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너희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야. 짐승이야. 너희들을 사람 만드려고 내가 여기 서있는거란다. 알아듣겠니?"
"네! 선생님."
다른 아이들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틀렸는지 맞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아까 이미 대답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다들, 어제 내준 받아쓰기 숙제는 해왔니? 지금부터 검사할 거니까 1분단부터 나와서 검사 받으렴."
나는 분명 1분단이었다. 그렇지만, 당당히 나갈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 망설일 뿐이었다. 그것은 내가 숙제를 딱 반만큼만 해왔기 때문이었다.
'혼이 날까? 아니면 그냥 넘어갈까? 그래도 반이나 해왔는데? 아예 안 해온 애들보다는 덜 혼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하나 더 찔리는 게 있었다. 받아쓰기 글씨가 영 엉망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해, 어른들에게 자주 혼이 나곤 했다. 나갈까. 말까. 어떡하지. 1분단에서 여전히 나만이 의자에 앉은 채였다. 저멀리서, 우리반 회장이 가장 먼저 숙제 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반 회장은 모범생 여자애이다. 쟤는 곧잘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한숨을 쉰다. 참으로 재수 없는 여자애다.까랑까랑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 앞쪽에서 들려 왔다.
"아주 또박또박 잘 써왔구나. 상을 줘야겠어." 하고 선생님께서는 회장에게 과일젤리 두알을 내밀었다. 회장은 수줍은듯 기뻐하며 두손으로 받았다.
"야! 박채진 너 왜 안 나와?"
줄에 서 있던 한 남자애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칠판 옆 창가에 딱 붙여져 있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숙제검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서는 갈라파고스 거북처럼 고개를 쭉 내미시고는 날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크게 소리치셨다.
"채진아! 넌 눈이 안 보이니? 다른 애들 검사 받고 있는 거 안 보여? 빨리 튀어 나와!"
나는 재빨리 받아쓰기 공책을 들고서 뛰어갔다. 그리고는 선생님께 공손히 내밀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내 손에서 꾸깃꾸깃한 공책을 거칠게 낚아채시고는 펼치셨다. 그런 다음에, 쭈글쭈글한 손가락에다가 침을 바르시고는 페이지를 넘기셨다. 으. 왠지 더럽다. 그러고는, 다시한번 나를 노려보시며 크게 소리치셨다. 귀가 아팠다.
"다 안 해왔네? 글씨도 엉망이고!"
선생님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아까보다 더 심해보였다. 빨갛게 칠하신 입술의 립스틱도 아까보다 더 시뻘겋게 보였다.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나한테 소리 안 지르시는데. 이런 이상한 립스틱도 안 바르시고 말야. 할머니라고 다 같은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 반만 해왔니? 어제 대체 뭐했는데. 학원 갔니?"
선생님께서 날카롭게 쏘아붙이셨다.
"아뇨. 학원은 안 다녀요. 그냥 그림 그리고 동물 사전을 읽었어요."
"그딴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멍청아!"
"음… 잘 모르겠어요."
“절대 죄송하다는 말은 안하는구나. 고얀놈.“
나는 죄송하다는 말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선생님 얼굴을 내리깐 눈으로 슬쩍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아까보다 얼굴이 한층 더 뻘개지시고는, 내 공책을 허공에다 힘껏 그리고 멀리 던져버리셨다. 아차. 날아간 내 공책은 숙제검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2분단의 한 모범생 남자애의 이마에 딱 맞아버렸다. 악. 녀석은 표정을 찡그리고는 울음을 막 터뜨렸다. 으아앙. 녀석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선생님 입술의 빨간색보다도 더 진한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황급히 나를 밀치시고는 급하게 녀석에게로 뛰어가셨다. 무시무시한 숙제검사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숙제를 아예 해오지 않은 녀석들도 더러 있었지만, 걔네는 걸리지 않았다. 혼난 것은 나만이었다. 억울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왜 태훈이를 다치게 하신걸까.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서? 아무리 그렇더라도, 강아지도 짐승인데, 귀여운 강아지를 때리는 건 나쁜 사람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그나저나, 초등학교 몇 학년이 되어야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2학년? 아니, 고학년부터가 사람인건가? 그럼 4학년부터겠네.
