accessed 1 May 2018, https://www.royaldelft.com/en_gb/our-blue/royal-delft/item6274
2) The Craftmanship of Royal Delft, Royal Delft, https://www.royaldelft.com/en_gb/hand-made-since-1653/item6337 Accessed 7 Ma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