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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ChatGPT와의 전략회의

어느 전략가의 실험 보고서

by 도진

“오늘은 ChatGPT랑 회의 좀 해봐야겠어.”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이었다.
회의실도, 화이트보드도, PPT도 없었다. 노트북 화면 하나, 그리고 조용한 새벽.
그게 요즘 내가 자주 여는 ‘전략 회의실’이다.


27년 차 전략 컨설턴트.
수없이 많은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조직의 성장 방향을 설계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은 ‘내’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
내가 가진 방식이 이 시대에 유효한가?
내가 더 붙잡아야 할 지식은 무엇인가?
내 역할은 계속 유효한가?

이런 질문을, 요즘 나는 ChatGPT에게 던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구였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전망 좀 정리해 줘.”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후방 산업 변화 요인 말해줘.”

놀랍도록 빠른 응답, 정제된 문장.
처음엔 신기했고, 그다음엔 당황스러웠다.
내가 몇 시간 걸릴 작업을 30초 만에 뱉어내는 이 존재.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답이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GPT는 방향을 말하지 않았다. 가능성을 나열할 뿐이다.

판단은 결국,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꿨다.
“이 시나리오 중 어떤 전략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나?”
“만약 네가 우리 클라이언트라면 어떤 방향을 택하겠니?”

이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논리를 따지고, 전제 조건을 물었고, 결국 나 자신에게 되묻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AI는 거울이었다.
내 생각의 허점을 드러내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맥락을 조용히 가리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때로는 GPT의 ‘정확하지만 비현실적인’ 답변에 답답함을 느꼈고, 때로는 스스로가 “이걸 GPT가 해도 되는 일인가?” 싶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전략’이라는 일은 생각보다 모호한 과정이다.
경험으로 말해야 하고, 조직의 눈치를 보아야 하며, 논리와 감정 사이를 줄타기해야 한다.
AI는 논리를 줄 수 있지만, 조직의 공기까지 읽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전략회의는 늘 반쯤 현실이고, 반쯤 실험이다.


요즘은 회의 전에 늘 GPT에게 묻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때로는 날카로운 프레임을 주고, 때로는 실망스러운 진부함을 뱉는다.
그 차이가 바로,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GPT는 전략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일,

사람을 설득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일,
혼란 속에서도 방향을 정하는 일,
그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연다.
내일 회의에서 어떤 논점을 던질지,
지금 우리 전략의 허점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말한다.


“자, 우리 전략회의 시작해 볼까,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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