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나

6/2, 201

by 도중

난 불행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불행에게 굴복해 버린 것도 아니야. 그 말은 내가 겁쟁이도 패배자도 아니란 뜻이지. 난 그냥 불행에 겸손한 거야. 난 그저 불행이 다른 모든 이를 덮칠 때 나만은 비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물론 이것은 숱한 실패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지. 어제는 녀석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오늘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야말로 녀석과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 놈은 정처 없이 부지런하게도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니까. 오늘도 내일도 무탈하다면 그건 그냥 감사한 일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는 절대 없는 일이니까. 설령 녀석이 나를 점찍어 덮쳐오더라도 ‘어째서 나인 거야?’ 하고 원망 따윈 하지도 않을 거야. 무심한 녀석을 원망하는 것만큼 한심하면서도 무의미한 일은 없으니까. 불행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버릴 뿐이니까. 녀석에겐 특별한 기호나 기준 또한 없지. 그렇기 때문에 불행은 공정하지도 그렇다고 악의적이지도 않아. 만약 나의 말들이 내가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채, 굴복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건 오해야. 불행이 닥친다면 난 어김없이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거니까. 난 그냥 대비하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그 대비가 만일의 습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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