태훈이가 보건실에서 치료를 받고 오자, 나는 곧장 녀석의 자리로 가서 물었다.
"야 괜찮아?"
"너 때문이잖아."
"뭐가?"
"너가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아서 그런거잖아."
"아...미안."
나는 뭐라 반박하려다가, 듣고보니 녀석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냥 사과하고 말았다.
"미안하면 우유통이나 버리고 와줘. 나 오늘 당번이란 말야."
"음..알았어."
나는 다 마신 우유곽이 가득 든, 초록색 플라스틱 통을 품에 안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우유통은 교사 뒷편 주차장에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가득 우유통들이 쌓여져 있는 구석에다, 내가 가지고 온 우유통을 버리려는데, 자동차의 머리쪽에 코뿔소처럼 뿔이 달려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분명 벤츠였다. 나는 자동차에는 별 관심이 없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벤츠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엄청 부자인 사람만 탈 수 있는 차. 문득, 애들이 우리 학교에서 벤츠를 타는 사람은 선생님 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선생님의 남편은 엄청 부자라고. 나는 확신했다.
'저건 분명 선생님의 차야' 하고.
나는 항상 나를 혼내기만 하는 선생님이 미웠다. 그래서, 골탕먹이고 싶었다. 나는 우유통에서 빈 우유곽 두 개를 꺼내서 납작하게 꾸겼다. 그러고는, 자동차 뒷편의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동그란 구멍에다 우유곽 두 개를 연달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서 황급하게 교실로 뛰쳐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콩닥콩닥 뛰는 심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고서 아까의 일은 새까맣게 잊은 채, 혼자서 놀고 있었는데, 집 전화기가 띠리링 울렸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내가 받고 싶었지만, 으레 그래왔듯,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 그래요?"
걸렸다. 분명 걸렸다. 나는 오늘 죽었다. 크게 혼날 것이 분명하다.
마침내,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양처럼,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엄마. 누구 전화였어요?"
"아, 진현이 엄마였어. 다음주에 녹색 어머니 해야 한다네."
"아.. 휴."
"왜? 기다리는 친구 전화라도 있니?"
"아뇨. 그런거 아니에요."
살았다. 역시 신은 나를 사랑한다. 이번만 살려주시면 절대 다시는 나쁜짓 하지 않을게요, 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몇번이고 빌었다. 그 뒤로도, 전화벨은 세 번인가 울렸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까와 똑같이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조마조마한 기분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그중에서 선생님에게서 온 전화는 없었다.
다음날에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지만 학교에 갔다. 여느때와 같이 지루한 아침조회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지금까지 선생님 말을 잘 들은 학생은 드디어 반 정도는 사람이 되었어요. 하지만.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은 학생들은 여전히 반도 사람이 되지 못했어요. 그 말은 그들이 여전히 짐승이라는 거죠. 그런데, 사람이 짐승이랑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는 게 말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안돼요! 선생님!"
"맞아요. 안돼요. 그러면, 그 친구들을 유치원으로 돌려보내야 할까요?"
"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대요. 그래서, 오늘부터 무인도를 만들거에요."
아이들은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에 눈치 챈 선생님께서는 다시금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무인도를 어떻게 만들거냐면요. 교실 뒷편, 구석에다가 책상들을 이어붙여서 만들거에요. 거기엔, 우리반 문제아들을 전부 모아둘거에요. 무인도에 가게 되는 문제아는 수업을 듣지 않고서 딴짓을 해도 선생님이 혼내지 않을거에요. 선생님은 그 친구들을 포기했으니까요."
나도 무인도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무인도에 보내질 만큼, 문제아는 아니니까. 딱 봐도 무인도에 가게 될 것 같은 아이들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상욱.. 김태영.. 정현찬..강건우.. 얘넨 무조건 무인도행이야. 허구한 날, 맨날 여자애들을 못생겼다고 놀리거나 아니면, 몰래 여자애들 뒤통수를 때리고서 도망가는걸 즐기니까.'
"우선, 무인도에 보내야만 하는 아이들을 뽑을거에요. 반장선거처럼 투표로 할 건데, 투표는 문제아가 하나도 없는 여학생들이 할 거에요. 여학생들, 교실 앞으로 나와볼래요? 남자애들은 교실 뒷편, 사물함 쪽으로 가."
