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내가 미성년기를 보낸 곳은 서울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잠원(蚕院)이라는 한적한 동네이다. 잠원역은 신사역과 터미널역 사이에 있다. 그러나, 찾는 사람들이 많은 두 역과 달리,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잠원을 찾는 외지인은 없다시피 했다. 잠원은 그야말로 외모가 화려한 형과 재능이 특출 난 동생 사이에 낑겨 있는 별 볼일 없는 둘째와 어울리는 곳이다. 하기야 잠원은 앞의 비유처럼 특별한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는 지루한 동네이기 때문에, 굳이 멀리서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는 곳이다. 그랬으나,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잠원이 한강공원으로 가는 통로로써 간편하다고 소문이 난 모양인지, 역에서 나와 한강공원 입구로 향하는 외국인들이 종종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은 동네의 기풍을 해칠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외지인의 이목을 끌 만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기껏해야 통로로써의 역할에서 끝나는 것이 잠원이다. 내 기억 속의 잠원은 젊은 사람보다는 은퇴한 노인이 많아 어쩐지 무기력하고 느릿한 분위기의 동네, 이것이 나의 기억 속에 남아버린 잠원의 한 부분이다. 물론 내 또래의 사람들과 부모세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잠원의 분위기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서술하고 싶다.
내 고향의 지명, 잠원(蚕院)은 조선시대 때, 이곳이 맡았던 역할에서 유래된다. 잠원은 예전에 누에를 양식하는 양잠시설이 즐비했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누에의 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만든 비단이 의복을 만드는 재료로써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폴리에스터로 만든 옷을 주로 입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합성섬유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양잠업이 활발했던 것이다.
누에로부터 실을 얻어내는 방법을 아는가? 이것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아주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다. 누에는 나방이 되기 위해,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사람은 그것이 나방으로 변태 하기 전에, 끓는 물속에 넣어 삶아낸 뒤, 고치에서 실을 뽑아낸다. 이러한 과정을 제사(製絲)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린 시절의 나는 어딘가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그 섬뜩한 기분이 어떠한 예고였던 것인지, 그로부터 조금 더 자란 후인 나의 학창생활은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간 번데기의 삶과 비슷했다. 그 시절의 나는 누에 따위나 키우던 동네에서 키워지는 인간이니 누에처럼 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이 꺼림칙하면서도 애틋한 동네에 남게 된다면, 양식 누에와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있는 지금의 나는 무사히 나방이 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고치 속에 있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 삶아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내게는 이러한 인상으로 남은 고향이 가끔은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다시 그곳에 돌아가 눌러앉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설령 나의 운명이 삶아지는 것이더라도 그 장소가 잠원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을 뵈려면 나는 이따금씩 잠원에 들러야 하는 처지이다. 내가 가장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는 곳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이래서 잠원은 내게 참 어처구니없는 곳이지만,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어쩌다 잠원에 돌아올 때면, 무언가가 나를 다시 이곳에 붙잡아두려 하지는 않을까 꺼려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장소가 바로 나의 고향, 잠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