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진은 오랫동안 그림의 아류로 여겨졌다. 렌즈와 감광판으로 대상을 재현할 뿐, 붓끝에 담긴 작가의 감정과 해석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진은 단순한 복제를 넘어선 ‘선택의 예술’로 인정받았다. 어떤 구도를 잡을 것인지, 셔터를 언제 누를 것인지, 심지어 포기할 장면은 무엇인지의 연속된 판단 속에서 사진가의 고유한 세계가 드러났다. 그렇게 사진은 결국 예술이 되었고, 사진가 역시 ‘창작자’로 존중받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AI가 등장한 글쓰기의 세계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경로에서 창작의 의미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AI가 만들어낸 문장은 너무도 유창하다. 인간의 표현을 학습한 만큼 인간을 완벽히 흉내 내고, 인간보다 더 빠르게 많은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은 표면적으로 보아 기존 작가들의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이 글의 저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묻게 된다. ‘AI가 쓴 글도 저작물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과 저작권의 본질을 다시 묻는 것이다.
사진과 회화는 명확한 ‘형식의 경계’가 있었다. 회화는 손으로 그렸고, 사진은 기계로 찍었다. 이 경계는 처음엔 차별로 작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진만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AI 글쓰기는 그런 형식적 경계가 없다. 사람이 쓴 문장과 AI가 쓴 문장을 겉보기로는 구분할 수 없다. 글은 결국 텍스트이고, 텍스트는 규칙에 따라 정렬된 언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형식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AI 글쓰기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특히 저작권의 핵심인 ‘창작성’과 ‘인격성’에 대한 판단이 매우 모호해진다. 인간은 경험과 감정, 철학과 사유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 그렇다면, 데이터를 학습해 생성된 AI의 문장은 창작일까, 아니면 모방일까?
우리는 그동안 책과 글을 통해 ‘저자’를 전제해 왔다. 저자는 메시지를 가진 존재이며,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주체였다. 저작권은 그 저자를 보호하는 제도였고, 나아가 창작의 동력을 지키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하지만 AI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람이 저자인가? 아니면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한 AI인가? 혹은 글의 일부를 수정한 사람에게 창작성을 인정해야 하는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임의 주체 역시 모호해진다. AI가 생성한 글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거나, 허위 정보를 담고 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인간 저자가 빠진 창작은 책임 없는 창작이 되며, 이는 저작권 체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AI 글쓰기에 대해서도 단순히 ‘도구로 쓰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쓰였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인간이 개입했는가?
AI의 결과물을 편집하거나 재구성했는가?
어떤 의도를 담아 최종 글을 완성했는가?
창작이라는 이름이 붙기 위해서는 여전히 ‘의도’와 ‘선택’이라는 인간 고유의 개입이 필요하다.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연산할 뿐이다. 문장을 만들지만, 주장을 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AI는 강력한 보조자일 수는 있으나, 독립된 저자가 되기엔 아직 멀다. 인간의 사유와 판단, 그리고 책임 있는 표현이 개입될 때에야 우리는 그것을 ‘창작’이라 부를 수 있다.
이제 많은 영역에서 AI가 생각을 ‘도와주고’, 기록을 ‘자동화’하고, 구조를 ‘정돈’해준다. 생각을 시작하는 초안을 AI가 제공하고, 기록과 정리도 AI가 맡는다. 인간은 더 이상 초안을 다듬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시대, 인간에게 남겨진 몫은 점점 뚜렷해진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정하고,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를 책임지는 일. 결국 창작의 시작은 여전히 인간의 ‘호기심’과 ‘의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실행조차 로봇이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시작하는 일, 그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기술이 바뀌고 도구가 바뀌어도, 글은 여전히 인간의 본질을 담는 가장 밀도 높은 매체다. 책과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누가 쓰는가,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가 새롭게 정의될 뿐이다.
2025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에 우리는 묻는다.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인가?”
“저자란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해 우리가 내리는 답이, 앞으로의 창작과 저작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