나는 선생님 말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으로 갔다. 사물함 윗편에는 우리반 애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과연 나의 얼룩말 그림이 가장 눈에 띄고 멋있었다.
"자, 똑바로 줄 서봐. 그리고 앞에 봐."
우리는 모두 그렇게 했다.
"자, 지금부터 순서대로 너희들을 무인도에 보낼지 말지 우리 여학생들이 정할거야. 첫번째로 태영이. 무인도에 보내야할까?"
내 예상대로 여자애들 모두가 손을 들었다.
"자, 태영이는 구석으로 빠져."
"상욱이는 어떻게 해야할 거 같니?"
이번에도 여자애들 모두가 손을 들었다.
"상욱이도 빠져. 그럼 채진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한 여자애가 손을 들었다. 그 여자애는 지난번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귀찮게, 쓸데없이 말을 걸어서 내가 화를 냈었던 애였다. 그러자, 그 여자애는 훌쩍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었는데, 그때의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걔가 마침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야! 내가 저번에 미안하다 했잖아!"
나는 그 여자애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여자애들도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무인도행을 가게 되고 말았다.
"야. 무인도 가는 애들. 자기 책상 들고서 구석으로 옮겨."
"네."
각자 가져온 책상들을 이어붙여보니, 이건 정말 무인도 같았다. 그곳에는 내가 처음 예상했던 문제아 네 명이 빠짐없이 전부 있었다. 그런데, 딱 한 명, 문제아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녀석이 한 명 끼여 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케이스일테지. 그렇게, 나까지 포함해서 총 여섯 명의 무인도살이가 시작되었다. 수업시간에도 우리가 교과서를 피는 일은 없었다. 그 시간에, 대체로 나는 그림을 그리고 다른 애들은 만화책을 읽었다. 국어 시간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상욱이는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던 교과서로 우리 머리를 차례차례 내리쳤다. 내가 먼저 맞고, 그 다음에 상욱이가 맞았다. 아프지는 않고 딱 기분만 나쁠 정도의 세기였다.
"아무리 무인도에 갔어도 말이야. 열심히 하는 모습을 선생님께 보이면 선생님이 빼줄 수도 있는거야. 그런데, 너흰 참 구제불능이구나."
이런 말을 툭 내뱉고는 선생은 유유히 우리 곁을 떠나, 다른 애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옆을 보니, 상욱이가 이빨을 아드득 갈며,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었다.
"저 씨발련. 진짜 총으로 쏴서 죽이고 싶다."
"뭐? 야 너 그런 나쁜말 하면 안돼."
"왜? 넌 박미경 쟤 안 싫어해?"
"그야 싫어하지. 그래도 욕은 안되는거야."
"우리 형이 나쁜 사람한테는 욕해도 되는 거라 했는데?"
"너네 형이 몇살인데?"
"중학교 1학년."
"진짜? 너네 형 나이 짱 많다."
중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면 무조건 ‘사람’일테다. 초등학교를 6년이나 다닌 '사람'이 틀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내가 왜 너네랑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애매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녀석의 이름은 남민서이다. 녀석의 말이 조금은 기분 나쁘게 들리기는 했지만, 나도 어느정도는 녀석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쟤는 진짜 왜 여기 있지? 쟤는 무인도에 있으면서도,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숙제도 맨날 빠짐없이 해오는 녀석인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민서는 무인도에서 빠져나갔다. 민서가 무인도에서 탈출한 그날부터, 민서는 매일 아침마다 선생에게 '웃고 있는 초록여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따뜻한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 커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일전에, 우리 엄마도 맛있게 마시셨던 외국 커피였다. 좋아하지만 비싸기 때문에, 자주는 마실 수 없다고 하시며 마시셨었던 기억이 났다.그날 이후로, 차례차례 무인도로부터 애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태영이, 건우, 현찬이 순으로 무인도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태영이는 매일 아침마다 3단 도시락을 선생에게 가져다주었다. 건우 어머니께서는 학교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현찬이는 아버지께서 군인이셔서, 전학을 갔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상욱이만이 쓸쓸히 무인도에 남게 되었다. 무인도는 섬이라 하기에도 웃길 정도로 엄청 작아지고 말았다.
쉬는 시간이었다.
"야 김태영, 오늘 학교 끝나고 너네 집 가서 놀아도 돼?"
"야, 말 걸지마. 너랑 이상욱이랑 노는 걸 선생님께서 보시면, 날 다시 무인도에 보내버리실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제부턴 절교야."
"왜?"
태영이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의 반응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다들, 비슷비슷했다.
"야, 이상욱. 다른 애들이 우리랑 다 절교할거래."
"그니까. 이게 다 그 씨발련 때문이야."
"그니까. 맞아."
"야 우리 그냥 그년 죽일래?"
"어떻게?"
"총으로."
"너한테 총이 있어?
"당근이지. 집에 비비탄 총이 있어."
"아, 뭐야. 비비탄으로 사람을 어떻게 죽여."
"아니야. 죽일 수 있어. 만화책에서 봤는데 말야, 사람 몸에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급소가 있대. 사람이 거길 찔리면, 손가락으로만 살짝 찔려도, 바로 죽는대."
"진짜? 너 선생의 급소가 어딘지 알아?"
"그건 나도 몰라. 그치만, 운만 아주 좋으면 우연히 맞출 수도 있어. 그리고 나 총 엄청 잘 쏴. 우리형이 예전에 가르쳐줬거든."
"진짜? 나도 너네 형 다음에 소개시켜줘."
"그건 안돼. 형은 중학교 가고부터 나랑 사이가 안좋아졌거든. 엄마가 그러는데 사춘기래."
"칫. 됐어 그럼. 그래서 언제 할거야?"
“뭘?”
“선생 죽이는 거 말야.“
"아, 바로 내일로 하자."
"그럼 난 총이 없으니까, 종이로 표창을 엄청 많이 접어올게."
"좋아. 한 백개 접어와."
결전의 날이 왔다. 우리는 오늘 선생을 죽일 작정이다. 우리는 선생이 들어오는 3교시 국어 시간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 느낌상, 한 10시간은 기다린 것만 같았다. 마침내, 선생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등을 돌리고서 칠판에다 분필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상욱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상욱이는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선생의 등에다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 나도 호주머니에 가득한 표창들을 꺼내서, 선생의 등을 향해 힘껏 던졌다. 이런. 내 표창들은 전부 빗나갔다. 심지어는, 선생 근처에까지도 못 가고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 상욱이의 비비탄 총은 대부분 명중하고 있었다.
"죽어!! 씨발련아!!"
적에게 비비탄 권총을 난사하는 상욱이의 모습은 마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나오는 안중근 의사처럼 보였다.
"꺄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이상욱!! 당장 그만두지 못해!"
선생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얼굴을 찌뿌린 채, 허우적대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이런. 적이 도망가버렸다. 우리들이 이긴건가? 그렇지만, 죽지 않았는걸. 애매한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은 곧바로 옆반에서 수업중이었던 남자 선생님을 데리고서 우리반으로 돌아왔다. 저런. 선생은 완전히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다 작전이었던 것이다. 옆반에서 뛰쳐온 선생님은 수염이 많고 고릴라처럼 덩치가 큰 체육 선생님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숨이 찼는지 얼굴이 시뻘갰다.
"야!!! 선생님께 뭐하는거야!!! 그만하지 못해!!!“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체육 선생님은 상욱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상욱이에게서 총을 빼앗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상욱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상욱이는 체육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역시 초등학교 1학년의 힘으로 어른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상욱이는 복도로 질질 끌려나갔다. 그렇게, 상욱이는 그날내내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다음날도. 나는 참다참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선생에게 상욱이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았다. 선생은 상욱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 거짓말. 분명, 상욱이는 동물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이 씨발련이 분명 상욱이를 동물원으로 보낸 것이 분명하다. 불쌍한 상욱이.. 상욱이는 동물을 싫어하는데.. 상욱이는 동물원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이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람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조만간 동물원에 보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사람말이 통할 리 없으니, 더이상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부터라도 동물말을 배워야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선생들이 내게 뭐라 말하던간에, "메에에". 다른 애들이 뭐라 말하던간에, "꼬끼오" 할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학년 모든 반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상욱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상욱이는 동물원에 있으니까. 이왕이면, 상욱이랑 같은 동물원에 보내졌으면 좋겠다. 상욱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 에버랜드가 아닐까. 아니야, 어린이대공원일 수도 있어.